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홍립2 광해군의 중립외교 - 강홍립장군 (사흐루전투) 강홍립은 1560(명종 15)∼1627(인조 5). 조선 중기의 무신이다. 명나라의 원병으로 5도도원수(五道都元帥)가 되어 후금을 쳤으나 대패하였다. 후금에 억류되었다 정묘호란 때 입국하여 조선과 후금의 강화를 주선하였으나 후금에 투항한 역신으로 몰리기도 하였다. 1560년 병조참판 강신(姜紳)의 아들로 출생하였다. 본관은 진주(晉州). 자는 군신(君信), 호는 내촌(耐村). 강온(姜溫)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우의정 강사상(姜士尙), 아버지는 참판 강신(姜紳), 어머니는 정유의(鄭惟義)의 딸이다. 당대 명문가 출신으로 조부 강사상(姜士尙)의 벼슬은 우의정에 이르렀고, 아버지 강신은 정여립의 역모를 평정하여 평난공신에 책록되었다. 1589년(선조 22) 진사가 되고, 1597년 알성문과(謁聖文科)에 을과.. 2020. 5. 10. 광해군, 개혁과 중립외교를 펼치다 임진왜란이 한참 일어나고 있는 시기 14대 임금 선조는 의주로 도망을 친다. 1592년 임진왜란이 발생하였을 때 국난에 대비한다는 명분으로 피난지 평양에서 세자에 책봉되었다. ;선조와 함께 의주로 피난을 가다가 영변(寧邊)에서 갈라졌다. 선조는 의주로 향하고 광해군은 권섭국사(權攝國事)의 직위를 맡아 분조(分朝)의 책임자로 평안도 지역으로 출발하였다. 임진왜란 기간 중에 평안도·강원도·황해도 등지를 돌면서 민심을 수습하고 왜군에 대항하기 위한 군사를 모집하는 등 적극적인 분조활동을 전개하였다. 서울을 수복한 후 무군사(撫軍司)의 업무를 담당하여 수도 방위에도 힘을 기울였다. ;1597년 정유재란(임진왜란 중 왜군의 2차 침략을 따로 부르는 말)이 일어났을 때는 전라·경상도로 내려가 군사들을 독려하고 군량.. 2020. 3. 24. 이전 1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