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양대군4 세조의 신하가 된 신숙주 신숙주는 조선 초기의 문신으로 영의정을 지냈으며 4차례 공신의 반열에 올랐던 인물이다. 본관은 고령(高靈). 자는 범옹(泛翁), 호는 희현당(希賢堂) 또는 보한재(保閑齋). 신덕린(申德麟)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공조참의 신포시(申包翅)이고, 아버지는 공조참판 신장(申檣)이며, 어머니는 지성주사(知成州事) 정유(鄭有)의 딸이다. 신숙주의 부친인 신장은 참판이라는 벼슬이 보여주듯 뛰어난 능력을 가진 인물이었다. [세종실록]에 실려 있는 그의 졸기에는 그가 인품이 온후하고 사장(詞章) 과 초서ㆍ예서에 뛰어났지만, 술을 너무 좋아한 것이 단점이었다고 적혀 있다. 그의 능력을 아낀 세종이 절주를 당부했지만, 과음은 결국 그의 사인(死因)이 되었다(세종 15년 2월 8일). 그러니까 신숙주는 16세 때 아버지를 .. 2020. 4. 1. 세조의 비, 정희왕후 윤씨 조선 7대왕 세조의 왕비인 정희왕후(貞熹王后,1418~1483)는 세종부터 성종까지 조선이 개국 이후 혼란을 수습하고 안정을 찾아가는 과정을 가장 가까이서 목격하고, 또 적극적으로 정치에 관여한 여인이다. 처음 왕자의 아내로 조선 왕실과 인연을 맺은 그녀는 이후 왕비가 되었고, 왕을 고를 수 있는 권리를 놓쳐버리지 않았으며, 수렴청정을 통해 7년간 국가정책 최고결정권자의 자리에 있기도 하였다. 정희왕후의 65여 년 간의 인생은 격동의 조선 전기 정치사 어느 한 부분에서도 빠진 적이 없었다. 정희왕후 윤씨의 본관은 파평(坡平)이고, 시호는 정희(貞熹), 생전의 존호는 자성(慈聖)이다. 세종(世宗) 때에 판중추원사(判中樞院事)를 지낸 윤번(尹璠)의 딸이며, 1418년(태종 18) 당시 청주판관(淸州判官)으로.. 2020. 4. 1. 조선 7대 왕 세조 - 이유 조선 제4대 세종은 1417년 세종의 둘째 아들로 출생하였으며, 어머니는 소헌왕후(昭憲王后) 심씨(沈氏)이다. 휘(諱)는 유(瑈), 자는 수지(粹之), 시호는 혜장(惠莊)이다. 윤번(尹璠)의 딸과 혼인하였으며 왕위에 등극하여 정희왕후(貞熹王后)가 되었다. 형인 문종에 비해 학문보다 무예(武藝)에 능하고 병서(兵書)에 밝았으며, 진평대군(晉平大君)·함평대군(咸平大君)·진양대군(晉陽大君)이라 칭하다가 1445년(세종 27)에 수양대군(首陽大君)에 봉해졌다. 세종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른 문종이 재위 2년 3개월 만에 갑자기 승하하고, 12세의 어린 나이로 홍위(단종)가 즉위하자 자신이 왕위에 오르기 위한 야망을 가지게 되었다. 단종 재위시인 1453년 계유정난을 일으켜 정적이었던 김종서를 제거하고 권력을 장.. 2020. 2. 26. 단종, 어린나이에 상왕이 되다. 조선의 6대 왕 단종은 12세의 어린나이에 왕위에 오른다. 그의 즉위는 혈헌단신으로 아무도 곁을 지켜주는 이 없이 오르게 된다. 문종이 2년 2개월의 짧은 재위기간을 마치고 승하게 되는데 이때 어린 세자를 걱정하며 고명대신에게 유언을 남기게 된다. 문종은 자신이 병약하고 세자가 나이 어린 것을 염려하여 황보 인(皇甫仁) ·김종서(金宗瑞) 등에게 세자가 즉위하여 왕이 되었을 때의 보필을 부탁하였다. 한편 집현전(集賢殿)의 학사인 성삼문(成三問) ·박팽년(朴彭年) ·신숙주(申叔舟) 등에게도 좌우협찬(左右協贊)을 부탁하는 유언을 내렸다. 단종에게 형제는 없었지만 아버지의 형제들인 숙부들이 있었다. 하지만 숙부였던 수양대군과 안평대군은 대단한 야심가 였다. 그런 그들로부터 문종의 유언을 받은 김종서와 황보인등은.. 2020. 2. 21. 이전 1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