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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님의 여행 이야기

거대한 미륵이 자리하고 있는 < 김제 금산사 >

by 무님 2020. 10.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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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산사는 조선 성종 23년(1492)에 작성된 "금산사 5층 석탑 중창기"에 의하면, 금산사는 이미 석가모니 부처님 이전의 가섭불 때에 있었던 옛 절터를 다시 중창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는 금산사의 터전이 오래 전부터 부처님과 인연이 깊었던 것임을 알 수 있게 한다.
흔히 통일신라 시기 진표율사에 의하여 창건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엄밀히 따지면 그는 중창자이지 창건주는 아니다.
왜냐하면 "삼국유사"를 비롯한 기록에 의하면, 진표율사는 금산사의 순제법사에게 출가한 것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진표율사 이전에 이미 금산사가 창건되었음을 알게 한다. 남아있는 "금산사사적"의 기록에 의하여 금산사가 백제 법왕 1년인 599년에 창건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후 금산사의 모습이 크게 부각된 것은 통일신라 시기 경덕왕때 진표율사에 의한 중창 때문이다. 금산사에서 숭제법사의 가르침을 받아 수행을 하던 진표율사는 27세 때에 변산 부사의암(不思議庵)에서 철저한 수행에 전념하였다. 17년 간을 몸을 돌보지 않는 망신참의 고행을 통하여 마침내 미륵보살과 지장보살로부터 간자와 계본을 전해 받게 된다.
이후 진표율사는 금산사로 다시 돌아와 금산사의 중창불사를 발원하고, 경덕왕과 왕실의 후원을 받아 6년에 걸쳐 가람을 대규모로 일으켜 세웠다. 이 때가 경덕왕 21년인 762년부터 혜공왕 2년인 766년에 이르는 기간이었다.
금산사의 창건과 관련하여 "금산사사적"의 내용을 근거로 불 때 599년 백제 법왕의 자복사찰로 창건되었으며, 이후 진표율사에 의한 6년여의 중창으로 사찰다운 모습을 갖추게 되었음을 알 수 있다. 금산사가 미륵신앙의 성지로 자리 매김 한 것은 진표율사 때부터이다. 

 

금산사 <용화전>

 

 

금산사는 김제의 모악산에 자리하고 있다. 모악산은 『금산사지()』를 보면 ‘엄뫼’라는 말이나 ‘큰뫼’라는 말은 아주 높은 산을 의미하는데, 한자가 들어오면서 ‘엄뫼’는 어머니산이라는 뜻으로 의역해서 ‘모악’이라 했고, ‘큰뫼’는 ‘큼’을 음역하고 ‘뫼’는 의역해서 ‘금산()’이라고 적었다고 되어 있다.

구전에 의하면 모악산 꼭대기에서 아기를 안고 있는 어머니의 모습을 닮은 큰 바위가 있어 모악산이라 했다고 한다.

 

모악산 남부 기슭에 위치한 대한불교 조계종 제17교구 본사이다. 사실 누구나 한 번쯤은 들어봤을 만한 절인데, 고려시대 초기에 후백제의 왕이었던 견훤이 장남 신검에 의해 강제로 감금되었던 비운의 장소였기 때문이다. 

 

 

 

금산산의 용화전에 모셔져 있는 미륵전은 유명하다. 국보 제62호. 1층과 2층은 정면 5칸, 측면 4칸이고, 3층은 정면 3칸, 측면 2칸으로 된 팔작지붕 건물이다. 거대한 미륵존불을 봉안한 불전으로, 일명 용화전(殿)·산호전(殿)·장륙전(殿)이라고도 불린다.

미륵존불은 미륵이라 하면 미래에 오실 부처님이라는 것은 누구나가 아는 사실이다. 여러 경전을 통해 전해진 미륵신앙은 삼국의 불교인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인물들에게 영향을 준 신앙이었다. 물론 어지러운 시대에 혹세무민(惑世誣民)하는 자들이 미륵을 자처해 민중들에게 정신적 혼란을 초래케 하는 일도 있었다. 그러나 진실된 미륵신앙은 사람들에게 희망과 안락을 주는 신앙이다.
미륵이란 범어 'Maitreya'를 음역한 것으로 이것은 자비를 갖춘 분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자비라는 것은 포용력을 가지고 인류의 모든 기쁨과 슬픔을 대변하는 말로서 적극적인 종교적 실천 의지를 내포하고 있다

 

 

금산사는 오래된 고찰인만큼 많은 문화재와 보물을 가지고 있다. 그중에도 <방등계단>은 송대(松臺)라고 부르는 미륵전의 북쪽 높은 대지에 방등계단(方等戒壇)이 있다. 또한 이 계단의 중앙에 보물 제26호인 부도가 1기 있어 그 형태에 따라 석종형(石鐘形) 부도라고 부른다.

방등계단의 수계법회(受戒法會)를 거행할 때 수계단을 중앙에 마련하고, 그 주위에 삼사(三師)와 칠증(七證)이 둘러앉아서 계법을 전수하는 데 사용했던 일종의 의식 법회 장소이다. 이러한 예는 경상남도 양산의 통도사와 개성의 불일사(佛日寺) 등지에서만 찾아볼 수 있는 한국 불교의 독특한 유산이다. 불교의 정신을 대표하는 계(戒).정(定).혜(慧) 삼학(三學) 가운데 계는 으뜸으로서 계를 지킴은 불교의 기본 토대가 된다. 이 계의 정신이 일체에 평등하게 미친다는 의미에서 방등계단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한편 방등계단의 성격을 도솔천(兜率天)의 세계를 표현한 것이라고 보기도 한다. 즉 미륵신앙의 근본도량인 금산사에는 미륵의 하생처로서 미륵전을 조성하고, 그 위에 도솔천을 구현하여 미륵 상생 신앙을 나타냈다는 말이다. 결국 금산사는 미륵 상생 신앙과 하생신앙을 조화롭게 겸비하였다는 신앙적 성격을 지녔다는 뜻이 된다.

 

조선 시대의 생육신 김시습은 이 절을 찾아 이곳 방등계단에서 남긴 시가 한 수 전한다.

 

구름 기운 아물아물, 골 안은 널찍한데,
엉킨 수풀이 깔린 돌에는 여울소리 들려오네.
중천에 별들은 금찰(金刹, 금산사)을 밝히는데,
밤중에 바람과 우레가 석단(石壇, 방등계단)을 감싸 도는구나.
낡은 짐대「幢」엔 이끼 끼어 글자가 희미한데,
마른 나무에 바람 스치니 저녁 추위가 생기누나.
초제(招提, 객실)에서 하룻밤 자고 가니,
연기 속 먼 종소리에 여운이 한가롭지 않다.

 

 

금산사로 전라북도에 있어 가깝게 다녀오기에는 좋은 거리가 아닐지도 모른다. 그러나 한번 다녀오면 다시 발길을 하고 싶을 만큼의 매력을 가지고 있다. 금산사 주변의 경관 또한 뛰어나 걷기에도 좋은 코스로 알려져 있다. 기차와 고속버스로 이동이 가능하고 걸어서 다니기에도 좋은 길을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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