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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님의 여행 이야기

다산 정약용 생가, 실학박물관, 다산 공원

by 무님 2020. 6.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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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무님의 여행이야기> 다산 정약용 생가를 소개합니다.

정약용은 조선 후기의  실학자로 18세기 실학사상을 집대성한 한국 최대의 개혁가라 할 수 있다. 개혁과 개방을 통해 부국 강병을 주장하였던 인물이다. 다산 정약용( , 1762~1836년)이 태어나서 살다간 18세기 후반부터 19세기 전반의 조선 사회는 농경 사회에서 상공업 사회로 변화하는 시기였다. 따라서 농경 사회에서 그 나름의 보편성과 합리성을 가진 철학 체계로 사상적 지주가 되었던 성리학은 시대 사상으로서의 역할을 더 이상 감당할 수 없었다. 상공업 사회에 부응하는 기술 문명과 부국강병의 관심을 제고하는 북학 사상이 새로운 시대 사상으로 18세기 중반에 태동한 배경이다.

 

 

다산 정약용 생가

 

 

 

정약용을 떠올리면 오랜 시간 동안 겪어야 했던 귀양살이를 말하지 않을 수 없다. 귀양 살이라는 깊은 좌절 앞에서도 귀양이라는 정치적 탄압까지도 학문을 하라는 하늘의 뜻으로 받아들여 학문적 업적을 이루어 낸 그의 인내와 성실 그리고 용기에 지금의 많은 업적들이 있는지도 모르겠다.

다산 정약용 생가에는 선생이 말년을 보낸 생가 <여유당>과 선생의 묘 그리고 정약 사당인 문도사가 있다. <문도사>는

정약용 선생의 위패를 모신 사당으로 고종이 정약용에게 문도공이라는 칭호를 하사하며 그의 사당도 문도사가 되었다.

 

 

 

 

 

 

 

 

문도사를 지나 보이는 작은 언덕 위로 오르면 다산 선생의 묘가 있다. <다산 선생의 묘>는 부인 풍산 홍 씨와합장한 원형의 묘로 남향하고 있고, 묘 앞에는 비좌와 비신 및 팔작지붕 모양의 옥개석을 갖춘 비가 있다. 비신에는 2열로 ‘문도공다산정약용 숙부인풍산홍씨 지묘(  )’라고 씌어 있다. 비좌는 높이 31.5㎝, 너비 129㎝, 두께 90㎝이며, 비신은 높이 179㎝, 너비 69.5㎝, 두께 34.2㎝이고, 옥개석은 높이 62㎝, 너비 119㎝, 두께 81㎝이다. 묘역 앞에는 1959년에 세운 묘비 2기와 자연석에 여유당이라 쓴 비가 서 있다.

봉분 앞에는 혼유석, 상석, 육각향로석이 있으며 봉분 왼쪽에 1974년에 세운 비가 있다. 계체석과 상석 오른쪽에 제단이 있고 그 앞에 또 하나의 비와 망주석이 서 있다. 상석 옆에는 높이 250㎝, 너비 10㎝의 비석과 상석, 그리고 좌우에 망주석이 서 있다. 다산 선생의 묘를 내려오면 바로 여유당이 있다. <여유당>의 본래 위치는 다산유적지 입구 주차장 부근이었으나, 1925년 홍수로 소실되었던 것을 유적지 내에 복원하였다. 복원된 여유당은 사랑채와 안채로 구성되어 있어 소박한 모습이며, 사랑채 앞에 ‘여유당’이라는 현판을 붙여 놓고 있다. 전형적인 중부지방의 양반집 모습이다.

여유당의 마루에 앉아 잠시 쉬어 갔다. 필자는 마루에 앉아 마당을 거닐었을 선생의 모습과 그 위의 하늘을 바라보는 선생을 모습을 그려 보며 시간을 보내었다.

 

다산 선생의 생가를 나와 실학 박물관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실학박물관>은 실학’을 주제로 한 국내 유일의 박물관이다. ‘실학’은 조선 후기의 개혁적·실천적 학풍을 가리킨다. 실학자들은 공리공론이 아닌 실용적 지식에 관심이 있었고, 교조적 이념이 아닌 실사구시를 추구했다. 공동체의 문제를 고민했고, 일상의 삶을 주목했다. 도덕만 외치지 않고 민생에 실제적인 도움이 되는 방안을 강구했다. 외부의 사상과 문물에 대해 개방적이면서도, 우리 고유의 것을 소중하게 여겼다. 옛것을 배우되 잘 변용하여 새로운 것을 만들고자 했다. 실학박물관’은 실학 관련 유물과 자료를 수집·보존하며, 이를 연구·전시하고 있다. 조선후기의 대표적 실학자들을 만날 수 있고(2층 상설전시실), 반기마다 특별히 기획된 전시를 관람할 수 있다(1층 기획전시실)

 

이곳 박물관에 다산 정약용 선생이 남기셨던 많은 자료들이 있다. 박물관을 관람하다 보면 추사 김정희 선생이 그린  '세한도'를 볼 수 있다. 제주도 유배 시에 자신의 상황을 표현한 그림으로 '세한도'라는 이름은 '추운 겨울이 된 뒤에나 소나무와 잣나무가 푸르게 남아 있음을 볼 수 있다.'는 논어의 구절에서 따왔다고 한다.

박물관에는 책에서만 보았던 많은 자료와 가구가 복제돼 전시되어 있는데 이 많은 유물들을 보며 조선 후기 실학자들이 일상의 삶을 주목하고 민생에 실제적인 도움이 되는 방안을 열심히 연구하였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박물관을 뒤로하고 다산 생태 공원으로 갔다. <다산생태공원>은 생태·역사·문화가 어우러진 친환경적인 가치를 부여할 수 있는 물환경 생태공원으로 다양한 초화가 조성되어 이용객이 자연과 교감할 수 있는 수변공원이다. 또한 생태해설사가 있어 공원 내에 서식하고 있는 다양한 식물에 대한 정보제공과 한강을 사랑한 정약용 선생의 생애 이야기를 전해 들을 수 있다. 소내나루전망대,숲속놀이터,다산유아숲체험원,소내데크,수변소내길,수월정,푸른물센터,소내나루터,잔디마당,수변쉼터,정화습지,팔당호조망대,연꽃단지 등이 조성 되어 있다.

산책로를 걷다 만나게 되는 팔각정은 '수월정'이라고도 하여 '물에 비친 달을 감상할 수 있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으며 소내나루 전망대에 오르면 팔당호의 조경과 소내섬도 볼 수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곳곳에 배치된 벤치에서 보게 되는 전경은 혼자여도 서럽지 않을 아름다운  모습을 내어 준다.

다산 유적지는 대중교통을 이용하여 오기에는 쉽지 않은 곳이다. 하지만 자꾸 걸음 하게 되는 것은 이곳에 앉아 바라보는 모든 순간이 늘 아름답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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