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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오릉2

가까운 곳에서 가을을 만날 수 있다 < 서오릉 길 > 서오릉은 서울 서쪽과 경계를 이루는 고양시 덕양구 용두동에 창릉·익릉·명릉·경릉·홍릉 등 5기의 왕릉이 있어 서오릉이라 한다. 총면적 55만 3,616평으로 구리시의 동구릉 다음으로 큰 조선왕조의 왕실 족분군이다. 서울 구산동사거리에서 걸어갈 수 있을 정도로 가까운 거리인데다, 숲이 울창하게 우거져 인근 주민들이 아침 저녁 산책코스로도 즐겨 찾는 곳이다. 1457년(세조 3) 세조는 원자였던 장(璋, 덕종으로 추존)이 죽자 길지를 물색케 했다. 이때 지금의 서오릉터가 순산순수(順山順水)의 길지로 간택되어 세조가 직접 답사한 뒤 경릉(敬陵)터로 정하매 조선왕족의 능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그뒤 덕종의 동생 예종과 계비 안순왕후 한씨의 창릉(昌陵), 숙종의 정비 인경왕후 김씨의 익릉(翼陵), 숙종과 계비 인현.. 2020. 10. 27.
예종의 짧은 재위기간 세조의 둘째 아들로 태어난 예종은 형인 의경세자가 비명횡사를 하자 세자에 자린에 오른다. 세조가 사망하고 성인이 되기전인 예종은 어머니 수렴청정을 하게 된다. 그리고 그가 왕이 되어 승하하기까지의 재위기간은 1년 3개월이 된다 아버지 세조처럼 강력한 왕권을 추구하려 했던 예종은 어지러운 시국에서도 뜻을 펼치려 애를 썼으나 오래가지 못하게 된다. 아버지 세조 때 일어난 계유난 이후 형성된 원훈세력(구공신)과 이시애의 난 이후 성장한 세력 신공신의 갈등으로 어지러웠던 시국이였으며 세조가 죽기전 어린왕을 걱정하 여 시행한 원상제 실시로 인해 신하의 권력이 강해졌기 때문이었다. 원상제란 어린 임금이 즉위했을 때 제상들이 임금을 보좌하는 것을 말한다 이시애의 난으로 세력을 키우게 된 신공신의 세력의 중심엔 남이가.. 2020. 2. 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