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76년(성종 7) 11월 7일 조선의 9대 왕인 성종의 맏아들(적장자)로 출생하였다. 어머니는 후궁이었다가 성종의 총애를 받아 왕비에 오른 윤씨이다. 당시 연산군의 어머니 윤씨는 성종(成宗)의 첫번째 후궁이었으며 이후 연산군을 잉태하면서 비(妃)로 책봉되었다. 하지만 연산군 나이 3세에 어머니 윤씨가 폐서인이되고 6세에 사약을 먹고 죽는다. 성종 14년인 1483년 연산군 나이 7세에 세자에 책봉이 된다. 12년 동안 세자 수업을 받은 후, 19세에 즉위하게 된다
연산군은 역사상 손꼽히는 악덕과 살육을 저른 왕으로 폭군으로 알려져 있다. 그리고 조선왕조 최초로 신하들에 의해 왕위에서 쫓겨난 인물이기도 하다. 사실, 실록을 통해 연산의 세자 시절을 살펴보면 딱히 뛰어나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모자라지도 않은 왕자, 즉, 존재감이별로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세자 연산은 어린 나이에 어머니 폐비 윤씨가 죽었기 때문에 어머니의 일을 정확히 알지 못했다. 다만 자신을 멀리하는 것을 어렴풋이 느꼈을 것이고 그로인해 연산은 무척 외로웠을 것이다. 실제로 이긍익의 <연려실기술>을 보면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나온다.
" 송아지 한 마리가 어미 소를 따라가고 있었는데, 어미 소가 음매하고 울면 뒤따르던 송아지가 곧바로 따라 울었습니다. 어미 소와 송아지가 ' 생전'하니 그것이 가장 부럽습니다."라고 하였다. "
연산군이 아버지 성종에게 위와 같이 이야기를 하였다고 한다.
연산은 즉위 초반에 어머니 폐비 윤씨의 죽음에 전말을 알게 된다. 즉위 초반에 아버지 성종의 묘지문을 보면서 어머니의 이야기를 듣게 된다. 묘지문이란 무덤의 주인이 어떠한 삶을 살았는지에 관한 인생 전환을 요약한 글이다. 연산은 아버지의 묘지분을 읽는 중에 '윤기견'이라는 사람의 이름을 보게 된다.
연산군이 신하에게 윤기견이 누구인가를 묻자 신하게 답하기를 폐비 윤씨의 아버지인데, 폐비 윤씨는 왕비로 책봉되기 전에 죽었다고 아뢰였다.
" 왕이 비로소 윤씨가 죄로 폐위 되어 죽은 줄 알고, 수라를 들지 않았다. "고 <연산군일기>에 적혀 있다.
연산군은 자기 어머니의 죽음에 동조하거나 방관한 자들에 대한 복수의 칼날을 잠시 뒤로 숨기게 된다.
연산군은 왕위에 등극하고 초반에는 성군의 자질을 보였다고 한다. 왕위 초반 빈민을 구제하는데 힘을 쓰기도 하고 선대왕들부터 진행 되었던 여러 편찬사업을 마무리 한다. <국조보감>, <여지승람> 등 여러 서적을 완성시킨다. 또한 왜구를 물리치기도 한다. 그리고 당시 궁중의 어른인 할머니 인수대비와 예조의 비였던 안순왕후, 성종의 계비였던 정현왕후를 잘 모셨다. 아버지 성종 대에 신하들의 권한이 강해지자이를 바로잡기 위하여 왕권을 강화하고자 노력한 왕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러한 시기도 잠시 폐비 윤씨의 일로 인한 피바람이 불기 시작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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