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괄의난3 김자점, 인조반정의 공신? 나라의 역적!! 김자점은 조선 중기의 문신이다. 이귀 등과 인조반정을 성공시켰으며 이후 출세가도를 달렸다. 효종이 즉위하고 송시열 등 사림세력의 등용으로 북벌론이 대두되자 위협을 느끼고, 청나라에 누설하였다. 이후 유배되었다가 아들 김익의 역모사건이 발생하자 처형되었다. 본관 안동. 자 성지(成之). 호 낙서(洛西). 성혼(成渾)의 문인. 성삼문과 함께 단종복위를 도모하다 동지를 배반하고 세조에게 고해바친 김질(金礩)의 후손이며 할아버지는 강원도 관찰사를 지낸 김억령이다. 음보로 출사해 병조좌랑에까지 이르렀으나 인목대비(仁穆大妃)의 폐비 논의에 반대하는 등 광해군 때에 대북 세력에 맞서다가 정계에서 축출당하였다. 처음에 최명길(崔鳴吉)·심기원(沈器遠)과 함께, 사돈 관계에 있는 이귀(李貴)를 중심으로 반정을 모의하던 중.. 2020. 6. 3. 인조시대 관련 사건 - 이괄의 난 이괄의 난은 인조반정 때 공을 세운 이괄이 1624년에 일으킨 반란이다. 한때 한양을 점령하기도 했지만 반란군 내부의 분열과 관군의 반격으로 실패했다. 광해군(光海君, 재위 1608~1623) 때에 제주목사, 함경도 북병사(北兵使) 등을 지낸 이괄(李适, 1587~1624)은 1623년에 일어난 인조반정에서 인조(仁祖, 재위 1623~1649)를 왕으로 즉위시키는 데 큰 공을 세웠다. 그는 1622년(광해군 14년) 함경도 북병영의 병마절도사에 임명되어 임지로 떠날 준비를 하고 있다가 신경유(申景裕)의 권유로 반정(反正) 모의에 참여했으며, 거사 당일에도 반군을 통솔하기로 했던 김유(金瑬)를 대신해서 실질적으로 군사를 지휘하여 반정을 성공으로 이끌었다. 당시 반정 세력이 병력을 이끌고 홍제원(弘濟院)에 .. 2020. 5. 20. 인조시대 정묘왜란이 일어나다 조선 인조 때인 1627년에 후금이 조선을 침략하여 벌어진 전쟁이다. 후금은 광해군 폐위 문제를 구실로 쳐들어왔다가 조선과 협상을 벌인 뒤 강화를 맺고 돌아갔다. 두 나라는 이 전쟁을 계기로 ‘형제’의 관계를 맺었으나 오래가지는 못했고 9년 뒤 병자호란이 일어났다 병자호란의 배경을 살펴보면 광해군때부터 살펴봐야 한다. 1월 중순부터 3월 초에 걸쳐 약 2개월 동안 계속되었다. 만주에 흩어져 살던 여진족은 조선과 명나라가 임진왜란으로 국력이 피폐해진 틈을 타 건주위(建州衛) 여진의 추장 누르하치(奴兒哈赤)를 추대해 여러 부족을 통합, 1616년(광해군 8) 후금을 세우고 비옥한 남만주의 농토를 탐내어 명나라와 충돌하게 되었다. 명나라는 양호(楊鎬)를 요동경략(遼東經略)으로 삼아 10만 대군으로 후금 토벌에.. 2020. 5. 19. 이전 1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