선운사에서 도솔암까지 가는 길은 호젓하고 운치 있는 산책길이다. 계곡을 따라 차밭이 펼쳐져 있고 계절에 따라 동백꽃, 애기 단풍이 걷는 길을 더욱 풍요롭게 해 준다. 선운사는 원래 동백으로 유명하지만 정작 이곳의 아름다움은 꽃무릇이 피는 가을에 정점을 이룬다. 무더운 여름 끝에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숲 곳곳에서 가을볕을 받아 동백만큼이나 붉은빛을 토해내는 꽃이 하나둘 피어난다.
꽃은 잎을, 잎은 꽃을 그리워한다는 꽃무릇. 꽃과 잎이 만나지 못한다는 것에서 비롯되었지만 선운사 꽃무릇에는 애틋한 사랑 이야기가 전해온다. 아주 오래전, 선운사 스님을 짝사랑하던 여인이 상사병에 걸려 죽은 후 그 무덤에서 꽃이 피어났다는 이야기도 있고 절집을 찾은 아리따운 처녀에 반한 젊은 스님이 짝사랑에 빠져 시름시름 앓다 피를 토하고 죽은 자리에 피어난 꽃이라고도 한다. 선운사 꽃무릇이 유독 눈길을 끄는 건 도솔천 물길을 따라 꽃을 피워내기 때문이다. 맑은 개울가에 핀 꽃무릇은 그림자를 드리워 물속에서도 빨간 꽃을 피워낸다. 선운사에서 가장 많은 꽃무릇을 볼 수 있는 곳은 매표소 앞, 개울 건너편이다. 작은 개울 너머에 온통 붉은색 카펫을 깔아놓은 듯 꽃무릇이 지천으로 피어 있어 꽃멀미가 날 정도다. 특히 이른 아침 햇살이 번지기 시작할 무렵, 옅은 새벽안개 속에서 도솔천을 발갛게 물들이는 모습은 어디서도 볼 수 없는 이색적인 풍경이다. 꽃무릇 군락지 안으로는 산책로가 나 있어 꽃길을 거닐며 멋진 사진도 찍을 수 있다. 매표소 뒤편, 너른 잔디 마당에도 꽃무릇이 그득하고 선운사 절집 앞에 펼쳐진 녹차밭 사이에서도 어김없이 빨간 꽃무릇들이 불쑥불쑥 얼굴을 내밀고 있다.
선운사에 오면 대부분 대웅전을 비롯해 절집만 둘러보고 나가는 경우가 많은데 정작 선운사 위에 자리한 도솔암을 놓치면 아쉽다. 대웅전을 지나 도솔암에 이르는 숲길 곳곳에도 붉은 띠를 두른 듯 꽃무릇이 툭툭 모습을 드러낸다. 울창한 나뭇가지 사이를 뚫고 스며든 햇살이 숲을 비추면 곳곳에서 빨간 불씨들이 아름아름 피어오르는 듯하다. 군락을 지어 피어난 꽃무릇이 화려함의 진수를 보인다면 호젓한 숲에서 하나둘 만나는 꽃무릇에서는 묘한 신비감이 느껴진다.
선운사가 있는 선운산은 이른바 '호남의 내금갈'이라 불릴 정도로 수려하면서도 소박한 산세를 자란한다.
선운사 입구의 주차장과 매표소 사이에는 생태숲이 조성되어 있기도 하다. 예전에는 수시로 오가는 자동차를 매표소까지 아스팔트 길을 걸어야 했지만 이제는 그런 불편함을 겪지 않아도 된다. 매표소를 지나면 왼쪽에 도솔암 가는 길이 눈에 들어온다. 하지만 도솔암을 가기 전 선운사는 빼놓을 수 없는 곳이다.
선운사는 백제 무위왕 때에 창건된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현재의 건물들은 대부분 조선 광해군 때에 지어진 것들이다.
선운사 경재를 벗어나 개천을 끼고 오른쪽 오솔길을 딸 300m쯤 가면 갈림길이 나온다. 이곳에서 큰길을 버리고 건너편의 호젓한 산길을 접어든다.
여기서부터 도솔암까지 이어지는 도솔계곡은 문화재청에 의해 명승지로 지정 예고를 받았다. 이 일대는 9월 중순이면 산길 양편에 붉은 꽃무릇이 만개해 장관을 이룬다. 약 1km에 이르는 도솔계곡이 끝나는 지점에는 진흥굴이 있다.
신라 24대 왕이었던 진흥왕이 왕위를 버리고 왕비인 도솔과 공주인 중애를 데리고 와서 수도를 했다는 굴이다. 진흥굴 앞에는 장사송 또는 진흥송이라 불리는 멋진 소나무가 자리하고 있다.
진흥굴에서 100m 정도만 더 가면 도솔암에 이르게 된다. 그곳에는 전설이 배어 있는 동불암마애불, 금동지장보살이 있는 내원궁과 서해 일몰을 감상할 수 있는 낙조대 등이 있어 찾아오는 사람이 많다.
내궁원에 가게 되면 꼭 소원을 빌고 내려가시길 바란다. 내궁원은 '한 가지 소원은 꼭 들어준다.'라고 소문난 신통력을 지닌 기도 도량으로 유명한 곳이다.
고창은 가볼만한 곳이 많은 아름다운 곳이며 축제가 많은 곳이기도 하다. 사계절 어느 한 계절 소홀함이 없이 계절의 운치를 가지고 있기도 하다. 봄의 청보리 축제도 좋고 여름의 구시포해수욕장과 명사십리해변을 보는 것도 좋다. 겨울을 지나는 계절의 선운사 동백꽃도 유명하다. 그러나 가을의 꽃무릇은 그 어느 계절보다 선운사의 운치를 잘 표현해 준다.
선운사는 대중교통을 이용하여 가기에는 많은 시간을 내주어야 하므로 자가용을 이용하는 것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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