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라는 명칭은 고려 건국 당시에 새롭게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고려는 어원적으로 볼 때 고구려라는 명칭의 유래를 살펴보면 알 수가 있다. '고(高)'는 한자어에서 높여서 부르거나 또는 미칭으로 덧붙일 때 쓰는 접두사에 지나지 않기 때문에 별다른 뜻이 없다. 굳이 뜻을 붙이려고 한다면 '위대한', '숭고한', '고씨의' 등의 형용사로 해석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구리'는 고려어로 성, 읍, 고을 등의 의미하는 '홀' . '골' . '구루' 등을 음차한 것이다. 따라서 고구려는 '고씨의 고을', '위대한 성읍' 등으로 풀이되고, 고려는 고구려의 줄임말이거나 '구루'에 대한 한자식 표기로 볼 수 있다.
918년 왕건에 의해 건국되었고 34대 공양왕(恭讓王)까지 475년간 존속했다. 신라 말에 송악(松嶽:開城)의 토호(土豪)였던 왕건은 태봉(泰封)의 왕인 궁예(弓裔)의 부하로 있다가 918년 궁예를 추방하고 즉위하여 국호를 고려, 연호를 천수(天授)라고 하여 고려를 건국하였다. 개경(현 황해도 개성시)을 수도로 삼았으며 936년 후삼국시대를 형성하고 있던 한반도를 하나의 국가로 통일하였다.
통일국가를 이룬 왕건에게는 두가지의 중요한 과제가 남아 이었다.
첫째는 지방 호족 세력을 중앙으로 결집시켜 중앙집권적 지배체제를 확립하는 일이었고
둘째는 고려가 고구려의 계승자임을 확인시키기 위한 고구려 고토회복운동을 전개하는 일이었다.
* 중앙집권적 체제를 위한 혼인정책
고려의 초기 형태는 호족연합체제적 성격이 짙었다. 따라서 통일 이후에도 지방 호족들은 여전히 독자적인 세력을 형성하고 있었고, 그것은 왕권에 위협이 되는 일이었다. 왕건은 고려 건국 이전부터 건국에 참여하는 장수들과 유대 관계를 강화하기 위해 이른바 혼인 정책이라는 화합책을 펼치고 있었다.
고려 건국 초기에 왕건은 정주의 유 씨, 평주의 유씨, 경주의 김씨, 황주의 황보씨, 광주의 왕씨, 충주의 유씨 등 지방 호족의 딸들과 혼인하여 그들을 왕후나 부인으로 맞아들였다. 왕권 정책의 일환이었던 혼인 정책은 중앙집권체제로 전환하기 위한 과정이었으나 왕건이 죽고 난 뒤 각기 다른 어머니에게서 태어난 이복형제들의 왕권 다툼에 원인이 되기도 한다. 왕건이 호족들을 혈연과 성씨로 묶어놓으려 했던 이유는 단 한 가지 통일국가 고려의 정치적 안정과, 장기적 중앙집권체제를 확립하는 것이었다.
통일 중심적인 정치이면과 유화적인 성격에 바탕한 왕건의 일관된 화합 정책은 고려를 하나의 단일민족국가로 유지시키는 구심체였으며 혼인 정책은 호족을 달래기 위한 수단을 넘어서서 민족대화합을 위한 최선의 선택이었다.
*고구려 고토회복운동의 전개
왕건은 고려가 고구려의 계승자임을 만방에 천명한 만큼 고구려의 옛땅을 회복해야 하는 대과제를 해결해야 했다.
이를 위해 938년 3천여 호를 데리고 귀순한 발해인 박승을 받아들이는 등 발해의 유민들을 적극 유치했고, 평양에 서경을 설치하여 북진정책의 전진기지로 활용했다. 왕건은 고구려의 옛땅을 회복하기 위해 말년까지 강력하게 북진정책을 추진했으나 만주를 회복하는 데는 실패했다. 하지만 고려의 강력한 북진정책으로 서쪽에서는 청전강, 동쪽에서는 영흥 이북까지 여진족을 몰아내는 성과를 거두었다.
왕건은 발해를 멸망시킨 거란과는 적대관계를 유지했는데, 942년 10월에 거란이 사신 30명과 낙타 50 필을 보내며 고려와 화친을 제의했지만 이를 단호하게 거절했다. 거란의 사신이 화친 협약을 위해 고려에 당도하자 왕건은 "거란은 일찍이 발해와 동맹을 맺고 있다가 갑자기 의심을 품어 맹약을 배반하고 그 나라를 멸망시켰으니, 이는 심히 무도한 나라로서 친선관계를 맺을 대상이 못 된다."라고 못 박았다. 그리고 거란과 국교 단절을 선언하고 사신 30명은 섬으로 귀양 보내고, 낙타는 만부교라는 다리 아래서 굶겨 죽였다.
민족화합 정책과 북진정책에 매진하며 고려를 안정된 통일국가로 만들기 위해 노력을 아끼지 않았던 왕건은 민간의 정신적 통일을 위한 불교를 국교로 삼고, 숭불 정책을 적극 실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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