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희2 태조 이성계가 만든 충신 두문동 72현 (야사이야기) 충절을 상징하는 두문동은 경기도 개퐁군 광덕면 광덕산 서쪽 기슭에 있던 예 지명이다. 고려가 망하자 조선을 반대했던 고려 유신 신규. 신혼. 신우. 신순. 조의생. 임선미. 이경. 맹호성. 고천상. 서중보. 성사재 등 72현이 두문동에 들어가, 끝까지 고려에 충성을 다하고 지조를 지키며 살았다. 새 왕조에 있어서는 두문동이 눈엣가시였다. 아무리 회유책을 쓰고 높은 관직을 준다 해도 반응이 전혀 없었다. 이성계는 생각다 못해 그들에게 문호를 개방하기 위해 과거시험을 치르도록 했다. 새로운 인재를 발굴하려는 뜻도 있었으나, 고려의 충절 높은 유신들을 끌어안기 위한 궁여지책이었다. 과거를 치르는 날 이성계는 초노한 마음으로 두문동의 인재들이 나타나기를 손꼽아 기다렸다. 그러나 이성계의 짝사랑일 뿐이었다. 두문.. 2020. 7. 15. 세종대왕과 황희 King Sejong and Hwang Hee 조선의 명재상을 꼽을라면 황희를 꼽을 수 있다. 우리에게 익숙한 황희는 고려말부터 조선 초기까지 활약하뎐 문인으로, 고려말 우왕-창왕-공양왕과 조선초 태조-정조-태종-세종-문종을 섬겼던 사람이기도 하다. 오랜 정치 생활에서도 그에게 유일하게 피곤한 왕이 있었으니 그게 바로 세종이였다. 오랜시간 나리일을 했던 황희의 나이가 90이 되었을 때 세종에게 아뢰기를 " 신의 나이가 90에 가까운데, 공이 없어 녹을 먹으오니 청하옵건대, 신의 직책을 파하여 하늘의 꾸지람에 응답하소서"하니 세종은 이에 윤허하지 않았다고 한다. 세종이 22세에 즉위할 당시 황희의 나이가 이미 56세였다고 한다. 환갑이 얼마남지 않았을 때에 세종에게 아뢰기를 "지극히 노쇠하여 귀먹고 잊음이 많아서 듣고 살피기가 이미 어렵사온데, 늙은 .. 2020. 2. 17. 이전 1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