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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조8

< 숭명배청 >의 상징 김상헌 김상헌(金尙憲, 1570〔선조 3〕∼1652〔효종 3〕)은 한국사에서 절개와 지조의 한 상징이다. 그 상징의 핵심은 ‘숭명배청(崇明排淸)’일 것이다. 그의 생몰년은 그가 조선시대의 가장 험난한 격동기를 통과했음을 알려준다. 82년에 걸친 긴 생애동안 김상헌은 왜란과 호란을 모두 겪었다. 전쟁으로 목숨까지 잃은 수많은 사람들과 비교하여 그가 특별히 혹독한 고통을 겪었다고 확언하기는 어려울 수도 있다. 그러나 노령에 청의 심양(瀋陽)까지 압송된 것을 포함한 여러 사실은 그가 적지 않은 육체적ㆍ정신적 역경을 거쳤음을 수긍하게 만든다. 그 시대에 그의 판단과 처신이 옳았는가 하는 측면은, 거의 모든 사안이 그렇듯이, 여러 의견이 있을 것이다. 분명한 사실은 그가 명료한 이념을 철저히 실천했다는 것이다. 그 이념.. 2020. 6. 18.
병자호란 병자호란은 1636년(인조 14) 12월부터 이듬해 1월에 청나라가 조선에 대한 제2차 침입으로 일어난 전쟁. 병자년에 일어나 정축년에 끝났기 때문에 병정노란(丙丁虜亂)이라 부르기도 한다. 병자호란의 배경은 1627년 후금(後金: 뒤의 淸)의 조선에 대한 1차 침입 때 조선은 무방비 상태로 후금에 당함으로써 후금에 대해 형제의 맹약을 하고 두 나라 관계는 일단락되었다. 한편, 조선은 정묘호란 이후 후금의 요구를 들어 1628년(인조 6) 이후 중강(中江)과 회령(會寧)에서의 무역을 통해 조선의 예폐(禮幣: 외교관계에서 교환하는 예물) 외에도 약간의 필수품을 공급해 주었다. 그러나 그들은 당초의 맹약을 위반하고 식량을 강청하고 병선(兵船)을 요구하는 등 온갖 압박을 가해왔다. 그뿐 아니라 후금군이 압록강을.. 2020. 5. 23.
정명공주 정명공주는 선조의 첫째 딸로, 어머니는 영돈녕부사 연흥부원군(領敦寧府事延興府院君)김제남(金悌男)의 딸 인목왕비(仁穆王妃)이다. 광해군이 즉위하여 영창대군을 역모 연루죄로 사사하고 인목대비를 서궁으로 폐출시킬 때 함께 감금되었다. 인조반정 후 공주로 복권되고 중추부동지사 홍원의 아들 주원에게 시집을 갔다. 인목대비가 죽은 후 궁중에서 무도한 백서(帛書)가 나와 효종의 의심을 받았으나 숙종이 즉위하자 후대를 받았다. 1602년 음력 7월 13일 선조가 김제남(金悌男, 1562~1613)의 딸을 계비로 맞아들이니 그녀가 인목대비(仁穆大妃, 1584~1632)이다. 당시 선조의 나이 51세, 인목대비의 나이 19세였다. 열 달 후인 1603년 음력 5월 19일 정릉동 행궁에서 정명공주가 태어났다 정명공주가 태어.. 2020. 5. 21.
인조시대 정묘왜란이 일어나다 조선 인조 때인 1627년에 후금이 조선을 침략하여 벌어진 전쟁이다. 후금은 광해군 폐위 문제를 구실로 쳐들어왔다가 조선과 협상을 벌인 뒤 강화를 맺고 돌아갔다. 두 나라는 이 전쟁을 계기로 ‘형제’의 관계를 맺었으나 오래가지는 못했고 9년 뒤 병자호란이 일어났다 병자호란의 배경을 살펴보면 광해군때부터 살펴봐야 한다. 1월 중순부터 3월 초에 걸쳐 약 2개월 동안 계속되었다. 만주에 흩어져 살던 여진족은 조선과 명나라가 임진왜란으로 국력이 피폐해진 틈을 타 건주위(建州衛) 여진의 추장 누르하치(奴兒哈赤)를 추대해 여러 부족을 통합, 1616년(광해군 8) 후금을 세우고 비옥한 남만주의 농토를 탐내어 명나라와 충돌하게 되었다. 명나라는 양호(楊鎬)를 요동경략(遼東經略)으로 삼아 10만 대군으로 후금 토벌에.. 2020. 5. 19.
조선 16대 왕 - 인조 조선시대 이른바 쿠데타로 왕위에서 쫓겨난 왕은 노산군(뒤에 단종), 연산군, 광해군 등 세 명이었다. 이 가운데 ‘반정(反正)’ 즉 잘못된 것을 바로 잡는다는 명분을 내세워 왕이 교체된 것은 연산군을 폐한 중종반정과 광해군을 폐한 인조반정이다. 그런데 반정이라는 이름은 같지만 왕위에 오른 과정을 보면 중종과 인조(仁祖, 1595~1649, 재위 기간 1623~1649)는 아주 달랐다. 중종이 정변을 일으킨 공신들의 추대로 갑자기 왕위에 올랐다면, 인조는 왕이 되고자 몸소 정변을 준비하고 앞장선 인물이다. 인조는 자 화백(和伯). 호 송창(松窓). 휘 종(倧)이다. 선조의 손자이고 아버지는 정원군(定遠君:元宗으로 追尊), 어머니는 인헌왕후(仁獻王后)이다. 비는 한준겸(韓浚謙)의 딸 인열왕후(仁烈王后), 계.. 2020. 5. 18.
인조 실록 은 조선왕조 제16대 왕인 인조의 재위기간인 1623년 3월에서 1649년 5월까지 26년 2개월간의 역사를 편년체로 기록한 사서이다. 정식 이름은 이며, 모두 50권 50책으로 활판으로 간행되었다. 조선시대 다른 왕들의 실록과 함께 국보 제 151호로 지정되었다. 은 인조가 세상을 떠난 다음해인 1650년 효종1년 8월 1일 춘추관에 실록청을 설치하고 편찬을 시작하였다. 인조는 반정에 의하여 광해군을 폐하고 즉위하였기 때문에 즉위년칭원법을 하용하였다. 은 1653년 효종3년 6월에 완성되었다. 여기에 관여한 관원들은 아래와 같다. 총재관 영춘추관사-이경여, 김육, 도청 당상 지춘추관사-오준, 이후원, 동지춘추관사-윤순지 조석윤,채유후,도청 낭청 편수관-홍명하, 조한영, 이응시,김홍욱, 심세정, 이천기,.. 2020. 5. 17.
조선 16대 왕 - 인조 조선의 제16대 왕(재위 1623~1649) 인조는 광해군 때의 중립정책을 지양하고 반금친명 정책을 썼다. 난국 속에서도 군제를 정비해 총융청 · 수어청 등을 신설했으며, 북변 방위와 연해 방위를 위하여 여러 곳에 진을 신설했다.《동사보편》등의 서적도 간행되었고, 송시열 · 송준길 등의 대학자·대정치가가 배출되기도 했다 인조는 반정이라는 거사를 직접 진두지휘 하였다. 인조는 계획이 여러 사람들 입을 통해 누설될 위기에 처해지자 서두를 수 밖에 없었고 조바심에 가만히 있을 수도 없었다. 인조는 예정일 보다 일찍 반정을 일으켰고 이런 탓에 치밀하지도 못한 느낌이지만, 군왕이었던 광해군은 무방비 상태였다. 광해군이 도망간 이상, 인조는 왕위에 오른 것이나 진배없었다. 1623년 김류(金瑬)·김자점(金自點)·이.. 2020. 4. 10.
조선 16대 왕 인조 - 반정으로 왕위에 오르다 인조의 자 화백(和伯). 호 송창(松窓). 휘 종(倧). 선조의 손자이고 아버지는 정원군(定遠君:元宗으로 追尊), 어머니는 인헌왕후(仁獻王后)이다. 비는 한준겸(韓浚謙)의 딸 인열왕후(仁烈王后), 계비(繼妃)는 조창원(趙昌元)의 딸 장렬왕후(莊烈王后)이다. 1607년(선조 40) 능양도정(綾陽都正)에 봉해졌다가 후에 능양군(綾陽君)으로 진봉되었다. 조선 16대 왕 인조는 선조의 다섯째 아들인 정원군(定遠君, 뒤에 元宗으로 추존됨)과 좌찬성 구사맹의 딸(뒤에 인헌왕후로 추존) 사이에서 맏아들로 1595년 11월 7일에 황해도 해주에서 태어났다. 인조가 해주에서 출생한 것은 왜구의 침입으로 왕족들이 해주에 피신 중이었기 때문이다.인조의 조부가 되는 선조는 14명의 아들을 두었으나, 늙어서 얻은 영창대군 외에.. 2020. 4.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