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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님의 여행 이야기

진주에 가면 < 진주 기차 여행 >

by 무님 2020. 11.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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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성은 백제 때의 거열성()터였다고 하지만, 진주성을 언제 쌓은 것인지는 알 수 없으며, 『신증동국여지승람』 등 사료에 의하면 고려 말인 우왕 3년(1377)에 왜구의 침입을 방어할 목적으로 성을 고쳐 쌓았으며, 임진왜란 때 호남으로 진출하려는 왜적을 철통같이 막아 낸 관문이었다. 이곳 진주성에서는 임진왜란 때 두 번에 걸쳐 큰 싸움이 벌어졌는데, 그 가운데 1차 전투가 임진왜란 3대첩의 하나로 손꼽히는 진주성싸움이다.
진주성문 앞에 세워진 변영로의 시비에 씌어 있는 「논개」(거룩한 분노는/종교보다도 깊고/불붙는 열정은/사랑보다도 강하다/아! 강낭콩 꽃보다도 더 푸른/그 물결 위에 양귀비 꽃보다도 더 붉은/그 마음 흘러라/흐르는 강물은/길이길이 푸르리니/그대의 꽃다운 혼/어이 아니 붉으랴)를 읊으며 성문 안으로 들어서면 웅장한 자태의 촉석루가 옆으로 비껴서 남강을 굽어보고 있다. 본성동과 남성동에 걸쳐 있는 진주성 안에는 의기사(), 쌍충사적비(), 김시민장군전공비와 촉석정충단비()가 나란히 서 있는 정충단(), 북장대(), 서장대(西), 영남포정사문루(), 창렬사(), 호국사() 등의 유적들이 있으며, 이 일대가 사적 제118호로 지정돼 있다.
남강가 벼랑 위에 장엄하게 높이 솟아 있는 촉석루는 남원 광한루, 밀양 영남루와 함께 우리나라 3대 누각으로, 정면 5칸 측면 4칸의 큰 규모이며, 기둥과 기둥 사이에 놓인 화반의 무늬가 눈여겨볼 만하다. 촉석루에서 바라보는 남강의 경치도 운치 있지만, 진주성 맞은편에서 보는 촉석루의 모습은 강과 한데 어우러져 한 폭의 산수화처럼 고즈넉하다.

 

 

겨울 진주성

 

 

필자가 처음 진주을 여행하게 된 동기는 진주유등축제의 사진을 봐서였다. 아무런 정보도 없이 단지 사진 한장에 끌러 ktx를 예매하고 가방하나 챙겨 여행을 떠났었다. 오전 첫차를 타고 진주에 내렸을 때까지도 아무런 감흥은 없었다. 택시를 타고 축제장으로 향했다. 남강줄기를 한쪽으로는 그림같이 성이 앉아있고 한쪽으로는 천막들이 줄지어 서 있었고 사람은 엄청나게 많이 있었다. 그림같은 성을 보면서도 괜히 왔구나 싶었으니 진주의 내 첫인상은 시끌벅적이었다.

하지만 유등축제기간이 아닌 진주성은 다시 와보길 잘했구나 싶을 정도로 인상깊었다. 고요함속에 자리하고 있는 진주성은 경건하기도하고 감동적이기도하고 슬퍼보이면서도 아름답고 한마디로 표현할 수 없는 감동을 주었다.

 

 

다리를 건너 진주성으로 들어갔다. 진주성의 촉성문을 들어서면 촉성루가 있고 그 밑으로 논개의 사당과 논개가 일본장군을 안고 뛰어내린 의암으로 가는 길이 처음 보인다. 촉성루는 촉석루는 진주의 상징이자 영남 제일의 누각이다.
진주성 남쪽 석벽 위에 장엄하게 높이 솟은 웅장한 위풍은 진주성의 위상을 대변하고 있다. 성의 남쪽에 있다하여 남장대(南將臺), 향시(鄕試)를 치르는 고사장으로 장원루(壯元樓)라고 한다. 고려 고종28년(1241) 진주목사 김지대(金之岱)가 창건하였으며, 1950년 6.25 전쟁으로 불탄 것을 1960년 진주고적보존회에서 중건하였다.

촉석루 옆으로 내려가는 돌계단이 있는데 그 곳으로 내려가면 의암사적비와 의암이 나온다. 의암사적비는 선조 26년(1593) 6월 29일, 임진왜란 제2차 진주성 전투에서 진주성이 함락되고, 7만 민관군이 순절하자 나라의 원수를 갚기 위해 왜장을 끌어안고 순국한 논개의 사적을 기록한 비석이다.
진주의 사민(士民)들은 명암 정식(明庵 鄭拭:1683∼1746)이 지은 비문으로 경종 2년(1722)에 세웠다. 영조 16년(1740) 병사 남덕하(南德夏:1688∼1742)는 의기정포(義妓旌褒)를 계청하여 의기사를 창건하였고, 「의암사적비」에는 비각을 건립하여 의기논개지문(義妓論介之門)이라는 현판을 게시하였다.이 비는 아래의 의암(義巖, 경상남도 기념물 제235호)과 마주하고 있어 의기 논개의 순국정신을 한층 더 흠모하게 하고 있다. 이 비의 비문에는 “그 바위 홀로 섰고, 그 여인 우뚝 섰네. 여인은 이 바위가 아닌들 어찌 죽을 곳을 찾았고, 바위는 이 여인이 아닌들 어찌 의로운 소리 들으랴. 남강의 높은 바위, 꽃다운 그 이름 만고에 전해지리”라는 시가 새겨져 있다.

 

촉성루를 지나 진주성 안길로 걷다보면 김시민장군의 동상도 나오고 진주박물관이 나오고 성곽길을 따라 다시 걷다보면 포루와 북장대가 멋진 경치도 가지고 있다. 진주성은 다른 산성에 비해 진주성 안으로 많은 건축물과 동상을 가지고 있고 성곽길을 잘 가꾸어 놓아 걷는 길도 쾌적하고 보이는 경치가 아름답다. 

 

진주는 유등축제로도 유명한 곳이다. 처음 진주를 방문하게 된 것도 유등축제 사진 한장이였으니 무슨 말이 필요할까 싶다.  진주성의 본 모습을 보려면 날 좋은 평일에 가보시길을 추천하진만 사람 많은 시끌벅적임에도 필자도 축제를 두번이나 다녀왔으니 여러분께도 소개해 드리고 싶은 여행이다.

 

 

유등축제를 관람하려면 낮에는 진주성을 한 바퀴 둘러보고 남강에 진열된 상가도 둘러본 후 진주에서 두 블럭쯤 지나곳에 있는 카페 거리의 예쁜 카페에 앉아 휴식을 취하고 있다가 어스름해 질 쯤 다시 진주성으로 가보시길 추천드린다.

밤이 되어서야 제 본모습을 보여주는 유등축제는 낮과 다르게 깜짝 놀라도록 변신을 하고 있을 것이다.

남강의 화려한 유등도 구경하고 남강위에 띄우는 유등도 체험해 보고 공연도 구경하다가 다시 진주성으로 돌아가 낮에 보았던 진주성의 거리를 걷다보면 화려한 축제이지만 결코 사치스럽고 유치하지 않은 이 축제의 맛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색색의 조명으로 꾸며진 진주성은 멀리서 보아도 그 아름다움에 탄성이 절로 나온다.

지금은 코로나19로 진행되고 있지 않지만 이 힘든 시기간 끝나고 나면 소원을 담아 유등을 띄어보시길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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