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방원4 허울뿐인 권자에 앉은 비운의 왕 정종 정종은 성품이 순하고 차분했다. 그러나 무에를 닦아 아버지를 짜라 전쟁터에 나가 여러 차례 공을 세우기도 했다. 방석의 난을 편정하고 신하들이 방원을 세자로 삼으려고 동분서주했다. 그러나 방원은 민심이 자기편이 아닌 것을 알고 형 방과(정종)를 세자로 삼으려고 했다 그래야만 아버지의 노여움이 풀릴 것 같았다. 이성계는 막내아들 방석에게 왕위를 물려주려다가 방원에게 뒤통수를 맞고 넋이 빠져 있었다. 노여움이 머리끝에 머물고 있던 터였다. 저간의 사정을 환히 꿰뚫고 있는 방원이 세자 자리를 덥석 차고앉을 리 없었다. 방원이 형 방과를 찾아갔다. "형님, 이제 우리 동복 형제가 나라를 끌고 가야 합니다. 형님께서 세자가 되소서." 방과는 방원의 마을을 읽고 피식 웃었다. 방원의 술수가 지나치다는 생각이 들었다.. 2020. 7. 28. 태조. 정종 시대 관련 인물3 1. 우현보 - 1333(충숙왕 복위 2)∼1400(정종 2). 고려 말 조선 초의 문신으로 본관은 단양(丹陽). 자는 원공(原功). 아버지는 적성군(赤城君)우길생(禹吉生)이다. 1355년(공민왕 4) 문과에 급제하고 춘추관검열이 되었다. 이어 사헌부집의(司憲府執義)·좌사의대부(左司議大夫)를 역임하였다. 우왕이 즉위하자 밀직사대언(密直司代言)이 되고, 곧이어 제학으로 승진하였다. 그 뒤 대사헌을 거쳐 정당문학(政堂文學)을 오래 역임하면서 정사를 주관하고 문하찬성사(門下贊成事)에 올랐으며, 순충익대좌리공신(純忠翊戴佐理功臣)에 봉해졌다. 1388년(우왕 14)이성계(李成桂)가 위화도에서 회군하자 우왕의 명령에 따라 좌시중에 임명되어 방어하려 하였으나, 실패해 파직되었다. 그 뒤 공양왕이 즉위하자, 인척인 관.. 2020. 7. 24. 태조의 책사, 정몽주 고려 말기 문신 겸 학자이다. 의창을 세워 빈민을 구제하고 유학을 보급하였으며, 성리학에 밝았다. 《주자가례》를 따라 개성에 5부 학당과 지방에 향교를 세워 교육진흥을 꾀했다. 시문에도 뛰어나 시조〈단심가〉외에 많은 한시가 전해지며 서화에도 뛰어났다. 본관은 영일(迎日). 출생지는 영천(永川). 초명은 정몽란(鄭夢蘭) 또는 정몽룡(鄭夢龍), 자는 달가(達可), 호는 포은(圃隱). 추밀원지주사(樞密院知奏事) 정습명(鄭襲明)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정운관(鄭云瓘)이다. 어머니 이씨(李氏)가 난초화분을 품에 안고 있다가 땅에 떨어뜨리는 꿈을 꾸고 낳았기 때문에 초명을 정몽란이라 했다. 뒤에 정몽룡으로 개명하였고 성인이 되자 다시 정몽주라 고쳤다. 1357년(공민왕 6) 감시(監試: 일명 국자감시로 진사를 뽑던 시.. 2020. 3. 25. 정도전 태조 이성계와 만나다 정도전은 조선 건국을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정도전(鄭道傳, 1342∼1398)은 고려에서 조선으로 교체되는 격동의 시기에 역사의 중심에서 새 왕조를 설계한 인물이었다. 정도전의 자는 종지이고, 호는 삼봉이며 안동 보오하 출신으로 형부상서 정윤경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고려 공민와 9년에 19세로 성균관 시험에 합격하고 이듬해 과거에 급제한 뒤 벼슬이 점차로 올라 통례문 지후에 이르렀다. 정도전의 집안은 본래 봉화 지역의 향리였다. 고려 시대까지 향리는 우리가 아는 조선조의 향리와는 그 격이 달라, 지방의 토착세력을 말한다. 정도전 집안은 경상도 봉화지역의 토착세력인 셈이다. 정도전은 공민왕의 유학 육성 사업에 참여해 성균관 교관에 임명되었다. 이때 우리에게 잘 알려진 정몽주∙이숭인 등도 .. 2020. 2. 29. 이전 1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