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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이야기

고려 태조 왕건의 가족들과 가계도

by 무님 2021. 3.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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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조 왕건의 가계도

 

왕건은 신혜왕후 유씨를 비롯한 총 29명의 아내를 두었으며 그들에게서 25남 9며를 얻었다. 29명의 부인들 중에서 제2비 장화왕후 오씨가 1남 혜종, 제3비 신명순성왕후 유씨가 정종과 광종을 비롯한 5남 2녀, 제4비 신정왕후 황보씨 1남 1녀, 제5비 신성왕후 김씨 1남, 제6비 정덕왕후 유씨 4남 3년, 헌목대부인 평씨 1남, 정목부인 왕씨 1녀, 동양원부인 유씨 2남, 수목부인 1남, 천안부원부인 임씨 2남, 흥복원부인 홍씨 1남 1녀, 소광주원부인 왕씨 1남, 성무부인 박씨 4남1녀, 의성부원부인 홍씨가 1남을 낳았다. 이외에 정비 신혜왕후 유씨를 비롯하여 나머지 12명의 부인은 자식을 낳지 못했다.

이들 중 신혜왕후 유씨를 비롯한 여섯 왕비와 그들에게서 태어난 왕자들 중 후대 왕권 구도와 관련 있는 대종과 안종의 삶을 간략하게 싣고, 혜종, 정종, 광종 등은 각 왕의 실록에서 다루게 된다.

 

 

1. 신혜왕후 유씨

태조의 본부인 유씨는 경기도 정주(풍덕)에서 태어났으며, 삼중대광 유천궁의 딸이다.

유천궁은 겨이도 북부지역의 큰 부자였다. 태조가 그녀를 만난 시기는 궁예의 부하로 들어가 군대를 거느리고, 각 지역을 정벌하고 있을 무렵이었다.  이때 유씨의 나이는 당시 결혼 적령기인 열여덟 살쯤 되었다. <고려사>에는 왕건이 그녀를 늙은 버드나무 아래에서 만났다고 되어 있다. 군대를 거느리고 정주 땅을 지나가다가 말을 쉬게 하느라고 버드나무 아래에 앉아 있다가 시냇가에 서 있는 유씨를 발견하고 말을 걸었는데 그녀의 덕수러운 얼굴에 반해 그날 유청궁의 집에서 묵었다고 한다. 유천궁은 자신의 딸을 왕건과 동침토록 했고, 왕건은 그의 집에서 얼마간 머물다가 떠났다.

유씨는 궁예의 독단적인 처사에 반발하여 홍유, 배현경, 신숭겸, 복지겸 등이 대사를 도모하자고 찾아왔을 때 왕건은 주저 하였으나 이를 밖에서 엿듣던 유씨가 왕건을 독려하여 군사를 일으켰다고 <고려사>는 전한다.

유씨는 아이를 낳지 못했고, 죽은 뒤 왕건의 묘 현릉에 합장되었다. 그녀의 사망연대는 기록되어 있지 않다.

 

 

2. 장화왕후 오씨(생몰년 미상)

 

장화왕후 오씨는 나주 목포 사람으로 부친은 오다련군이며 조부는 오부돈이다. <고려사>는 그녀를 미미한 가문 출신이라고 말하고 있을 뿐 그체적인 기록을 남기고 있지 않다. 왕건이 오씨를 만난 때는 910년을 전후한 무렵이다. 이는 혜종이 912년생이라는 점에서 유추할 수 있다. 

왕건과 오씨의 만남을 < 고려사>는 다소 신비화시키고 있다. 왕건이 나주에 진주하여 시냇가를 바라보니 오색구름이 떠 있었고, 이를 이상하게 여긴 그가 시냇가에 다가가니 오씨가 빨래를 하고 있어 동침했다는 것이다.

<고려사>는 왕건과 오씨의 동침 장면을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태조가 그녀를 불러서 동침을 하였는데, 그녀의 가문이 한미한 탓으로 임신시키지 않으려 했다. 그래서 정액을 돗자리에 배설하였는데, 왕후가 그것을 즉시 흡수하였으므로 임신이 되어 아들을 낳았는바 그가 곧 혜종이다'

 

<고려사>는 또 이 일을 기정 사실화하기 위해 혜종의 얼굴에 돗자리 무늬가 새겨져 있었으며 그래서 사람들은 그를 '주름살 임금'이라고 불렀다고 기록하고 있다. 오씨는 혜종 이외에는 자식을 낳지 못했으며, 사망연대와 능에 대한 기록은 남아 있지 않다.

 

 

 

3. 신명순성왕후 유씨(생몰년 미상)

 

신명순성왕후 유씨는 충주 사람으로 내사령 유긍달의 딸이다. 그녀는 태자 태, 정종, 광종, 문원대왕 정, 중통국사 등의 다섯 아들과 낙랑과 흥방 두 공주를 낳았다. 유씨는 다른 어떤 왕후보다도 많은 자식을 낳았고, 그녀 소생 중에 두 명이 왕이 되었으나 <고려사>는 그녀에 대한 기록을 많이 남기지 않고 있다. 또 유씨 소생 낙랑공주는 신라의 마지막 왕 김부(제56대 경순왕)와 혼인하여 왕건이 신라 세력을 포용하는 데 지대한 역할을 한다. 왕건의 후비 중에 충주 출신은 그녀 하나뿐이었는데, 이것은 곧 그녀의 아버지 유긍달이 충주를 대표하는 유력한 호족이었음을 말해준다.

그녀의 사망연대와 능에 대한 기록은 남아 있지 않다. 다만 그녀의 소생 광종이 954년 봉에 숭선사를 창건하여 그녀의 명복을 빌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4. 신정왕후 황보씨 (?~983)

 

신정왕후 황보씨는 황주 사람으로 삼중대광 황보제공의 딸이다. 그녀 소생으로는 성종의 아버지 대종 왕욱과 광종의 비 대목왕후가 있다. 그녀가 제4비가 되었다는 것은 적어도 신명왕후보다는 늦게 결혼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그녀 역시 신명왕후의 경우와  마찬가치로 왕건이 호족 세력과의 유대를 강화하기 위해 취한 정략결혼의 대상이었을 것이다.

황보씨는 태조가 죽은 후 40년을 더 살았으며 사망 당시의 나이는 여든 살가량이었다. 

성조조에 남긴 조문에 따르면 그녀는 더이 많고 성격이 후덕했으며, 검소하고 슬기로워 백관들의 존경을 한 몸에 받았다고 한다. 그녀의 능은 수릉으로 기록되어 있지만 정확한 위치는 밝혀지지 않고, 다만 개성 근처일 것으로 추측된다.

 

 

5. 신성왕후 김씨(생몰년 미상)

 

신성왕후 김씨는 신라 왕족이며 강순왕의 큰아버지 김억력의 딸이다. 김씨가 왕건의 제5비가 된 것은 신라가 고려에 항복한 935년 직후이므로 936년 초가 될 것이다. 935년 11월 신라 56대 경순왕이 고려에 항복할 뜻을 표시하자 왕건은 이에 대한 답례로 사신을 보냈다. 고려 사신은 경순왕에게 왕건이 신라 종실과의 혼실를 원한다는 사실을 전했고, 이에 경순왕은 자신의 사촌누이 김씨를 고려로 시집보낸다.

김씨의 소생으로는 인종이 있는데, 그는 제5대 왕 경종의 제4비 헌정왕후 황보씨와 결혼하여 제8대 왕 현종을 낳았다.

그녀의 사망연대와 능에 대한 기록은 남아 있지 않다.

 

 

6. 정덕왕후 유씨(생몰년 미상)

 

정덕왕후 유씨는 경기도 정주(승천) 출신이며, 시중 유덕영의 딸이다.

그녀는 제6비였지만, 결혼은 제5비 신성왕후 김씨보다 앞섰던 것으로 보인다. 그녀 소생 선의왕후가 신정왕후 황보씨 소생 대종과 결혼하고, 문혜왕후가 제3비 신명왕후 유씨 소생 문원대왕과 결혼한 것으로 보아 그녀의 결혼 시기는 신정왕후 황보씨와 비슷한 시기인 920년경일 것이기 때문이다. 

그녀의 소생으로는 왕위군, 인애군, 원장태자. 조이군 등의 네 왕자와 문혜왕후(문원대왕 비), 선의왕후(대종 비) 등이 있다. 그녀의 사망연대와 능에 대한 기록은 남아 있지 않다.

 

 

7. 대종 욱(?~969년)

 

대종 왕욱은 신정왕후 황보씨의 소생이며, 제6대 왕 성종의 아버지이다. 그의 출생연대는 전하지 않으나, 광종 20년(969년)에 죽은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왕욱은 태조 제6비 정덕왕후 유씨 소생 선의왕후와 결혼했으며, 슬하에 효덕태자, 성종, 경장태자, 헌애왕후(경조 3비), 헌정왕후(경종 4비) 등을 두었다. 

성종이 왕위에 오른 후 태왕으로 추존되어 묘호를 대종이라 하고 능호를 태릉이라 하여, 대묘에 합사 하였다.

 

 

8. 안종 욱(?~997년)

 

안종 왕욱은 신성왕후 김씨 소생이며, 제8대 왕 현종의 아버지이다. 981년에  경종이 죽자 그의 제4비 헌정왕후 황보씨가 사가로 나와 거쳐하였는데 욱은 그녀와 정을 통하여 임신케 했다. 이 일이 발각되자 성종은 왕욱을 귀양을 보냈으며, 그가 귀양 가던 날에 헌정왕후는 아이를 낳고 죽었다.

성종은 헌정왕후가 죽은 후 왕욱의 아이를 보모에게 맡겼는데, 아이가 두 살이 되자 아버지를 찾으므로 왕욱에게 보냈다. 왕욱은 귀양지에서 아이를 기르다가 죽음이 임박해오자 아들에게 금 한 주머니를 주면서 이렇게 유언했다.

"내가 죽거든 이 금을 지관에게 주고 나를 이 고을 성황당 남쪽 귀룡동에 매장하되, 시신을 엎어 묻어달라."

유언을 남긴 왕욱은 성종 15년(997년)에 세상을 떠났다. 그리고 그의 아들 현종이 1010년에 왕위에 오르자 효목대왕에 추존되고, 묘호를 안종이라 하였다. 현종은 1018년에 그의 능을 건릉에 옮겼으며, 1028년에 능호를 무릉으로 개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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