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완옹주1 사도세자의 방탕생활 3. 1761년 영조 37년 4월 동궁의 시종들과 세자빈의 반대를 무릅쓰고 평안감사 정휘량의 감언에 따라 세자는 평양으로 떠났다. 물론 영조의 윤허도 없이 몰래 떠난 것이었다. 20일 만에 돌아온 세자에게 동궁의 유선 서지수, 대사성 서명응, 장령 윤재겸 등이 부왕을 만나 요서를 빌라고 건의하였으니 세자는 이들에게 폭언을 퍼붓자 세자의 장인인 우의정 홍봉한이 울면서 건의하였다. 세자는 하는 수 없이 부왕을 만났다. 겉으로는 평양을 다녀온 문제는 수습되는 듯했다. 당시 영조는 여러 후궁들을 거느리고 있었는데 그중에는 젊고 발랄한 문 숙의도 있었지만 새 중전 김씨에게 한동안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영조는 문 숙의의 처소를 찾았다. 이때 숙의 문씨는 영조에게 아양을 떨었다. "전화, 신첩의 소원은 나라 안의 명승.. 2020. 9. 3. 이전 1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