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왜란이 한참 일어나고 있는 시기 14대 임금 선조는 의주로 도망을 친다. 1592년 임진왜란이 발생하였을 때 국난에 대비한다는 명분으로 피난지 평양에서 세자에 책봉되었다. ;선조와 함께 의주로 피난을 가다가 영변(寧邊)에서 갈라졌다. 선조는 의주로 향하고 광해군은 권섭국사(權攝國事)의 직위를 맡아 분조(分朝)의 책임자로 평안도 지역으로 출발하였다. 임진왜란 기간 중에 평안도·강원도·황해도 등지를 돌면서 민심을 수습하고 왜군에 대항하기 위한 군사를 모집하는 등 적극적인 분조활동을 전개하였다. 서울을 수복한 후 무군사(撫軍司)의 업무를 담당하여 수도 방위에도 힘을 기울였다. ;1597년 정유재란(임진왜란 중 왜군의 2차 침략을 따로 부르는 말)이 일어났을 때는 전라·경상도로 내려가 군사들을 독려하고 군량과 병기 조달은 물론 백성들의 안위를 돌보는 등 임진왜란 기간 동안 국가 안위를 위해 노력하였다. ;전쟁이 끝난 후 선조가 영창대군을 세자로 책봉하고자 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죽자 임진왜란 동안 많은 공을 세운 광해군이 대북파의 지지를 받아 1608년 왕위에 올랐다.
광해군은 자신의 왕권에 장애가 되는 요소들을 하나 둘씩 제거해 가면서 왕권을 강화하였다. 그러면서 임진왜란 중에 불탄 궁궐을 중수하거나, 민생 및 재정의 안정적 확보를 위해 대동법을 시행하는 등 전란으로 황폐해진 국가를 재건하는 데 주력하였다. 또한 허준을 지원해 동의보감 편찬을 마무리했다.
광해군이 시행한 개혁사업으로 < 양전사업 >을 실시하였다. 전쟁으로 조선의 토지는 크게 훼손되었으며, 세금을 걷을 기준이 되는 토지 대장에 누락된 토지가 많았으므로 전면적인 토지 재조사를 착수하였다. 이로써 안정된 세금확보를 하고자함이였다. 또한 병으로 지친 백성들의 삶을 위로하기 위해 < 동의보감 > 저술을 지시하였다. <동의보감> 편찬사업은 선조 당시에 시작되었는데, 왜란으로 잠시 중단되었다가 1601년 광해군이 재개하여 240여 종의 의서를 종함한 최고의 의서를 탄생시켰다. 그리고 조선 최고의 세금 개혁인 < 대동법 시행 >을 하였다. 대동법의 시행으로 백성들의 삶이 편안해 질수 있었으니 광해군의 업적 중 최고라 할 수 있다.
아울러 그는 당시 조선을 둘러싼 대외관계 속에서 실리외교를 지향하는 전향적 자세를 보였다.
광해군이 즉위할 당시 조선을 둘러싼 정세는 그리 썩 좋은 상태는 아니었다. 그동안 조선의 사대국가로서 명나라는 임진왜란 때 파병으로 재정이나 군사력부분에서 많은 손실을 보았다. 그 결과 사방에서 지방 세력이 발호하고 변방에서 야인들이 난을 일으켰다. 특히 건주위 여진을 중심으로 한 여진족의 동향은 종전과는 달랐다. 즉 서서히 명나라는 기울어져 갔으며, 반면 여진족은 점차 강성해지고 있었다. 이렇게 복잡하게 전개되던 대외관계 속에서 광해군은 국가의 국방 경비를 정비하는 한편 무기 제조 등 혹시 모를 사태에 대비하였다. 광해군의 입장에서는 멸망하는 용의 꼬리를 잡을 것인가? 아니면 성장하는 뱀의 머리를 잡을 것인가? 고민이 아닐 수 없었을 것이다. 이때 광해군은 철저하게 실리를 선택하였다.
마침 1618년 명나라에서 조선에 군사의 파병을 요청하였다. 조선으로서는 앞서 임진왜란 때 명나라에서 도와준 것을 생각하면 당연히 서둘러서 파병해야만 하였다. 당시 대부분 조정 신료들은 명나라의 요청에 신속하게 응해야 한다고 하였다. 그러나 광해군은 쉽사리 결정하지 못하고 시세를 관망하였다. 그리고는 끝내 파병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자 파병 군사의 대장이었던 강홍립에게 비밀 교지를 내려 후금과 대적하지 말고 시세를 보아 판단하라고 하였다. 전장에 도착한 뒤 치러진 심하 전투에서 대패하자 강홍립은 광해군의 밀지대로 오랑캐 진영과 협상을 하고 무조건 항복하였다. 후금에 투항한 강홍립 일행은 이후 광해군과 개인적인 서신교환을 통해 후금의 동정을 알려주었다, 그리고 이로 인해 후금의 누르하치는 조선의 부득이한 사정을 이해한다고 하면서 지속적인 우호관계를 유지하자고 제안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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