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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유정란2

세조의 책사, 한명회 조선 전기 계유정난 때 수양대군을 도와 왕위에 등극하는데 공을 세웠으며 사육신의 단종 복위운동을 좌절시키고, 그들을 살해하는데 가담하였다. 병조판서로 있으면서 북방의 수비를 견고하게 하는데 공을 세웠다. 관직이 삭탈되어 압구정에서 노년을 보내다 사망하였다 본관 청주(淸州). 자 자준(子濬). 호 압구정(狎鷗亭)·사우당(四友堂). 시호 충성(忠成). 장순왕후(章順王后:睿宗妃)·공혜왕후(恭惠王后:成宗妃)의 아버지이다. 그의 조부는 조선의 개국공신이자 명나라에 가서 '조선(朝鮮)'이라는 국호를 받고 돌아온 한상질(韓尙質)이며 부친은 한기(韓起)이다. 한명회는 잉태된 지 7달 만에 태어나, 어려서는 사지가 완전치 못했는데, 차츰 장성하면서 체구가 보통 사람의 갑절이나 커지고, 또 지모가 남달리 뛰어났다. 젊었을.. 2020. 4. 2.
세조의 비, 정희왕후 윤씨 조선 7대왕 세조의 왕비인 정희왕후(貞熹王后,1418~1483)는 세종부터 성종까지 조선이 개국 이후 혼란을 수습하고 안정을 찾아가는 과정을 가장 가까이서 목격하고, 또 적극적으로 정치에 관여한 여인이다. 처음 왕자의 아내로 조선 왕실과 인연을 맺은 그녀는 이후 왕비가 되었고, 왕을 고를 수 있는 권리를 놓쳐버리지 않았으며, 수렴청정을 통해 7년간 국가정책 최고결정권자의 자리에 있기도 하였다. 정희왕후의 65여 년 간의 인생은 격동의 조선 전기 정치사 어느 한 부분에서도 빠진 적이 없었다. 정희왕후 윤씨의 본관은 파평(坡平)이고, 시호는 정희(貞熹), 생전의 존호는 자성(慈聖)이다. 세종(世宗) 때에 판중추원사(判中樞院事)를 지낸 윤번(尹璠)의 딸이며, 1418년(태종 18) 당시 청주판관(淸州判官)으로.. 2020. 4.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