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종의 후비는 대목왕후 황보씨와 경화부인 임씨 두 사람뿐이다. 두 사람 중 경화궁부인 임씨는 자식을 낳지 못했고, 대목왕후 황보씨는 경종을 비롯하여 2남 3녀를 낳았다. 경종의 동생 효화태자는 후사에 대한 기록이 없는 것으로 봐서 일찍 죽은 것으로 보인다. 세 공주 중에서 첫째는 천추전군에게 시집간 것으로 괴어 있어 천추전부인으로 기록되어 있고, 둘째는 보화궁부인으로 기록되어 있는 것으로 봐서 왕족 중 한 명에게 시집간 것으로 보이며, 셋째는 서종의 왕비 문덕왕후 유씨이다.
1. 대목왕후 황보씨 (생몰년 미상)
대목왕후 황보씨는 태조의 딸로 제4비 신정왕후 황보씨의 소생이다. 그녀의 성씨 황보는 어머니 쪽을 따른 것이다.
광종과 대목왕후의 결혼은 937년 이후부터 943년 이전에 이뤄진 것으로 짐작된다. 광종의 결혼이 특이한 것은 왕들 중에 첫 번째 족내혼이란 사실이다. 혜종이나 정종은 족외혼을 했다.
태조가 자식들을 형제끼리 결혼시킨 것은 신라 왕족의 풍습에 따른 것이었다. 이는 왕실 혈통의 순수성을 유지하고 왕권을 안정시키기 위한 배려였다. 광종은 비록 족내혼을 했지만 대목왕후의 배후에는 황주 황보씨 세력이 버티고 있었다.
그로 인해 대목왕후는 광종의 노비안검법을 강력하게 반대 했다. 황보씨의 외가가 호족이었으므로 무관할 수 없는 일이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광종에게는 그녀의 외가 역시 제거해야할 호족 중의 하나에 지나지 않았다.
그녀의 소생으로는 경종을 비롯하여 효화태자, 천주전부인, 보화궁부인, 문덕왕후 등 2남 3년가 있다. 사망연대는 분명하지 않으며, 광종과 함께 헌릉에 합장된 것으로 보인다.
2. 경화궁부인 임씨(생몰년 미상)
경화부인 임씨는 혜종과 의화왕후 임씨의 장녀이다. 그녀 역씨 어머니 성씨인 임씨를 따랐으며, 944년 (혜종2년)에 광종의 두 번째 부인이 되었다. 그녀의 결혼은 정치적 목적에서 이뤄졌다. 당시 혜종은 왕규로부터 왕요(정종), 왕소(광종) 형제가 모반을 계획하고 있다는 고변을 듣고 화합을 도모하기 위하여 되레 자신의 딸을 이복동생 왕소에게 시집보낸다. 따라서 임씨는 삼촌에게 시집을 간 셈인데, 당시 고려 사회에서는 흔히 있던 일이었다.
그녀의 생몰연대와 무덤에 관한 기록은 남아 있지 않다.
3. 효화태자
효화태자는 955년 이후에 태어났으며, 사적에 그 이름이 실전되었으며 후손도 없었다고 한다. 경종이 왕태자로 책봉되던 965년은 광종의 공포정치로 인해 많은 호족들과 왕족들이 죽임을 당했는데, 특히 일부 호족들 중에는 왕족을 등에 업고 반란을 일으키려는 자들도 나타났다. 따라서 경종 역시 광종으로부터 의심의 눈초리를 받으며 지내야 했지만, 효화태자가 요절해서 대안이 없었기 때문에 살려두었다는 견해도 있다. 실제 역사적으로 권력다툼 때문에 아버지가 아들을 죽이거나 아들이 아버지를 죽인 일은 찾아보면 꽤 많다. 고려시대만 봐도 충선왕이 자기 태자를 죽이고 충숙왕을 즉위시킨 이력이 있다.
4. 추천전부인
숙부 문원대왕과 문혜왕후 류씨(文惠王后 柳氏)의 아들 천추전군千秋殿君과 사촌혼을 했으며, 천추전군은 요절했다. 이후 천추전은 천추태후에게 상속된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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