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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이야기

명종, 양재역 벽서 사건

by 무님 2020. 4.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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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종 2년(1547)에 일어난 조선시대의 사화(士禍)로.일명 벽서의 옥(壁書獄), 양재역벽서사건이라고도 한다. 을사사화의 뒤치다꺼리 격으로 윤원형이 이끄는 소윤이 대윤 일파의 잔당을 숙청한 사건이다. 외척으로서 정권을 잡고 있던 윤원형()세력이 반대파 인물들을 숙청한 사건으로, 정미사화라고도 불린다.

 

 

중종 말년부터 경원대군()의 외숙인 윤원로()·윤원형을 중심으로 한 소윤() 일파와 세자의 외숙인 윤임()을 중심으로 하는 대윤() 일파 사이의 대립이 심화되었다.

중종의 뒤를 이은 인종이 재위 8개월 만에 병으로 죽고 경원대군이 즉위하는 한편, 윤원형의 누이인 문정왕후()가 수렴청정을 실시하자, 소윤 세력은 역모를 씌워 대윤을 중심으로 한 반대 세력을 숙청하였다. 이것이 이른바 을사사화로, 그 과정에서 사림()계열의 인물들까지도 많이 희생되었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소윤 세력이 자신들에 대한 정적으로서 잠재력을 가지고 있는 잔존 인물들을 도태시키려고 일으킨 것이다.

1547년(명종 2) 9월 부제학 정언각()과 선전관 이로()가 경기도 과천의 양재역에서 ‘위로는 여주(), 아래에는 간신 이기()가 있어 권력을 휘두르니 나라가 곧 망할 것’이라는 내용으로 된 익명의 벽서를 발견해 임금에게 바쳤다.

 

' 명종2년(1547) 9월에 정언각이 이로와 함께 왕에게 찾아가 아뢰었다.
 신의 딸이 남편을 따라 전라도로 시집을 가는데 부모 자식 간의 정리에 멀리 전송하고자 하여 한강을 건너 양재역까지   갔었습니다. 그런데 벽에 붉은 글씨가 있기에 보았더니, 국가에 관계된 중대한 내용으로서 지극히 놀라운 것이었습니다. 이에 신들이 가져와서 봉하여 아룁니다. 이는 곧 익명서이므로 믿을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국가에 관계된 중대한 내용이고 인심이 이와 같다는 것을 알리고자 하여 아룁니다.

 

정언각이 발견한 양재역에 있던 벽서의 내용이다.
여왕이 위에서 정권을 잡고 간신, 이기 등이 아래에서 권세를 농간하고 있으니 나라가 장차 망할 것을 서서 기다릴 수 있게 되었다. 어찌 한심하지 않은가. , , , ?
<명종실록 2년 9월 18일조 (정미)>    '

 

윤원형·윤인경()·이기·정순붕()·허자() 등은 이전의 처벌이 미흡하여 화근이 살아 있는 까닭이라고 주장하였다. 이에 지난날 윤원형을 탄핵한 바 있는 송인수(), 윤임 집안과 혼인 관계에 있는 이약수()를 사사하고, 이언적()·정자()·노수신()·정황()·유희춘()·백인걸()·김만상()·권응정()·권응창()·이천계() 등 20여 명을 유배하였다.

이 중에는 사림계 인물들이 많았다. 또한, 중종의 아들인 봉성군 완()도 역모의 빌미가 된다는 이유로 사사되었으며, 그 밖에 사건의 조사 과정에서 희생된 인물들이 많았다.

1565년 소윤 일파가 몰락함으로써 노수신·유희춘·백인걸 등이 다시 요직에 등용되었으며, 선조가 즉위하고 사림 세력이 중앙 정계를 장악한 뒤로는 벽서사건 자체가 무고로 공인되는 한편, 연루된 인물들에 대한 신원과 포장이 여러 단계에 걸쳐 행해졌다. 이 사건은 익명으로 쓰여진 것을 문제삼았다는 절차상의 잘못이 많이 지적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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