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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이야기

임진왜란의 숨은 영웅 < 의병 >

by 무님 2020. 3.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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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병이란 외적의 침입으로 나라가 위기에 처하자 스스로 일어나 싸운 의로운 병사들을 뜻한다. 양반과 상민, 천민 등 신분을 가리지 않고 참여했으며, 특히 임진왜란과 일제 침략기에 크게 활약했다. 

 

1592년 4월 13일에 부산 앞바다에 나타난 왜군은 불과 수십 일 만에 한양을 점령했고, 곧이어 평양까지 쳐들어가 한반도 대부분을 차지했다. 외적이 우리 땅을 차지하고 우리 민족을 죽이는 것을 본 사람들은 스스로 무기를 들고 일어났다. 특히 지방에서 어른 역할을 하던 양반 유학자들이 의병 활동을 주도했다.

의병은 처음에는 자기 마을을 지키기 위해 모였다. 마을을 이루고 있던 양반과 농민, 노비들이 모여 군대를 만든 것이다. 이 의병들을 이끄는 대장은 대부분 그 마을에서 이름이 높았던 양반들이 맡았다. 그러다가 여러 마을의 의병들이 합쳐져 좀더 큰 부대를 이루게 되었다. 이들은 먼저 자기 집 노비나 소작농민에게 무기를 들게 하고, 농민들을 설득해 의병을 일으켰다. 전국 각지에서 수많은 농민들이 의병에 참여했다. 다음 해인 1593년에 일어난 의병만 2만 2,600여 명이었다. 이는 관군의 1/4에 해당하는 규모인데, 전쟁이 일어난 첫 해에는 이보다 훨씬 많았을 것으로 짐작된다.

 

 

 

 

 

 

오랫동안 그 지역에서 살아온 의병들은 지형을 이용한 매복이나 기습으로 왜군을 공격했다. 의병의 활약으로 왜군의 이동 속도가 늦어졌고, 식량이나 무기는 물론이고 병력의 보급이 끊기는 경우가 많아졌다. 의병이 활약하는 사이, 다시 힘을 모은 관군은 명에서 보낸 원군과 함께 전세를 역전시킬 수 있었다.

임진왜란 때의 대표적인 의병장으로는 곽재우, 고경명, 조헌 등이 있다. 곽재우는 처음으로 경상도에서 의병을 일으켰다. 붉은 옷에 흰 말을 타고 스스로 ‘하늘에서 내려온 홍의 장군’이라고 부르며 기세를 올렸다. 곽재우 부대는 낙동강을 오르내리며 왜군과 싸워, 왜군이 함부로 낙동강을 오가지 못하게 하고 전라도로 진출하는 것을 막았다.

 

고경명은 전라도 각지에서 일어난 의병을 하나로 모아 금산에서 왜군과 정면으로 맞섰다. 고경명이 이끄는 호남 의병은 수천 명에 달했지만 체계적인 훈련도 받지 못하고 무기도 허술했기 때문에 크게 패했다. 고경명도 아들과 함께 전사했다. 조헌은 충청도에서 의병을 일으켜 2,000여 명의 병력으로 청주성을 되찾았다. 그리고 금산으로 이동해 그곳에 머물고 있던 왜군을 공격했다. 그러나 관군의 지원을 받지 못해 조헌 부자를 비롯한 700여 명의 의병이 모두 죽고 말았다. 금산에는 이들을 함께 묻은 칠백의총이 지금까지 남아 있다.

고경명, 조헌의 부대처럼 의병은 왜군과의 전투에서 지기도 했지만, 왜군에게도 큰 피해를 입혔다. 의병들의 활약 덕분에 충청도 일부와 전라도 지방이 왜군의 침입으로부터 무사할 수 있었다. 이외에도 서산 대사 휴정, 사명 대사 유정 등 스님들도 승군을 일으켜 왜군을 물리치는 데 앞장섰다.

 

임진왜란 '전국 최초 의병'은 박진영 장군

 

또한 행주대첩에서도 숨은 영웅들이 있다 권율이 행주산성에서 3만여 명의 일본군과 치열한 전투를 벌였다. 행주산성은 길이 좁고 남쪽으로 한강이 지나서 일본군이 쉽게 덤비기 힘든 곳이었다. 게다가 권율이 이끄는 군대는 수십 개의 불화살을 연이어 쏘는 화차 등 새로운 무기를 단단히 갖춘 상태였다. 성안에 있던 여자들까지 나서서 행주치마로 돌을 나르며 군대를 도왔고 그 덕분에 조선군은 일본군을 크게 물리칠 수 있었다

 

왜란으로 피폐해진 조선 땅. 왕은 도망치고 조정대신들은 입으로만 싸워대고 있던 그 순간에도 조선의 백성은 자기의 땅을 지키려 목숨을 걸었던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역사에 남아 있는 영웅의 이름만이 아닌 이름도 없이 맨손으로 목숨을 걸고 싸웠던 그들을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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