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신6 선조 시대 관련 인물 1. 영규 - 조선시대 임진왜란 당시 금산전투에 참전한 승려이다. 승병장. 밀양박씨(密陽朴氏). 호는 기허(騎虛). 충청남도 공주 출신. 계룡산 갑사(甲寺)에 들어가 출가하고, 뒤에 휴정(休靜)의 문하에서 법을 깨우쳐 그의 제자가 되었다. 충청남도 공주청련암(靑蓮庵)에 있으면서 선장(禪杖)을 가지고 무예를 익히기를 즐겼다고 한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분을 이기지 못하여 3일 동안을 통곡하고 스스로 승장이 되었다. 의승(義僧) 수백명을 규합하여 관군과 더불어 청주성의 왜적을 쳤다. 관군은 패하여 달아났으나 그가 이끄는 승병이 분전하여 마침내 8월초 청주성을 수복하였다. 이어 의병장 조헌(趙憲)이 전라도로 향하는 고바야가와(小早川隆景)의 일본군을 공격하고자 할 때, 그는 관군과의 연합작전을 위하여 이를 늦추.. 2020. 12. 22. 1박2일 혼자 떠나는 < 여수여행 > 필자는 여행을 좋아한다. 누구나 그러하겠지만 여행에선 나를 내려놓을 수 있음이 좋다. 특히나 혼자 떠나는 여행은 나를 구속함이 없어 좋다. 가족과 함께하는 여행은 끼니를 생각해서 맛집을 알아봐야 하고 미리 어디를 가야 할지 계획해야 하며 어디서 자야 할까 숙소도 알아봐야 한다. 그리고 그 몫은 고스란히 내 몫이기도 하다. 그래서 가족여행을 하게 되면 머릿속은 온통 다음 행선지와 식사를 걱정하기 마련이다. 필자는 혼자 여행을 떠난다. 욕심껏 오래시간 떠나고 싶지만 그건 정말 욕심을 내는 것이고 당일이나 1박 2일의 여행을 떠난다. 그리고 여행지는 갔던 곳에 가는 경우가 많다. 같은 여행지라도 다른 계절 다른 장소를 다니다 보면 새로운 것을 보게 되는데 그 즐거움이 만만치 않다. 여수가 나에겐 그런 곳이다... 2020. 6. 30. 류성룡 <징비록>쓰다 조선 시대의 문신. 25세에 문과에 급제해 벼슬길에 올라 나라의 정책을 결정하는 우의정 자리에 오른다. 임진왜란1)이 일어났을 때 총책임관을 맡아 전쟁을 승리로 이끄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임진왜란에 대한 기록인 을 썼다. 조선의 문신이며 학자이다. 본관은 풍산(豊山). 자는 이견(而見). 호는 서애(西厓). 시호는 문충(文忠)이다. 지금의 경상북도 의성군의 사촌마을 외가에서 태어났고 지금의 경상북도 안동시의 하회마을에서 성장했다. 그 후 안동에서 지내다가 20대에 퇴계 이황의 제자로 들어갔다. 1564년 명종 때에 사마시(소과)에 합격했고 1566년 과거에 급제하여 벼슬길에 올라 여러 내직을 거쳤으며 선조가 즉위한 뒤에도 중용되어 그럭저럭 순탄한 관직 코스를 밟았으며 선조의 총애를 받았다. 다만 그가 .. 2020. 4. 27. 유성룡 <징비록>>을 쓰다 유성룡은 조선 시대의 문신이다 25세에 문과에 급제해 벼슬길에 올라 나라의 정책을 결정하는 우의정 자리에 오른다.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때 총책임관을 맡아 전쟁을 승리로 이끄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임진왜란에 대한 기록인 을 썼다. 서애(西厓) 유성룡(柳成龍, 1542~1607)은 1542년(중종 37) 10월에 의성현 사촌 마을의 외가에서 아버지 유중영(柳仲郢, 1515~1573))과 어머니 안동 김씨 사이에서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1558년 17세 때 세종대왕의 아들 광평대군의 5세손 이경의 딸과 혼인했다. 형은 유운룡(1539-1601)이다. 부친인 유중영은 1540년에 문과에 급제한 후 의주목사ㆍ황해도관찰사ㆍ예조참의를 두루 거친 강직한 관료였다. 유성룡은 어린 시절 조부와 부친으로부터 가학(家學).. 2020. 3. 23. 임진왜란의 휴전 성립 앞서 선조는 피난 도중에 명나라에 사신을 파견하여 구원을 요청하였다. 명나라에서는 파병 여부의 의논이 분분했으나 병부상서 석성(石星)의 주장으로 원병을 파견하였다. 이에 요양부총병(遼陽副摠兵) 조승훈(祖承訓)은 5,000의 병사를 이끌 고 고니시의 본거지인 평양성을 공격하기로 하였다. 이들 원병은 명나라 조정에서 파견한 군사는 아니고 국경 수비병이었다. 그들은 1592년 7월 15일 평양에 도착하여 풍우가 심한 밤을 이용하여 평양성을 공격하였다. 그러나 도리어 적의 기습을 받아 대패하고, 우참장(右參將) 대조변(戴朝弁)과 유격(遊擊) 사유(史儒) 등이 전사하였다. 그리고 조승훈이 잔여병을 거두어 퇴각하니 1차 구원은 실패로 돌아갔다. 이보다 앞서 고니시는 임진강에서 대진하고 있을 때와 대동강에 이르러 두.. 2020. 3. 21. 임진왜란의 발발 조선은 일본의 태도를 심상치 않게 여기고 1590년 동인의 김성일과 서인의 황윤길을 일본에 통신사로 파견한다. 그리고 이들은 1년 뒤인 1591년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1년전에 선종에게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만난 일을 보고한다. 그런데 문제는 김성일과 황윤길인 상반된 보고를 했다는 것이다. ' 상이 하문하기를 "수길(도요토미 히데요시)이 어썽헤 생겼던가?" 하니, 윤길이 아뢰기를 "눈빛이 반짝반짝하여 담과 지략이 있는 사람인 듯하였습니다." 하고, 성일은 아뢰기를 "그이 눈은 쥐와 같으니 족히 두려워할 위인이 못됩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조선의 앞날의 크나큰 위기를 맞이하게 되는 것이다. 조선은 김성일의 의견을 받아들이는데 이는 누구도 전쟁에 대한 중압감과 책임을 지고 싶지 않았고 또한 민심이 나빠질가 걱정.. 2020. 3. 21. 이전 1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