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미개혁2 성인 남성의 상투를 자르다 < 을미개혁 > 을미개혁은 1895년 명성황후 시해사건 이후 김홍집(金弘集)내각이 추진한 근대적 개혁운동으로 1895년 8월 하순부터 고종의 러시아공사관 피신이 있었던 1896년 2월 초순까지 김홍집(金弘集)이 추진한 근대적 개혁의 시도이다. 을미사변을 순식간에 성공시킨 일본은 고종의 명을 받아, 김홍집(金弘集)을 중심으로 한 친일내각을 구성하였다. 그리고 갑오년 청-일전쟁 직후부터 진행되어오던 개혁(갑오개혁)을 이어 계속 추진하게 되었다. 갑오년 청-일전쟁 직후인 1894(고종 31) 7월 초부터 1896년 2월 초까지 약19개월간 3차에 걸쳐 추진된 일련의 개혁운동을 역사상 광의의 갑오개혁(甲午改革)이라고 한다. 그러나 을미사변을 계기로 추진된(1895. 8 하순 ~ 1896. 2 초순) 개혁을 따로 분리하여 ‘을미.. 2020. 11. 17. 1차 갑오개혁을 알아보자 갑오개혁은 1894년(고종 31) 7월 초부터 1896년 2월 초까지 약 19개월간 3차에 걸쳐 추진된 일련의 개혁운동을 말한다. 을미사변을 계기로 추진된(1895년 8월~1896년 2월) 제3차 개혁을 따로 분리하여 ‘을미개혁’이라고 부른다. 1. 갑오개혁의 배경 갑호개혁은 갑오경장(甲午更張)이라고도 한다. 2차에 걸쳐 봉기한 반봉건·외세배척운동으로서의 동학농민운동이 실현되지 못한 가운데 이를 진압할 목적으로 정부는 청나라에 원병을 요청하였고 일본도 톈진조약[天津條約]을 구실로 군대를 파견하였다. 그러나 동학농민군은 청나라와 일본의 출병한 구실을 주지 않기 위하여 폐정개혁안을 제시하였고, 정부가 이에 동의함에 따라 양국은 더 이상 조선에 주둔할 필요가 없게 되었다. 이에 청나라는 일본에 대해 공동 철병.. 2020. 11. 12. 이전 1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