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환국은 1689년(숙종 15) 남인(南人)이 희빈장씨의 소생인 원자(元子) 정호(定號) 세자 책봉 문제로 서인(西人)을 몰아내고 재집권한 일이며 숙종대에서 두 번째로 일어난 환국이다.
숙종은 즉위한 뒤 김만기(金萬基)의 딸을 왕비(王妃: 仁敬王后)로 맞았으나 1680년 10월에 왕비가 죽자, 민유중(閔維重)의 딸을 계비(繼妃: 仁顯王后)로 맞았다. 그 때 김만기·민유중 등은 모두 노론계였다. 그런데 인현왕후가 원자를 낳지 못하는 가운데 1688년에 숙종이 총애하던 소의 장씨가 아들을 낳게 된다. 발단은 장희빈의 아들(훗날의 경종)의 원호를 정하는 것에서 비롯되었다. 원호를 정한다는 것은 곧 이 아들을 숙종의 공식 후계자인 왕세자로 지정하겠다는 것과 같았다.
당연히 아직 강보에 싸인 후궁 소생의 왕자에게 원호를 정해준다는 것은 천부당만부당하다며, 송시열을 필두로 김만중 등 서인들이 반발하였다.
즉, 영의정 김수흥(金壽興)을 비롯한 이조판서 남용익(南龍翼), 호조판서 유상운(柳尙運), 병조판서 윤지완(尹趾完), 공조판서 심재(沈榟), 대사간 최규서(崔奎瑞) 등 노론계는 한결같이 중전의 나이가 아직 한창인데, 두 달 만에 후궁 소생을 원자로 정함은 부당하다고 반대하였다.
숙종은 나라의 형세가 외롭고 위태로우며, 주위에 강한 이웃나라가 있어 종사(宗社)의 대계를 늦출 수 없다고 하여 반대론을 물리치고, 5일 만에 왕자의 정호를 종묘사직에 고하고 그의 생모인 장씨를 희빈으로 높였다.
이에 대하여 노론측의 영수 송시열(宋時烈)이 봉조하(奉朝賀)로서 옛날 송나라 신종(神宗)이 28세에 철종(哲宗)을 얻었으나 후궁의 소생이어서 번왕(藩王)으로 책봉하였다가 적자가 없이 죽게 되자 태자로 책봉하여 그 뒤를 잇게 한 고사를 들어 반대론을 다시 제기하였다.
그러나 이는 노론이 축출당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즉, 숙종은 승지 이현기(李玄紀)·윤빈(尹彬), 교리 남치훈(南致熏)·이익수(李益壽) 등과 의논하여 송시열의 관작을 삭탈하여 외지로 출송(黜送)시키고, 이어서 영의정 김수흥을 파직시켰으며, 목내선(睦來善)·김덕원(金德遠)·민종도(閔宗道)·민암(閔黯)·목창명(睦昌明) 등 남인계 인사들을 대거 등용하였다.
반면에 노론계는 송시열이 제주도로 유배되어 사사된 것을 비롯하여, 이이명(李頤命)·김만중(金萬重)·김수흥·김수항(金壽恒) 등이 복주(伏誅) 또는 유배당하였다. 그 해 4월에 이르러 숙종이 중전 민씨를 폐비할 뜻을 비추자, 이에 노론측은 오두인(吳斗寅) 등 86인의 이름으로 이를 저지하고자 하는 상소를 올렸지만, 그 주동자인 박태보(朴泰輔)·이세화(李世華)·오두인 등이 국문당하여 위리안치되거나 귀양갔으며, 5월 2일에 인현왕후를 폐비하고 희빈 장씨를 왕비로 책봉하였다.
후궁 장씨가 1686년에 처음 숙종의 총애를 받기 시작하여 숙원(淑媛)으로 봉해진 이듬해 조사석(趙師錫)이 우의정으로 올랐는데, 이는 장씨로 인한 정국변동과 무관하지 않았다. 조사석은 장씨의 외가와 친밀한 사이였기 때문에 이 무렵 동평군 항(東平君杭)은 종친으로서는 이례적으로 선혜청제조로서 궁중을 무상 출입하였는데, 숙원의 오빠 장희재(張希載)가 그와 연결을 맺고 있었다.
후궁 장씨의 이러한 주위 인물들이 마침내 그녀의 생남을 계기로 남인과 본격적으로 접촉을 가지게 된 것이다. 원자 정호 때는 민암·민종도·이의징(李義徵) 등의 남인이 동평군·장희재 등과 직접 연락을 가진 것으로 알려졌다.
원래 장씨의 집안은 작은아버지가 역관으로 중인 출신이었는데, 이러한 신분으로 왕비에까지 책봉된 것은 전례가 없는 것으로, 17세기 후반 이후 사회·경제상의 변동으로 상인·역관 등의 사회적 지위가 향상된 데 따른 현상으로 보인다. 이 일로 1683년 경신환국 이래 집권해 온 서인이 대거 축출되고 남인이 크게 진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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