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성종4 논리로 80만 대군을 물리친 < 서희와 강동 6주 > 서희는 광종 대에 대광 내의령을 지낸 서필의 아들이다. 서희의 아버지 서필은 광종의 귀화인 중용정책에 반대했던 인물로 사치를 싫어하고 스스로 검소하여 몇 번에 걸쳐 왕의 사치를 경계하는 간언을 하기도 했던 인물이다. 서희는 943년 서필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본관은 이천이고 아명은 염윤이다. 어릴 때부터 성격이 곧고 머리가 뛰어났던 그는 광종 11년 만에 18세로 갑과에 급제한 후 광평 원외랑 등을 지내며 승진을 거듭하였다. 972년 송나라 사신으로 가서 10여 년간 단절되었던 송과의 외교관계를 회복시키면서 처음으로 외교 능력을 인정받았다. 이때 송의 태조는 서희의 절도 있는 행동과 예법을 높이 평가하여 검교병부상서 벼슬을 내렸다. 송나라에서 돌아온 후 서희는 탁월한 업무 능력을 인정받았으며, 좌승을.. 2021. 6. 10. 고려 제 6대 왕 성종 - 가족 관계 성종은 문덕왕후 유씨, 문화왕후 김씨, 연창궁부인 최씨 등 세 명의 부인을 두었다. 이들중 문덕왕후는 소생이 없었고 문화왕후가 1녀, 연창궁부인이 1녀를 낳아 총 2녀를 얻었으며, 이들 두 딸은 모두 현종의 왕비가 되었다. 문덕왕후 유씨 (생몰년 미상) 문덕왕후 유씨는 광종과 대목왕후 황보씨의 셌째 딸이다. 그녀는 처음에 태조의 손자이자 수명태자의 아들 흥덕원군 왕규에게 시집갔다가 성종에게 재가했기 때문에 성종보다 나이가 많을 것으로 여겨진다. 고려 초에는 여자들의 재가가 허락되고 이혼이 인정되었지만 왕이 재가녀를 왕비로 받아들이는 예는 찾아볼 수 없다. 때문에 성종과 문덕왕후의 결혼은 광종 이후 정착된 족내혼의 전통을 유지하기 위해 종친들의 동의하에 이뤄진 것으로 보여진다. 하지만 문덕왕후는 왕규에게 .. 2021. 6. 2. 고려 제6대 왕 성종의 업적 성종 원년인 982년 6월에 체제를 정비하고 정치이념을 명확히 할 목적으로 5품 이상의 모든 관리에게 봉사(밀봉한 상소문)을 올리게 하였다. 이때 최승로의 '시무 28조'가 채택되어 정치 방향과 체제 정비를 위한 기본적인 골격이 형성됐으며, 990년 김심언이 올린 육정육사에 관한 봉사를 통해 올바른 신하상이 확립된다. 「시무 28조」의 내용은 새 국왕(성종)이 해야 할 당면과제들에 대한 구체적인 정책을 건의한 것으로 되어 있다. 최승로는 그 당시 고려왕조가 당면한 문제에 관해서 대내외적으로 광범위하게 자신의 견해를 제시하고 있다. 그 가운데에서도 불교의 폐단과 사회문제에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1) 불교 비판 특히 불교에 대한 태도가 비판적이었음이 주목된다. 그러나 그의 불교 비판은 교리 자체에 .. 2021. 5. 27. 고려왕조실록 - 제6대 왕 성종 성종의 재위 기간은 981년∼997년이다. 이름은 왕치(王治), 자는 온고(溫古). 할아버지는 태조(太祖)이고, 아버지는 대종(戴宗)왕욱(王旭)이며, 어머니는 선의태후 유씨(宣義太后柳氏)이다. 981년경종(景宗)의 내선(內禪: 임금이 살아 있으면서 왕위를 넘김)으로 왕위에 올랐다. 성종은 어머니 선의왕후가 일찍 죽어 할머니 신정왕후 황보씨에 의해 길러졌다. 그런 이유로 경종과 마찬가지로 외가인 황보씨 가문의 영향을 상당히 많이 받았다. 경종이 성종에게 호감을 가진 것도 같은 황보씨 외가를 두었다는 점이 크게 작용했다. 성종은 왕위에 오르기 전부터 유학에 밝고 인품이 뛰어나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광종 이후 형성된 유교적 분위기에서 자라난 그는 유교적 정치이념을 실현한 왕이었다. 성종은 숭유억불정책을 노골.. 2021. 5. 18. 이전 1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