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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이야기

하멜이 본 조선 < 하멜표류기>

by 무님 2020. 6.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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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에 조선에 14년간 머물다 간 네덜란드 선원이다. 일본으로 가던 중 태풍으로 인해 제주도에 불시착했으며, 고국에 돌아가 조선에서의 경험을 담은 책 《하멜 표류기》를 펴냈다.

 

 

헨드릭 하멜(Hendrik Hamel)은 1630년 네덜란드 호르큄(Gorcum)이라는 도시에서 출생하였다. 호르큄은 군사적 요충지였으며 라인강의 지류인 왈강이 네덜란드 운하와 연결되어 있어 곡물을 운반하는 선박의 왕래가 잦았으며 상업도시로 성장했다. 하멜의 가족은 대대로 호르큄에서 살았다. 16세기 네덜란드는 해외무역이 발달하면서 중국, 일본, 오세아니아, 아메리카에 걸쳐 해상무역이 왕성하게 일어나고 있었다. 1602년에 설립된 네덜란드 동인도회사는 이러한 해상무역을 배경으로 막대한 부를 축적하였는데 헨드릭 하멜은 1651년 네덜란드 동인도회사() 취업하였고 선박의 포수()로 바타비아(Batavia:현재의 자카르타)에 건너갔다. 당시 바타비아에는 네덜란드 동인도회사의 본사가 있었으며 동양의 향신료와 중국과 일본의 청화백자를 가져다가 유럽에 되팔아 막대한 부를 쌓았다. 하멜은 이곳에서 근무하며 서기()가 되었다.

 

1653년(효종 4) 7월 하멜은 상선 스페르웨르(Sperwer) 호를 타고 타이완을 거쳐 일본 나가사키[]로 가게 되었는데 항해 도중 태풍을 만나 일행 36명과 함께 제주도에 표착()하였다. 당시 제주목사(使) 이원진()은 하멜 일행을 체포하여 감금하였고 당시 네덜란드 출신으로 조선에 귀화한 박연(, 네덜란드 이름 얀 얀스 벨테브레 Jan Janse Weltevree)이 한양에서 내려와 통역을 하였고 하멜 일행의 소속과 정체가 파악되었다. 하멜 일행은 제주도에서 탈출을 시도하였지만 실패하였고 10개월 동안 감금되었다가 이듬해 한양으로 압송되어 심문을 받았다

하멜 일행은 왕명에 의해 한양으로 이송되었고 그 과정에서 하멜은 자신이 들른 조선의 고을들에 대해 많은 기록을 남기며 자신이 상륙한 이 신세계에 대해 꼼꼼히 기록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는 나중에 하멜표류기의 기초자료가 된다. 한달여 간의 여정 끝에 한양에 도달한 하멜은 효종을 알현하였고 효종에게 일본으로 가게 해달라고 간청했으나 결국 기각되어 훈련도감에 소속되었다.
당시 조정에서 대외적으로 북벌을 (실현 가능성은 없었지만) 계획하고 있었는데, 이 때문에 하멜 일행은 서양의 군사기술이 필요하다는 판단에 따라 훈련도감에 배속되어 조총을 개량하는 등 조선에서 공밀레로 살게 되었다는 설이 널리 알려졌지만 실제로는 기술자들은 표류 과정에서 익사해 다 죽었고 이들에겐 별다른 기술이 없었다 (하멜은 항해사였다.) 그럼 그들이 무얼 했느냐? 처음에 이들을 써먹으려던 조정은 별 수 없이 이들을 훈련도감에 배속시켜서 효종의 친위대로 쓰게 했다. 조선인들에 비해 체격이 우람하여 왕의 권위를 높여주는 좋은 볼거리가 되었다.

하멜 자신의 기록에 따르면 조선인들은 하멜 일행의 하얀 피부를 무척 좋아했다고 나온다. 전통적으로 하얀 피부를 무척 선호하던 조선인들에게 하멜 일행의 하얀피부는 상류층들까지 구경을 갈 정도로 유명했다고 한다.
그외에 그들은 대갓집에 불려다니며 네덜란드 노래와 춤을 보이는 일 따위를 했고 이들의 인기가 얼마나 좋았는지 대갓집 하인들이 주인의 명이랍시고 속여서 이들을 불러내는 일도 있었다 한다.그러던 중 그의 동료 두 명이 군졸로 있다가 청의 사신이 조선에 왔을때 지나가는 길에 무단으로 뛰어들어 자신들의 송환을 청하는 일까지 일어났다. 이들은 헨드릭 얀스와 헨드릭 얀스 보스라는 자들로 각각 남이안과 남북산이라는 조선 이름을 가지고 있었다. 헨드릭 얀스 보스가 호소하는데도 네덜란드 말을 모르는 청나라 사신들이 멀뚱히 있자 사태가 이상함을 느낀 헨드릭 얀스는 잽싸게 튀어버렸으나 곧 체포된다. 그래서 조선왕조실록에는 한 명의 범행이라고 기록되어 있지만 승정원일기에 한 놈은 현장에서 잡히고 한 놈은 달아났지만 체포됨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청 사신들에 대해 하멜은 타르타르(혹은 타타르) 사신들이 네덜란드인들을 보고 스페르베르 호가 표류한 후 조선에서 취한 30만냥에 달하는 재물을 청에서 요구할까봐 조정이 불안해했으며 무엇보다 화란인들로 구성된 부대를 조선에서 조직하고 있지 않은가 하고 청에서 의심할까봐 매우 두려워했다고 저술하고 있고 조선왕조실록에도 비슷한 맥락이다

 

 1656년 3월 한양 훈련도감에서 이들을 담당하기가 힘겨워지자 전라남도 강진()으로 유배되어 전라병영성()에 소속되었다. 이곳에서 엄격한 감시를 받으며 잡역에 종사하였다. 당시 흉년으로 생활은 궁핍하여 먹을거리를 구걸을 하기도 하였다. 1660년에 전라병영에 부임한 절도사 구문치는 하멜 일행에게 비교적 관대하여 이들에게 집과 텃밭을 제공하였다. 그들은 7년 동안 전라병영성 근처 초가집에 머물렀다. 1663년(현종 4) 흉년이 들자 하멜의 일행은 남원에 5명, 순천에 5명, 여수()의 전라좌수영()에 12명이 분산되어 배치되었다. 하멜은 여수 전라좌수영에 배치되었고 고된 노역과 생활고에 지쳐 탈출을 결심하였다. 1666년(현종 7) 마침내 7명의 동료와 함께 배를 타고 탈출하여 일본 히라도()로 건너가서 나가사키()로 탈출하였다.

일본은 철저한 조사를 통해 이들이 기독교인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되자 데지마의 네덜란드로 송환하였고 하멜은 네덜란드가 일본에 강력히 요청하면 남은 8명의 사람들도 모두 송환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보고하였다. 그리고 네덜란드는 일본을 통해 조선에 송환을 요구하였고 일본도 네덜란드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이고 조선에서도 이득을 얻어낼 기회라고 판단하여 조선에 송환을 요구하게 되었다. 공식적인 요청 전에 물밑 접촉이 벌어졌는데 흥미로운 사실은 이 물밑 접촉에 이르러서야 조선은 네덜란드인 8명이 탈출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 사실은 곧 조정에 보고되었고 사건이 벌어지고 몇 달이 지났는데도 지방관들에게 탈출사실이 보고되지 않고 일본을 통해 알게된 사실에 조정은 분개하고 조사를 지시한다. 일본은 이들을 송환하는 과정에서 하나의 정보라도 더 얻어내려고 치밀하고 집요하게 심문하는 한편, 조선에는 그들을 송환해주는 대가로 통상에 관한 이익을 더 얻으려고 했다. 그러나 이 계획은 일본 측이 과거 박연의 송환을 거절한 사실이 드러나며 끝나버렸으며 남은 8명에 대한 송환은 조선으로서도 이들을 데리고 있을 명분이 빈약했으므로 송환하기로 했는데 이 과정에서 조선의 체면중시적 유교사상을 엿볼수 있는데 돌려보낼 때 중간 집결지에서 좋은 옷을 입혀 보내야 조선의 체면이 안 깎인다는 의견이 조정에서 진지하게 논의되었고 결국 이들은 옷을 지급받고 귀국하게 되었다. 하멜 일행은 이들이 송환되기 전에 이미 일본을 떠났는데 13년간의 임금을 지급받기 위해 동인도 회사에 보고서를 작성했고 이것이 하멜표류기이다

 

 

하멜 보고서

 

< 하멜표류기 >

 

귀국한 하멜은 동인도 회사에 13년간 받지 못한 임금을 청구했고 이에 대한 증거로 써서 낸 게 바로 『하멜 표류기』이다. 이 '하멜 표류기'는 크게 ‘표류기(漂流記)’와 ‘조선 왕국기(朝鮮王國記)’로 구성 되어 있는데 ‘표류기’는 네덜란드를 떠난 이후 조선에서의 억류 생활을 거쳐 다시 귀국할 때까지 일어난 일들을 기록한 일지이며, 난파 경위, 조선에 표박한 이후 하멜 일행이 겪은 체험과 감상이 연대순으로 기록되어 있다. ‘조선 왕국기’는 조선의 지리, 풍토, 산물, 정치, 군사, 형법 제도, 종교, 교육, 교역 등 하멜이 조선에서 체류하면서 보고 들은 조선에 대한 각종 정보들을 기록한 것이다.
어쨌든 하멜은 네덜란드로 되돌아온 이후로도 선원 일을 계속해 서인도 제도에 갔다왔다는 기록과 평생 미혼으로 살았다는 기록이 있지만 자세히 무엇을 하고 살았는지는 불명이다. 참고로 하멜과 그 일행들이 청구했던 임금이 어찌되었는고 하면 처음에 신청한 그룹에게는 배가 침몰하면 일 안한걸로 간주한다. 라면서 2년치의 봉급만 인도적인 차원에서 주고 씹어버렸지만(...) 하멜 등 7명의 2차 그룹에게는 13년 치의 봉급을 지급했는데 하멜 표류기가 너무 뜨면서 동인도 회사에서 조선에 대한 관심이 지대해져서 그랬다고 한다.
이후 하멜 표류기는 조선에 대한 지리, 언어, 풍속 등을 유럽에 소개하는 가장 대표적인 책으로 알려졌다. 이전까지 서양인들에게 조선이라는 나라는 악어나 괴조가 사는 아프리카 같은 신비한 곳이라고 알려져 있었으나 이 책을 통해 조선의 실상에 대해 더 자세히 알게되었다.
네덜란드의 동인도회사(VOC)는 하멜의 표류기를 보고 일본과의 교역보다 조선과 직접 교역하는게 유리하다고 생각하여 "코리아 호"라는 배까지 만들어 직접 무역을 하려고 했으나. 일본이 조선과의 무역 이익을 남기기위해 "네덜란드가 직접 조선과 무역을 하려고 시도할 경우 일본과 네덜란드의 교류는 더 이상 없을 것"이라고 강력하게 압박하여 동인도회사는 조선과의 무역을 포기하게 된다.
우리에겐 다소 비우호적으로 서술되어 있는 편인데, 내가 이렇게 고생했다라는 걸 회사에 강조해야 임금이나 보험금을 더 많이 받을 수 있으니 좋은 얘기는 거의 없다. 하지만 표류 직후 우리는 이교도들에게 기독교도로서 무색해질 정도의 후한 대접을 받았다고 저술하는 등 호의적인 내용도 많다. 더불어 평생 미혼이었다 조선에서 맺어진 처와 자식에 대한 감정도 실려있는 듯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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