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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희재2

숙종 20년 갑술환국 갑술환국은 1694년(숙종 20) 폐비민씨(廢妃閔氏) 복위운동을 반대하던 남인(南人)이 화를 입어 실권(失權)하고 소론과 노론이 재집권하게 된 사건이다. * 조선왕조실록 그날의 기록 발단은 음력 3월 23일, 우의정 민암이 서인 노소론이 함께 민심을 불안케 하는 풍문을 퍼뜨리고 뭔가를 꾸미고 있다는 서인 함이완의 밀고를 받으면서 일어났다. 숙종은 이들을 모두 체포하여 의금부에서 엄히 조사하고, 특별히 엄중한 형벌을 쓰라고 명하였다. 3월 25일 우윤 겸 포도대장이자 중전 장씨의 오라비 장희재가 소론과 왕래한 것을 사죄했으나 숙종은 되려 위로 했으며 뇌물 수수 혐의도 다음날 국문에서 부정되었다. 그리고 노론의 김춘택과 지방의 거부 출신 무인 이시도, 소론의 한중혁 부자 등이 줄줄이 끌려왔다. 이 과정에서 .. 2020. 7. 10.
숙종 15년 기사환국 기사환국은 1689년(숙종 15) 남인(南人)이 희빈장씨의 소생인 원자(元子) 정호(定號) 세자 책봉 문제로 서인(西人)을 몰아내고 재집권한 일이며 숙종대에서 두 번째로 일어난 환국이다. 숙종은 즉위한 뒤 김만기(金萬基)의 딸을 왕비(王妃: 仁敬王后)로 맞았으나 1680년 10월에 왕비가 죽자, 민유중(閔維重)의 딸을 계비(繼妃: 仁顯王后)로 맞았다. 그 때 김만기·민유중 등은 모두 노론계였다. 그런데 인현왕후가 원자를 낳지 못하는 가운데 1688년에 숙종이 총애하던 소의 장씨가 아들을 낳게 된다. 발단은 장희빈의 아들(훗날의 경종)의 원호를 정하는 것에서 비롯되었다. 원호를 정한다는 것은 곧 이 아들을 숙종의 공식 후계자인 왕세자로 지정하겠다는 것과 같았다. 당연히 아직 강보에 싸인 후궁 소생의 왕자에.. 2020. 7.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