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호는 조선 최고의 명필가이다. ‘석봉’이라는 호로 더 많이 알려져 있다. 해서, 행서, 초서 등 여러 가지 서체(글자체)에 두루 능했을 뿐 아니라 자신만의 독특한 글씨로 명나라에까지 이름을 떨쳤다. 김정희(金正喜)와 쌍벽을 이루는 서예가이며 해(楷) ·행(行) ·초(草) 등 각 서체에 모두 능했다고 한다. 《서경덕신도비》, 《행주승전비》 등 비문이 주로 남아 있다.
본관 삼화(三和). 자 경홍(景洪). 호 석봉(石峯) ·청사(淸沙). 개성 출생. 왕희지(王羲之) ·안진경(顔眞卿)의 필법을 익혀 해(楷) ·행(行) ·초(草) 등 각 서체에 모두 뛰어났다.
한호는 1543년에 가난한 양반 집안에서 태어났다. 그는 어려서부터 책과 글씨 쓰기를 좋아했지만 집안이 가난해 서당을 다니기 힘들었다고 한다. 심지어 글씨 쓰기를 연습할 먹과 종이도 살 수 없어 항아리나 돌 위에 물을 찍어서 글씨 연습을 할 정도였다. 하지만 그의 어머니는 어려운 살림에도 불구하고 한호를 뒷바라지하며 공부를 시켜 벼슬길에 나서게 했다. 한호의 가난한 어린 시절과 어머니의 훌륭한 가르침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내용의 설화가 전해지고 있다.
어린 시절 한호는 집을 떠나 송악(개성)의 한 스승 밑에서 공부했다. 그의 어머니는 떡을 만들어 팔면서 아들의 공부를 도왔다. 그러던 어느 날, 한호는 홀로 계실 어머니가 걱정이 되어 몰래 집으로 돌아왔다. “왜 돌아왔느냐?”는 어머니의 물음에 한호는 “공부를 많이 해 더는 배울 것이 없다.”고 대답했다. 그러자 어머니는 “불을 끄고 떡 썰기와 글씨 쓰기를 해 솜씨를 비교해 보자.”고 했다. 불을 켜고 보니 어머니가 썬 떡은 크기나 두께가 모두 고른데, 한호가 쓴 글씨는 크기가 제각각이고 모양이 비뚤비뚤했다. 어머니로부터 큰 가르침을 얻은 한호는 다시 돌아가 더 열심히 공부했다고 한다.
1567년(명종 22) 진사시에 합격하고, 천거로 1599년 사어(司禦)가 되었으며, 가평군수를 거쳐 1604년(선조 37) 흡곡현령(歙谷縣令) ·존숭도감 서사관(尊崇都監書寫官)을 지냈다. 그 동안 명나라에 가는 사신을 수행하거나 외국사신을 맞을 때 연석(宴席)에 나가 정묘한 필치로 명성을 떨쳤으며, 한국 서예계에서 김정희(金正喜)와 쌍벽을 이룬다.
벼슬길에 오른 한호는 사자관(임금이 내리는 문서나 외교 문서를 쓰는 관리)이 되어 국가의 주요 문서를 도맡아 썼다. 또한 사신을 따라 명을 오가며 뛰어난 필체로 이름을 날렸다. 선조는 한호가 쓴 글씨를 항상 벽에 걸어두고 감상했으며,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때 조선을 도우러 왔던 명의 장군 이여송도 한호에게 글씨를 부탁해 가져갔다고 한다.
조선 후기 때의 일이다. 조선 제14대 왕 선조(宣祖, 1552~1608)는 어느 날 한석봉(韓石峯, 1543~1605)을 불러 글씨를 쓰게 하였다. 선조는 당시 명필인 한석봉에게 도산서원의 현판을 쓰게 하려 하였으나 한 가지 고민이 있었다. ‘내가 만약 도산서원 현판 글씨를 쓰라고 한석봉에게 말하면, 놀란 가슴에 붓이 떨려 글씨가 잘 안 나올 테지.’ 그리하여 선조는 한석봉에게 이를 일러 주지 않고 도산서원 네 글자를 거꾸로 한 자, 한 자 불렀다. 이에 한석봉은 영문도 모르고 받아쓰게 되었다.
선조는 맨 처음에 ‘원(院)’자를 부르고, 다음에 ‘서(書)’자를 부르고, 그 다음에 ‘산(山)’자를 불렀으며, 마지막에 ‘도(陶)’자를 쓰게 하였다. 한석봉은 순서대로 ‘원’자, ‘서’자, ‘산’자를 쓰고 나서 급기야 선조가 ‘도’자를 부르자 ‘아하. 이거 내가 도산서원 현판을 쓰는구나’ 하고 알아차렸다. 한석봉은 자신이 도산서원 현판을 쓰고 있다는 사실에 놀라 가슴이 두근대는 중에 붓을 떨며 마지막 ‘도’자를 쓰게 되었다. 그래서 도산서원 현판 글씨가 약간 비뚤어져 있는 것이라 한다.
한호는 해서, 행서, 초서 등 여러 가지 서체에 모두 뛰어난 솜씨를 보였다. 하지만 거기서 그치지 않고 자기만의 독특한 글씨체를 만들어 명에까지 이름을 떨쳤다. 그는 추사 김정희와 더불어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서예가로 활동하다 1605년에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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