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세자 묘2 정조의 효심으로 만들 도시 수원 <현릉원 > 1789년 정조 13년 7월 영조의 부마인 금성위 박명원이 양주으 배봉산 기슭에 있는 사도세자의 묘를 다녀와서 상소을 올렸다. "뱀 등이 묘지 가까운 곳에 똬리를 틀고 망주석은 쓰러져 있고 봉분에는 억새불이 돋아 처량하기 그지없었습니다." 박명원 상소문을 읽은 정조는 가슴이 미어지는 듯했다. 왕의 아버지의 묘가 이 지경이라니 도무지 믿기지 않았다. * 그날의 기록 정조는 조정의 대신들을 희정당에 불러 승지로 하여금 박명원의 상소를 대신 읽게 하였다. 그러자 대신들은 정조의 뜻을 따르겠다고 말했다. 정조는 아버지 묘를 이장하기로 결정하고 그 장소는 수원부의 관청 뒤쪽으로 정하고 서유방을 경기관찰사로, 조심태극 수원부사에 임명하여 이장에 대한 일을 맡겼다. 사도세자의 이장은 신속하게 처리.. 2020. 9. 17. 정조의 업적 2 ( 장용영 설치, 수원화성 건설 ) 1. 장용영 설치와 수원화성 건설 정조는 상당히 많은 암살 위기에 시달리기도 했다. 이러한 암살 위기는 정조에게 결국 자신을 호위할만한 군사의 필요성을 상기시키게 하였다. 당시 군영은 대부분 주요 당파에 장악된 상황이었기 때문에 임금을 지키기보다는 자신의 당파를 위해 일한다는 느낌이 강했다. 결국 1784년 자신의 아버지 사도세자의 존호를 축하하기 위해 경과를 실시 무과에서 무려 2000명의 합격자를 배출시켰고 이후 홍복영의 역모 사건을 계기로 1785년 장용위를 설치하게 된다. 그리고 1788년 장용위를 장용영으로 개칭하면서 정조는 하나의 자신의 친위 부대를 가지게 되었다. 이후 정조는 아버지의 묘를 이장하면서 동시에 이상 도시를 건설하게 된다. 바로 수원화성의 건설이다. 이 이상 도시의 건설을 통해 .. 2020. 9. 9. 이전 1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