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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종10

중종시대 관련 인물 1. 주세붕 - 조선전기 풍기군수, 성균관사성, 황해도관찰사 등을 역임한 문신이며 학자이다. 본관은 상주(尙州). 자는 경유(景游), 호는 신재(愼齋)·남고(南皐)·무릉도인(武陵道人)·손옹(巽翁). 고려 말에 고조가 경상도 합천에 우거했으나, 아버지대에 칠원(漆原)으로 옮겨살아 칠원에서 출생(일설에는 합천에서 출생했다고 함.)하였다. 증사복시정 주상빈(周尙彬)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주장손(周長孫)이고, 아버지는 주문보(周文俌)이다. 어머니는 별호군 황근중(黃謹中)의 딸이다. 선대에는 모두 관직에 나아가지 않았으며 주세붕의 현달로 증직되었다. 어릴 때부터 효성이 지극하였다. 1522년(중종 17) 생원시에 합격하고, 같은 해 별시문과에 을과로 급제, 승문원권지부정자로 관직을 시작하였다. 그 뒤 승문원정자.. 2020. 10. 28.
중종의 선택과 버림을 받은 조광조 조광조는 조선전기 교리, 부제학, 대사헌 등을 역임한 문신이다. 본관은 한양(漢陽). 자는 효직(孝直), 호는 정암(靜菴). 한성 출생. 개국공신 조온(趙溫)의 5대 손이며, 조육(趙育)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조충손(趙衷孫)이고, 아버지는 감찰 조원강(趙元綱)이다. 어머니는 여흥 민씨(驪興閔氏)로 민의(閔誼)의 딸이다. 17세 때 어천찰방(魚川察訪)으로 부임하는 아버지를 따라가, 무오사화로 화를 입고 희천에 유배 중이던 김굉필(金宏弼)에게 수학하였다. 학문은 『소학』·『근사록(近思錄)』 등을 토대로 하여 이를 경전 연구에 응용했으며, 이 때부터 성리학 연구에 힘써 김종직(金宗直)의 학통을 이은 사림파(士林派)의 영수가 되었다. 이 때는 사화 직후라 사람들은 그가 공부에 독실함을 보고 ‘광인(狂人)’이라.. 2020. 4. 14.
중종반정의 정국공신 박원종 박원종은 조선 전기의 무신이며 선전내승(宣傳內乘), 동부승지, 중추부지사(中樞府知事) 등을 지냈다. 중종 옹립의 반정(反正)의 주도적 역할을 하여 정국공신(靖國功臣) 1등에 책록되었다. 본관은 순천(順天). 자는 백윤(伯胤). 할아버지는 부지돈녕부사(副知敦寧府事) 박거소(朴去踈)이고, 아버지는 적개좌리공신(敵愾佐理功臣) 박중선(朴仲善)이며, 어머니는 행호군(行護軍) 허균(許稛)의 딸이다. 무술에 뛰어나서 음보(蔭補)로 무관직에 기용되었다. 1486년(성종 17) 선전관으로 있을 때 무과에 급제하여 선전내승(宣傳內乘)으로 승진, 오랫동안 왕의 측근이 되었다. 1492년 승정원동부승지로 발탁되자 사헌부에서 나이도 어린데다가 무과 출신에게 동반의 3품직을 제수할 수 없다고 이의를 제기해 서경(署經)을 보류하자.. 2020. 4. 13.
중종의 비, 단명왕후 신씨 ( 7일의 왕비 ) 단명왕후 신씨는 조선 제11대 왕인 중종의 비다. 중종반정으로 왕후가 되었으나 아버지 신수근이 매부인 연산군을 위해 중종반정을 반대했기 때문에 반정추진파(反正推進派)에 의하여 살해당하였고, 폐위되었다. 영조 때 복위되었다 단경왕후 신씨는 중종의 조강지처였다. 진성대군이 반정에 성공하여 연산군을 쫓아내고 중종에 즉위하였으나, 이때부터 남편과는 생이별을 하여 평생 중종을 그리워하다 일생을 마쳤다. 신씨는 1487년 1월 연산군과 매부지간인 신수근의 딸로 태어났으며 13세에 진성대군과 혼인하였다. 연산군의 폭정에 반정세력이 형성되고 반정에 성공하여 성종과 정현왕후 사이에 태어난 진성대군을 왕으로 추대하게 되었다. 왕으로 추대된 중종은 신씨를 사저에 홀로 두고 입궐하였다. 그러나 신씨에게는 남편이 왕으로 추대된.. 2020. 4. 13.
중종시대 관련 사건 - 김공저 박경의 사건 김공저 박경의 사건은 1507년(중종 2) 김공저 ·박경 등이 박원종(朴元宗) ·유자광(柳子光) 등을 제거하려다가 실패한 사건이다. 의관 김공저와 서얼 박경은 중종반정 공신 박원종 ·유자광 등을 간신으로 규정하여, 이들을 제거하고 해평부원군(海平府院君) 정미수(鄭眉壽)를 수상으로 삼아야만 정치를 잘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유숭조(柳崇祖) ·남곤(南袞) ·심정(沈貞) 등의 고발로 발각되었는데, 김공저 ·박경은 참형에 처해지고, 정미수는 울진에 귀양보내졌다. 의관 김공저와 서얼 박경은 중종반정공신 박원종·유자광·노공필을 간신으로 규정하고, 군대를 일으켜 이들을 죽이고 해평부원군(海平府院君)정미수(鄭眉壽)를 수상으로 삼아야만 정치를 잘 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그 자리에는 이장길(李長吉)·장성(長城)·장배.. 2020. 4. 13.
중종시대 삼포왜란 일어나다 삼포왜란은 1510년(중종 5) 부산포(釜山浦)·내이포(乃而浦)·염포(鹽浦) 등 삼포(三浦)에서 거주하고 있던 왜인들이 대마도의 지원을 받아 일으킨 난이다. 경오년에 일어났으므로 ‘경오왜변(庚午倭變)’이라고도 한다. 조선은 건국 후 국방 문제를 감안, 무질서하게 입국하는 왜인들을 통제하기 위해 1407년(태종 7) 부산포(富山浦 : 東萊)와 내이포(乃而浦, 일명 薺浦 : 熊川), 1426년(세종 8) 염포(鹽浦 : 蔚山) 등 삼포를 개항하고 왜관(倭館)을 설치, 교역 또는 접대의 장소로 삼았다. 조선에서는 이 삼포에 한하여 일본 무역선의 내왕을 허락하였다. 그리고 무역과 어로가 끝나면 곧 돌아가게 하되, 항거왜인(恒居倭人)이라 하여 거류한 지 오래된 자 60명만을 잠시 잔류할 것을 허락하였다. 그러나 왜.. 2020. 4. 13.
중종, 기묘사화 '선비들의 죽음' 기묘사화는 네 개의 사화 중에서 ‘선비들의 피화’라는 의미에 가장 적합한 사건일 것이다. 그것은 삼사의 영향력이 대단히 팽창했을 때 국왕과 일부 대신이 그 관서를 이끈 주요 인물들을 전격적으로 숙청한 사건이었다. 1519년(중종 14) 남곤(南袞) ·홍경주(洪景舟) 등의 훈구파(勳舊派)에 의해 조광조(趙光祖) 등의 신진 사류(新進士類)들이 숙청된 사건이다. 조광조와 기묘사림이 삼사를 장악해 강력한 개혁을 추진할 수 있었던 가장 중요한 원동력은 중종의 확고한 신임이었다. 특히 중종과 조광조의 관계는 그야말로 물과 고기에 비유할 수 있을 정도로 각별했다. 등용된 지 2년 반만에 당상관에 오르고(조광조는 1515년(중종 10년) 6월에 벼슬을 시작해 1517년 윤12월 직제학이 되었다), 짧게는 사흘부터 보통.. 2020. 4. 12.
중종 실록 은 조선왕조 제11대 왕 중종의 재위기간 1506년 10월에서 1544년 11월에 역사를 편년체로 기록한 실록이다. 그러나 제105권에는 인종이 즉위한 1544년 11월 16일부터 12월 말일까지의 기사가 합편되어 있다. 정식 이름은 이며, 모두 105권 102책으로 활판으로 간행되었다. 은 인종 때에 그 쳔찬이 계획되었으나. 당시 대, 소윤 정쟁이 격렬하였고 인종이 재위 9개우러 만에 세상을 떠나, 실현되지 못하였다. 명종이 즉위한 뒤에도 을사사화가 일어났기 때문에 바로 착수하지 못하다가, 명종원년인 1546년 가을에 비로소 춘추관에 실록청을 두고, 과 함께 편찬에 착수하였다. 명종 5년인 1550년 10월, 시작한 지 5년 만에 재위 39년간의 기록을 실은 1백5권이 완성되어 각 사고에 봉인되었다. .. 2020. 4. 10.
중종의주요정책과 사건과 중종의 묘 중종의 재위기간은 재위기간은 38년 2개월이 였다. 중종반정으로 왕위에 올랐으나 반정의 훈구세력들이 강압은 거침이 없었다. 중종이 사랑한 부인 단경왕후 신씨를 폐위를 시킬만큼 반정 신하들의 강압적 자신들의 뜻대로 하려 하였던 것이다. 하지만 중종은 이에 굴하지 않고 왕위에 오른지 10년이 되는 해인 1515년(중종 10), 조광조 등의 신진사류를 중용하여 새로운 왕도정치를 실시하고자 하였다 중종은 조광조 일파를 등용한 초기에는 미신 타파를 위하여 소격서(昭格署)를 폐지하고, 향촌에 향약(鄕約)의 실시를 권장하였다. 재위 후기에는 군적(軍籍)의 개편과 전라도ㆍ강원도ㆍ평안도에 대한 양전(量田, 토지조사)을 실시하였으며, ▲진(鎭)의 설치 ▲성곽의 보수 ▲평안도 여연ㆍ무창 등지의 야인을 추방하는 등 국방정책에.. 2020. 3. 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