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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이야기

고려왕조실록 - 광종실록

by 무님 2021. 4.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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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종은 신명순성왕후 유씨 소생이며 이름은 소, 자는 일화이다.

소는 925년 태조의 넷째 아들로 태어났으며, 949년 3월 동복형 정종의 선위를 받아 25세의 나이로 왕위에 올랐다.

광종은 왕자 시절에 정종과 더불어 왕실 세력의 핵심 인물이었고, 박수겨, 수문 형제와 왕식렴 등의 서경 세력과도 친분이 두터웠다. 때문에 왕규와 박술희가 이끄는 개경 세력을 제거하 데 큰 역할을 하였으며, 정종의 즉위에도 지대한 공헌을 하였다. 또한 이복형 혜종과도 친분을 가지면서 서경 세력과 혜종 사이에 교량 역할을 하였다. 

광종은 정종과는 판이한 성격의 소유자였다. 치밀하고 조심스럽지만, 기회를 잡았을 땐 과감하게 밀어붙이는 대범한 성격이었다. 최승로는 그가 특이한 풍채와 우수한 자질을 가지오 있어 태조로부터 남다른 사랑을 받았다고 쓰고 있다.

 

 

 

 

광종은 즉위 후 무려 7년 동안이나 국정 전반을 운영하며 좌지우지하는 호족 세력을 무던히 지켜보며 왕권을 강화시킬 방법을 모색했다. 950년 광종은 고려의 대외 위상을 높이기 위한 방법으로 '광덕'이라는 독자적인 연호를 공포하였다.

하지만 951년 후주가 중원의 맹주로 부상하자 고려는 그해 12월부터 다시 후주의 연호를 사용하기 시작하게 된다.

953년 광종은 후주와 본격적인 외교관계가 성립된 이후부터 암암리에  개혁작업을 시도한다.

955년 후주로부터 고려 국왕으로 공인된 광종은 후주의 왕명을 받고 사신으로 내왕한 설문우의 일행으로 고려에 온 쌍기를 자신의 정책을 수행해줄 인물로 조정에 들이게 된다.

956년  광종의 개혁작업의 본격적인 시작으로 노비해방법의 일환으로 노비안검법을 시행한다. 958년 노비안검법 실시로 호족의 힘이 약화되면서 왕권이 강화되자 광종은 ' 과거제 도입'을 시행하게 된다. 960년 관료들의 공복을 제정하였으며, 11월부터 '준풍'이라는 독자저긴 연호를 사용한다. 963년 12월부터는 송의 연호를 사용하게 된다. 

광종의 과감한 개혁정책은 결과적으로 호족 세력을 약화시키고 왕권을 안정시키는 역할을 하였다. 또한 과거제를 통하여 신진 세력이 대거 등장함으로써 정치권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켰으며, 문화적으로도 중국의 새로운 문물을 받아들여 독자적인 발전을 일궈낸다.

이외에 국방 분야에서도 광종의 치적은 뚜렷하게 두러 난다. 여진족이 머물고 있던 동북면과 서북면 방면으로 군사력을 집중시켜 영토를 넓혔으며, 거란과 여진의 침입에 대비하기 위하여 군제를 정비하고 병력을 증강시켰다.

하지만 그는 개혁 과정에서 중국에서 귀하해온 세력에게 지나치게 많은 힘을 실어주어 내국 관료들의 원망을 들었으며, 역모에 대한 경계가 너무 심해 신하들을 함부로 죽이는 폐단을 남기기도 했다. 

 

 

 

광종은 975년 5월에 병으로 몸져누웠다. 그리고 며칠 후 재위 26년 2개월 만인 51세를 일기로 생을 마감했다. 

능은 송악산 남쪽 기슭에 마련 되었으며, 능호는 헌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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