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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님의 여행 이야기

퇴계 이황의 마지막 발자취 < 도산서원 >

by 무님 2020. 6.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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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무님의 여행이야기 > 입니다. 오늘은 도산서원을 소개하겠습니다.

도산서원은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된 곳으로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유학자이자 선비인 퇴계 이황이 세상을 떠난 후 그의 제자들에 의해 건립되었다고 합니다. 현재의 도산서원은 퇴계선생 생전에 성리학을 깊이 연구하며 제자들을 가르쳤던 도산서당 영역과 퇴계 사후에 학문과 덕행을 기리기 위해 지은 도산서원 영역으로 나뉩니다. 서원 전체 영역의 앞쪽으로 자리잡은 건물들은 도산서당 영역에 속하고, 그 뒤편에 들어선 건물들은 도산서원 영역에 속합니다.

 

 

도산서원 음성 해설

 

도산서당은 계상서당이 좁고 또 제자들의 간청이 있어 집 뒷산 너머 도산 자락에 지었는데 도산서당이 완서오딘 뒤에도 퇴계 선생은 계산서당에서 도산으로 왕래하였고 이곳에서 별세하였습니다.

<열정>은 도산서당의 한 구석에 돌로 쌓은 우물로 말은 우물이라는 뜻입니다. <몽천>은 몽매한 제자를 바른 길로 이끌어 가는 스승의 도리와 어리석고 몽매한 심성을 밝게 깨우치도록 끊임업는 노력으로 자신을 이룩하라는 뜻으로 퇴계 이황선생이 제자에게 주는 교훈을 담고 있습니다.

<정우당>은 연꽃이 심어 있던 작은 연못으로 퇴계 선생이 진흙탕에 살면서도 몸을 더럽히지 않는 연꽃러럼 살겠다는 의지가 담긴 곳이라 할 수 있습니다. 도산 서원 바로 옆에 있는 <절우사>는 퇴계 선생께서 대나무와 매화, 소나무를 기르던 정원이였습니다. <광명실>은 책을 보관하는 서고로서 현판은 퇴계 선생의 친필이다. 동.서 두곳으로 나뉘어져 있으며, 습해를 방지하기 위하여 누각식으로 지었습니다.

진도문을 지나면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전교당이 나온다. 전교당 마당에 들어서면 전교당 옆으로 동재와 서재가 있습니다. <동.서재>는 도산서원의 유생들이 거처하면서 공부하는 건물로 지어진 집입니다. 서로 마주보고 있는데, 동편 건물을 '박약재', 서편 건물을 '홍의재'라 합니다.

가운데 자리하고 있는 전교당은 서원의 중심이 되는 건물로 조선 선조 7년에 건립된 대강당입니다. '도산서원'의 사액현판이 게시되어 있으며, 스승과 제자가 함께 모여 학문을 강론하던 곳입니다. <장판각>은 서원에서 찍어낸 책의 목판본을 보관하던 장소입니다. 선조어필, 퇴계선생 문집,유묵, 언행록, 병서, 도산십이곡 등의 목판 2790장이 보관되었다가 2003년 5월에 한국국학진흥원으로 이관되었다고 합니다. 전교당 뒷편의 삼문을 지나면 상덕사가 있습니다.

<상덕사>는  선생의 위패를 모신 사당입니다. 퇴계 선생의 위패와 제자인 월천 조목의 위패가 함께 모셔져 있습니다. 매년 춘.추에 향사를 지낸다고 합니다. 상덕사 옆으로 있는 작은 문을 지나면 <진청사>가 있습니다. 진청사는 상덕사에서 향사를 지낼 때 제수를 마련하여 두는 곳입니다 제수청과 주고가 있습니다.

 

퇴계 선생은 도산서당터를 찾고 기쁜 신정을 이와 같이 남겼습니다. 

' 처음에 내가 퇴게 위에 자리를 잡고, 시내 옆에 두어 칸 집을 얽어 짓고 책을 간질하고 옹졸한 성품을 기르는 처소로 삼으려 했으나 벌써 세번이나 그 자리를 옮겼으나 번번이 비바람에 허물어졌다. 그리고 그 시내 위는 너무 한적하여 가슴을 넓히기에 적당하지 않기 때문에 다시 옮기기를 작정하고 산 넘어 남쪽에 땅을 얻었던 것이다.'

도산서원은 조선 중기 이래 이상 사회 건설에 뜻을 두어던 많은 사림을 배출해 낸 곳입니다. 지금은 관광지처럼 되어버려 도산서당을 지었던 퇴계 선생님의 뜻과는 잘 어울리지는 않는 모습으로 개보수 되었지만 퇴계 선생의 모습을 볼 수 있는 마지막 장소이기도 합니다.

 

도산서원

 

전교당 오른쪽의 문을 지나면 고직사가 있다. <고직사>는 서원을 관리하는 수호인들의 살림집으로 상.하 두 고직사가 있습니다. 도산서당의 정문을 들어서 오른쪽에 있는 건물은 농운정사입니다. <농운정사>는 제자들이 공부하던 기숙사입니다. 선생께서 제자들에게 공부에 열중하기를 권장하는 뜻에서 한자의 '工'자 모양으로 짓도록 하였습니다. 공부하던 동편 마루를 '시습재'라 하고, 휴식하던 서편 마루를 '관란헌'이라 하였습니다. 도당서당 정문을 들어서기 전 가장 먼저 보이는 곳은 <역락서재>로 퇴계선생이 도산서당에서 학문을 강론할 때 정사성을 비롯한 뜻 있는 제자들이 힘을 합쳐 세웠습니다. 현판은 퇴계 선생의 친필이라고 합니다.

 

도산서당 앞에 안동호에는 <사신단>이 있습니다. 사신단은 조선 정조 16년에 정조 임금이 평소에 흠모하던 퇴계선생의 학덕을 기리고 지방 선비들의 사기를 높여 주기 위하여 어명으로 특별 과거인 '도산별과'를 보인 장소입니다. 총 응시자가 7228명이었고, 임금이 직접 11명을 선발하였습니다.

 

이제 도당서당 곳곳의 모습을 둘러보고 돌아서 나온니다. 먼길 이곳을 보고 싶은 마음에 열심히 달려왔고 찬찬히 둘러 봤고 순간순간을 마음에 담았습니다. 하지만 마지막 문을 나서면서도 아쉬움이 남는 건 어쩔 수 없습니다. 오랜 시간 퇴계 선생을 생각하며 꼭 오고 싶었던 곳이기에 꽤 열심을 다해 둘러보고도 부족하게 느껴집니다.

잠시 안동호의 모습을 바라 봅니다. 안동호 위에 작은 섬 '사신단'을 바라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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