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종4 조선시대 최악의 재앙 < 경신 대기근 > 경신 대기근(庚辛大飢饉)은 조선 현종 재위기간인 1670년(경술년)과 1671년(신해년)에 있었던 대기근이다. 한국 역사상 전대미문의 기아 사태였으며, 임진왜란 때부터 살아온 늙은이들이 ‘전쟁 때도 이것보다는 나았다’고 생각할 정도의 피해를 입었다. 경신 대기근의 결과는 파멸적이었다. 조선 8도 전체의 흉작이라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으며, 당시 조선 인구의 1200~1400만 명중 약 90만에서 150만 명이 사망하는 피해를 입었다. 《조선왕조실록》 〈현종실록〉과 〈현종개수실록〉을 살펴보면 1670년 한 해동안 온갖 자연재해가 집중해서 일어났으며, 이듬해인 1671년에 조정에서 구휼에 적극적으로 나섬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수의 백성들이 죽어갔음을 알 수 있다. 경신 대기근은 소빙기로 인한 17세기의 범세계.. 2020. 6. 28. 남인(南人)의 영수, 고학(古學)에 심취하다 < 허 목 > 허목(許穆, 1595~1682)은 송시열과 예학(禮學)에 대해 논쟁한 남인의 핵심이자 남인이 청남(淸南)과 탁남(濁南)으로 분립되었을 때는 청남의 영수로서, 조선후기 정계와 사상계를 이끌어간 인물이다. 학문적으로도 독특한 개성을 보인 인물이었다. 주자성리학을 중시하던 17세기 당시의 시대 분위기와 달리, 원시유학(原始儒學)인 육경학(六經學)에 관심을 두면서 고학(古學)의 경지를 개척하였다. 도가적(道家的)인 성향도 깊이 드러냈으며, 불교에도 개방적인 태도를 보였다. 조선후기 강성 정치인의 면모를 뚜렷이 갖추었으면서도 개성 있는 학문세계를 추구한 허목의 학문과 정치활동 속으로 들어가 본다. 허목은 본관은 양천(陽川). 자는 문보(文甫)·화보(和甫), 호는 미수(眉叟). 찬성 허자(許磁)의 증손으로, 할아버.. 2020. 6. 27. 현종 즉위 후 일어 난 예송논쟁 - 1차 예송 논쟁 1차 예송 논쟁은 현종 즉위 시기 자의대비의 상례 절차인 상복을 두고 서인과 남인 간에 벌어진 두 차례의 정치적 분쟁이다. 왕위에 오른 현종과 신하들은 나라의 중심을 잡기 위해 성리학을 열심히 공부해서, ‘예절’을 중요하게 여기는 나라를 세우려고 했었다. 보통 예절에는 아랫사람이 윗사람을 잘 따라야 한다는 규칙이 더 많았다. 신분이 낮은 백성이 신분이 높은 양반의 말을 잘 따라야 한다는 식이였던거다. 그럼 사회에는 질서가 생기고, 높은 사람들이 아랫사람들을 다스리기가 쉬워지기 때문이다. 바로 이것이 왕과 신하들이 예절을 중요하게 여긴 이유였다. 그래서 누가 윗사람이고 누가 아랫사람인지를 정하는 것은 무척 예민한 문제가 되었던 것이다. 조선은 첫째 아들(맏아들)에게 모든 힘을 몰아주는 것으로 사회 분위기가.. 2020. 6. 22. 조선 18대 왕 현종 - 이 연 효종은 조선시대 제18대 왕(재위 1659∼1674)으로 효종의 아들이다. 효종의 상례(喪禮)시 인조의 계비인 자의대비의 복상문제(服喪問題)에 서인의 기년설(朞年說:1년설)을 채택하고, 어머니 인선왕후가 죽자 2차 복상문제에서 남인의 기년제를 채택, 재위 중 남인과 서인의 당쟁이 계속되어 국력이 쇠퇴해졌다. 현종의 재위 기간은 1659∼1674이며 본관은 전주(全州)이다. 이름은 이원(李棩)이다. 이름으로 쓰이는 한자는 ‘굽을 연’자로 쓰이지만, 〈인조실록(仁祖實錄)〉(인조 26년 9월 9일)에는 이름의 음이 ‘집 원(院)’자와 같다고 기록되어 있다. 자는 경직(景直)으로 효종의 맏아들이며 어머니는 우의정 장유(張維)의 딸 인선왕후(仁宣王后)이다. 비는 영돈녕부사 김우명(金佑明)의 딸 명성왕후(明聖王后).. 2020. 6. 20. 이전 1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