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이그 특사는 1907년에 고종이 제2차 한일협약의 부당함과 일본 제국의 침략을 전 세계에 알리기 위해 고종이 비밀리에 네덜란드 헤이그(Den Haag-덴 하흐) 시에서 열린 만국평화회의에 보낸 3명의 특사들을 가리킨다. 그 3명은
여기에 일제의 특사인 척 연막 작전을 펴던 미국인 호머 헐버트까지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합세했다.
1차 만국평화회의가 열린 것은 1899년이다. 1903년 고종은 2차 만국평화회의와 1864년에 창설된 국제 적십자 위원에 가입하고 싶다는 서한을 네덜란드로 보낸다. 이듬해인 1904년, 주 러시아 대한제국 공사 이범진은 러시아 외무 대신 람스도르프의 언질로 한국이 2차 만국평화회의 초청국 명단에 들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 회담은 러시아 니콜라이 2세가 제안한 것이었고 러시아는 한국에서 일본을 한창 견제하다 못해 같은 해 러일전쟁까지 치르게 됐으므로 한국이 초청국 명단에 들어간 것은 다분히 일본을 견제하려는 러시아의 의도에 따른 것이었다. 한국이 정식 초청장을 받지 못했다고도 하는데, 이범진이 1905년 10월 이미 람스도르프에게 정식 초청장을 받았다고 한다.
이들 대표는 비밀리에 블라디보스토크∼시베리아를 거쳐 당시 러시아의 수도 상트페테르부르크(레닌그라드)에 도착하여 러시아 황제에게 친서를 전하고 이곳에서 전 러시아공사관 서기 이위종(李瑋鍾)과 동반하고 6월 25일 헤이그에 도착하였다. 이들은 의장인 러시아 대표 넬리도프를 만나, 고종의 신임장을 제시하고 한국의 전권위원으로 회의에 참석할 것과 일본의 협박 때문에 강제 체결된 한일보호조약은 마땅히 무효화되어야 한다고 역설, 이 조약의 파기를 회의 의제에 상정시킬 것을 요구하였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일제는 고종을 감금하다시피 하고 그들의 현지 공관과 회의 대표를 통해 한국대표의 회의참석 방해공작을 폈다. 이 때문에 의장 넬리도프는 책임을 형식상의 초청국인 네덜란드에 미루고, 네덜란드는 을사늑약은 각국 정부도 이미 승인하였으니 한국 정부에는 자주적인 외교권을 승인할 수 없다는 이유를 들어 우리 대표의 참석과 발언을 거부하였다. 이 당시 서울에서 《코리아 리뷰》를 발행하며 배일(排日)운동을 하던 미국인 B.허버트[轄甫]가 헤이그로 와서 한국 대표를 후원하며 회의 참석을 위해 노력하였으나 끝내 이루지 못하였다. 그러나 네덜란드의 신문인 W.스테드의 주선으로 한국대표는 평화회의를 계기로 개최된 국제협회에서 호소할 기회를 얻었다. 이때 러시아어·프랑스어·영어 등 외국어에 능통한 젊은 이위종이 세계의 언론인에게 조국의 비통한 실정을 호소한 연설의 전문(全文)은 '한국을 위하여 호소한다'라는 제목으로 세계 각국에 보도되어 주목을 끌었으나 구체적인 성과를 얻지 못하였으며, 이에 특사 가운데 이준은 울분한 나머지 그곳에서 분사(憤死)하였다.
이 사건의 배후에서 고종의 근신(近臣)으로서 러시아에 망명한 전 러시아공사 이범진과 허버트 등 외국인이 관계하였으며, 고종 자신도 러시아 황제에게 회의참가 주선을 요청하고 특사의 활동비를 지출하기까지 하였다. 이 사건이 전해지자 통감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는 고종에게 책임을 추궁하며 퇴위를 강요하였다. 이토는 7월 18일 그들의 외무대신 하야시[林董]를 서울로 불러 함께 고종을 협박하였고 밤을 새워가면서 항거하던 고종은 결국 ‘대사를 황태자에게 대리시킨다’는 황태자 섭정의 조칙(詔勅)을 승인하였다. 그러나 일제와 친일각료들은 이 조칙을 ‘양위’로 왜곡 발표하고, 20일에 양위식을 강행하였다. 흥분한 군중은 일진회의 기관지인 국민신문사 및 경찰관서 등을 습격 파괴하고 친일괴수 이완용의 집에 불을 지르는 등 서울 장안은 유혈과 통곡소리로 수라장이 되었다.
이를 계기로 7월 24일 일제의 차관정치(次官政治)를 위한 한일신협약이 체결되고, 27일에는 언론탄압을 위한 신문지법이, 29일에는 집회결사를 금지하는 보안법이 공포되고, 31일에는 군대해산명령이 내려졌다. 이와 같이 나라의 운명이 망국으로 기우는 상황 속에 순종은 새 황제로 즉위하여 연호도 광무(光武)를 융희(隆熙:8월 2일자)로 바꾸고 일제는 마지막 병탄 작업을 서두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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