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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명공주2

정명공주 정명공주는 선조의 첫째 딸로, 어머니는 영돈녕부사 연흥부원군(領敦寧府事延興府院君)김제남(金悌男)의 딸 인목왕비(仁穆王妃)이다. 광해군이 즉위하여 영창대군을 역모 연루죄로 사사하고 인목대비를 서궁으로 폐출시킬 때 함께 감금되었다. 인조반정 후 공주로 복권되고 중추부동지사 홍원의 아들 주원에게 시집을 갔다. 인목대비가 죽은 후 궁중에서 무도한 백서(帛書)가 나와 효종의 의심을 받았으나 숙종이 즉위하자 후대를 받았다. 1602년 음력 7월 13일 선조가 김제남(金悌男, 1562~1613)의 딸을 계비로 맞아들이니 그녀가 인목대비(仁穆大妃, 1584~1632)이다. 당시 선조의 나이 51세, 인목대비의 나이 19세였다. 열 달 후인 1603년 음력 5월 19일 정릉동 행궁에서 정명공주가 태어났다 정명공주가 태어.. 2020. 5. 21.
임진왜란 이후 선조의 비겁함과 친명정책 7년간의 전쟁이 끝나고 전 국토는 황폐해졌다. 전쟁 이후 나라를 지킨 자와 자신을 지킨 자는 분명히 구분되었다. 하지만 선조는 나라를 지키 이들을 외면했다. 당신 목숨을 걸고 싸운 사람들에 공을 인정하지 않았으며 경상도 지역에서 많은 의병이 일어났지만 이들에 대한 홀대가 심했다. 결국 전쟁 이후에 의병은 오히려 몸을 숨겨야 했다. 또한 전쟁 당시 앞장서서 싸운 선무공신보다 선조를 따라 피난 갔던 호송공신을 더 높이 평가했다. 그리고 전쟁 승리의 모든 공을 명나라에게 돌렸다. '아버지 명나라가 있기 때문에, 명나라가 원군을 보내지 않았다면 오늘날 조선은 없었을 것이다.'라고 생각한 거다. 이때부터 조선은 명나라에 대해 을 강조한게 된다. " 이제 통보하기를 우리나라가 중국이 아니었다면 이들 적을 끝내 죽여.. 2020. 3. 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