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량해전1 이순신장군 명량대첩, 노량해전 그리고 생을 마치다. 이순신장군이 백의종군하는 동안에도 전란은 계속되고 있었다. 하지만 갈수록 악화되는 상황에서 희망은 이순신장군뿐임은 자명한 일이였다. 7월 삼도수군통제사 원균이 적의 유인전술에 빠져 거제 칠천량(漆川梁)에서 전멸에 가까운 패배를 당함으로써, 이순신이 힘써 길러온 무적함대는 그 형적조차 찾아볼 수 없게 되었고, 한산도의 군비는 그 형체를 알아볼 수 없었다. 이순신은 초계(草溪)에서 이 소식을 듣고, “우리가 믿은 것은 오직 수군인데 그같이 되었으니 다시 희망을 걸 수 없게 되었구나.” 하며 통곡하였다. 원균의 패보가 조정에 이르자 조야(朝野)가 놀라서 어찌할 바를 몰랐고, 왕은 비국대신(備局大臣)들을 불러 의논하였으나 당황하여 바로 대답도 못하였다. 오직 병조판서 이항복(李恒福)만이 이순신을 다시 통제사로 .. 2020. 3. 23. 이전 1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