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항복2 백사 이항복 '오성과 한음' 백사(白沙) 이항복(李恒福, 1556∼1618)은 조선시대 이조판서, 예문관대제학, 우의정 등을 역임한 문신이며 조선시대에서도 특히 친숙한 인물이다. 그의 이름이 낯설더라도 ‘오성과 한음’이라고 말하면, 대부분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부연이 필요 없겠지만 ‘오성(鰲城)’은 오성부원군 이항복이고 ‘한음(漢陰)’은 한원부원군 이덕형(李德馨, 1561~1613)이다. 서로 다섯 살 차이인 두 사람은 뛰어난 인물이 특히 많이 배출되었던 16세기에도 우뚝한 존재였다. 이항복의 본관은 경주고 자는 자상(子常), 호는 백사(白沙)ㆍ동강(東岡)이다. 고려 후기의 대학자 이제현(李齊賢)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우참찬(정2품)까지 오른 이몽량(李夢亮)이고 어머니는 현감 최윤(崔崙, 본관은 전주)의 딸이다. 이항복은 1556.. 2020. 5. 13. 광해군시대 사건 - 회퇴변척 회퇴변척은 1611년(광해군 3) 3월 정인홍이 무함을 받은 스승 조식의 변호를 위해 이언적과 이황을 비판하며 배척한 일이다. 1611년(광해군 3) 3월에 우찬성 정인홍(鄭仁弘)이 스승 조식(曹植)이 퇴계(退溪) 이황(李滉)으로부터 무함 받은 것을 변호한다는 구실로 차자(箚子)를 올려 이황을 비판하고 아울러 회재(晦齋) 이언적(李彦迪)의 과오까지 지적하였다. 이에 이목(李楘) 등 500여 명의 유생이 단체로 소를 올려 이언적과 이황을 옹호하면서 정인홍의 ‘회퇴변척’을 공격하고, 그의 이름을 성균관의 유적(儒籍, 청금록)에서 삭제하였다. 이에 광해군이 유생들을 처벌하려 하자, 그들은 성균관을 나가 권당(捲堂)에 들어가는 등 소동이 벌어졌다. 이후 관료들과 지방 유생들까지 양측으로 나뉘어 몇 달이나 시비 .. 2020. 5. 7. 이전 1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