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종은 대한제국기 제2대(재위:1907∼1910) 황제이자 조선 제27대 왕이다. 재위 기간은 1907∼1910이다. 이름은 이척(李坧), 자는 군방(君邦), 호는 정헌(正軒). 1874년 2월 창덕궁의 관물헌(觀物軒)에서 고종과 명성황후(明成皇后)의 둘째 아들로 탄생하였다. 정식 시호는 문온무녕돈인성경효황제(純宗文溫武寧敦仁誠敬孝皇帝)이며 약칭 순종효황제이다. 융희황제, 융희제라는 호칭도 사용한다. 현재 대한민국 문화재청에서는 '순종 효황제'라는 호칭을 사용한다.
탄생 다음 해 2월에 왕세자로 책봉되었고, 1882년에 민씨[뒷날의 순명효황후(純明孝皇后)]를 세자빈으로 맞았다. 1897년 대한제국의 수립에 따라 황태자로 책봉되었다. 1904년 새로이 윤씨를 황태자비로 맞이하였다.
1907년 7월에 일제의 강요와 일부 친일정객의 매국 행위로 왕위를 물러나게 된 고종의 양위를 받아 대한제국의 황제로 즉위하였고, 연호를 융희(隆熙)로 고쳤다. 황제(皇弟)인 영친왕(英親王)을 황태자로 책립하였고, 거처를 덕수궁에서 창덕궁으로 옮겼다.
4년간에 걸친 순종의 재위기간은 일본에 의한 한반도 무력강점 공작으로 국권이 점차적으로 제약되고 있었다. 마침내 송병준(宋秉畯)·이완용(李完用) 등 친일매국정객과 일본의 야합으로 조선왕조 519년의 역사에 종언을 고하게 되는 경국(傾國)의 비사(悲史)와 민족사의 주권을 수호하려는 저항의 통사(痛史)의 시기였다.
순종이 즉위한 직후인 1907년 7월 일제는 이른바 한일신협약[韓日新協約, 정미칠조약(丁未七條約)]을 강제로 체결하여 국정 전반을 일본인 통감이 간섭할 수 있게 하였다. 또 정부 각부의 차관을 일본인으로 임명하는 이른바 차관정치를 시작하였다.
내정간섭권을 탈취한 일본은 동시에 얼마 남지 않았던 한국 군대를 재정 부족이라는 구실로 강제해산시켜 우리 겨레의 손에서 총·칼의 자위조직마저 해체해 버렸다. 또한 1909년 7월에는 기유각서에 의해 사법권마저 강탈해 버렸다.
이처럼 순종을 허위(虛位)의 황제로 만들어 버린 이토[伊藤博文]가 본국으로 돌아간 뒤 소네[曾彌荒助]를 거쳐 군부 출신의 데라우치[寺內正毅]가 조선통감으로 부임해 온 후 일본은 대한제국의 숨통을 끊고자 더욱 거센 공작을 펴게 되었다.
일제는 1909년 7월 각의(閣議)에서 ‘한일합병 실행에 관한 방침’을 통과시켰다. 그리고 한국과 만주문제를 러시아와 사전협상하기 위해 이토를 만주에 파견하였다. 그가 하얼빈에서 안중근(安重根)에 의하여 포살되자 이를 기화로 한반도 무력 강점을 실행에 옮기게 되었다.
일제는 이러한 침략의도에 부화뇌동하는 친일매국노 이완용·송병준·이용구(李容九) 등을 중심한 매국단체 일진회(一進會)를 앞세워, 조선인의 원(願)에 의하여 조선을 합병한다는 미명 하에 위협과 매수로 1910년 8월 29일 마침내 이른바 한일합병조약을 성립시켜 대한제국을 멸망시켰다.
우리 겨레는 순종 즉위 전부터 야만적인 침략행위에 의병투쟁으로 대항하였다. 또한 개인적인 의거로 맞서기도 했다. 또한 민족의 저력을 키워 주권을 회복하고자 하는 애국계몽운동도 활발히 전개되었다. 그러나 강경과 온건으로 나누어진 민족저항의 역량이 하나로 모아지지 못하고, 일부 친일매국노의 암약으로 나라를 그르치게 되었던 것이다.
순종 주변에는 친일매국대신과 친일내통분자만이 들끓고 있었기 때문에 국가 최고의 수렴자로서의 왕권을 제대로 행사하지 못하였다. 대한제국이 일제의 무력 앞에 종언을 고한 뒤, 순종은 황제의 위에서 왕으로 강등되었다. '창덕궁(昌德宮) 이왕(李王)'으로 예우하고 왕위의 허호(虛號)는 세습되도록 조처되었다.
폐위된 순종은 창덕궁에 거처하며 망국의 한을 달래다 1926년 4월 25일에 승하하였다.
6월에 국장을 치러 경기도 남양주시 금곡동의 유릉(裕陵)에 안장되었다. 순종의 인산례(因山禮)를 기해 6·10독립만세운동이 전국적으로 전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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