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종이 은밀히 드나들던 길, 왜 지금도 일반에 개방되지 않나?
서울 중심, 권력의 상징인 청와대.
그 뒷편으로 솟은 북악산에는 지금도
출입이 엄격히 통제되는 구역이 하나 존재합니다.
놀랍게도 이 구역에 대해
“조선 후기 고종이 비밀리에 드나들던 이궁(離宮)이 있었다”는
기록과 구전이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 알고 계셨나요?
“정궁의 눈을 피해 떠난 궁, 하지만 그 길은 공식 문서에는 남지 않았다.”
이곳은 단지 산이 아닙니다.
왕이 자신만의 공간을 만들고,
국정을 잠시 벗어나 숨을 고르던 비공식 공간이었을지도 모릅니다.
https://youtu.be/e2Q8t6mze8Q?si=DvAGnbJCwYjgRStM
이궁이란 무엇인가?
이궁(離宮)이란, 본궁 외의 별도 거처, 휴양이나 피신, 정치적 회의 등을 위한 ‘비공식 궁궐’
공식적인 창덕궁·창경궁 외에도 왕실 구성원 전용 비밀 궁궐 존재 가능성
특히 혼란한 조선 후기, 왕은 은밀한 동선 확보를 중시
고종 시기에는 을미사변 이후 피신용 통로가 급하게 정비되기도 했습니다.
고종과 북악산 ‘숨은 길’ – 실제 기록이 존재한다?
『고종실록』 中 흥미로운 구절
“경복궁 북측 산기슭으로 잠행하시어, 백일 간 민정을 살피다 돌아오시다.”
– 고종 33년 기사
이 기록은 고종이 경복궁이 아닌 다른 루트를 통해
비공식 외출을 했다는 내용으로,
일부 학자들은 “청와대 뒷편 북악산 자락의 은밀한 길”을 가리킨다고 주장합니다.
청와대 북악산 뒷편 – 지금도 닫힌 그 길
2022년 청와대 개방 이후,
많은 구간이 시민에게 개방되었지만
북악산 자락의 특정 구역은 여전히 비공개 상태입니다.
지도상에는 능선형 산책로로 표시,
하지만 실제 탐방 불가 위치상 북문 인근의 암문 및 지하 통로 추정 구간과 일치
비상시 탈출 루트 또는 은밀한 연결로로 활용되었을 가능성 있음
“그 길은 왕의 걸음과 군주의 침묵이 새겨진, 그러나 지도에 없는 통로였다.”
– 민속학자 한OO 인터뷰 중
비공식 이궁의 위치는?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현 청와대 북측 ‘칠궁터’ ‘세검정’ 사이에
비공식 이궁(별궁 혹은 잠행처)이 존재했을 가능성이 제기됩니다.
칠궁터 | 조선 왕실 후궁 7인의 사당, 고종과 직접 관련된 인물 포함 |
북악산 중턱 | 1890년대 조선 군사 기지 기록 존재 |
세검정 일대 | 고종이 신하들과 은밀히 회동했다는 기록 존재 |
특히 세검정은 고종이 자주 머물렀던 ‘수경처(水景處)’로 기록되어 있으며,
한강 방면과의 연결이 용이한 곳입니다.
왜 지금도 개방되지 않는가?
이 구역은 현재도 청와대 경계선에 위치하고 있으며,
일부는 군사보호구역 및 경호시설 잔재로 인해 개방이 어려운 상황입니다.
또한…
실제 지하 연결 통로나 석축이 존재할 경우, 문화재법상 보호 대상
역사적 파장이 큰 유물 혹은 구조물 가능성도 존재
“공개되지 않는 이유는 역사보다 더 현실적인 문제일 수 있다.”
– 전 청와대 근무자 발언
정궁의 그림자, 조선 왕조의 비밀 공간
조선은 중앙집권의 국가였지만,
왕은 늘 정문이 아닌 ‘뒷길’을 만들어 두었습니다.
혼란기였던 고종 시절이라면, 그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을지도요.
지금도 서울의 중심, 그 길은 존재하지만 아무도 걷지 못하는 미지의 영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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