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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인물 사전

성종시대를 뒤흔든 스캔들의 주인공 < 어우동 >

by 무님 2020. 9.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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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에 왕실 여성이 아닌 일반 여성으로 가장 많이 회자되고 있는 인물은 아마도 어우동(, 또는 , ?~1480)이 첫째나 둘째에 꼽힐 것이다. 그런데 긍정적인 캐릭터가 아니라 성추문 사건의 주인공이라는 부정적인 성격이 강하다. 그러나 오히려 이런 독특한 캐릭터 때문에 영화 속 주인공이 되었고, ‘조선을 뒤흔든 여인’이라는 이미지를 대중에게 각인시켰다.

 

 

 

박어우동(朴於宇同, 1440년경 ~ 1480년 10월 18일, 현 충청북도 음성군 출생)은 조선시대 성종 시기 장안의 화제였던

인물인다. 연산군일기에 어우동을 '구마'라고도 칭한 것을 보아 본명은 박구마(朴丘麻)인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가족 관계로는 아버지는 승문원 지사 박윤창(朴允昌). 어머니는 정귀덕(鄭貴德). 오빠는 박성근(朴成根) 등이 있다. 조선 시대 당시 금기에 가까운 간통 사건을 일으켰기에 가문에서 파문되어 성을 뺀 자신의 별명인 어우동(於宇同)이란 이름으로 기록되었다. 일부 문헌엔 어을우동(於乙宇同)이란 이름으로 기록되기도 하는데, 乙자를 ㄹ받침으로 사용하기 때문에 발음이 어ㄹ우동, 그러니까 얼동에 가까운 발음이라고 추측하는 주장도 있다. 어우동의 뜻은 '같이 어울려 통하다'이다

 

양반 집안에서 태어나 곱게 자란 뒤 왕손인 태강수 이동이란 자와 혼인을 했는데 이동은 아내를 좋아하지 않았다. 이동은 이혼을 할 속셈으로 아내 어우동이 집에 온 은장이와 바람이 났다고 모함했는데, 조사 결과 무고로 밝혀져서 어우동과 재결합하라는 명을 받았으나 씹었고 아내를 내쫓았다.
황당하게 소박을 맞고 홀몸이 된 어우동은 친정으로 돌아왔는데 이때부터 수산수, 방산수를 비롯한 왕족들, 과거 급제자 홍찬 등 양반, 그 외에 양인과 노비를 가리지 않고 닥치는 대로 간통 행각을 벌였다. 그런데 간통 대상 중 한 명이 간통 사실을 승정원에 신고했고, 그녀는 이왕 이렇게 된 거 남자를 사귀라고 옆에 꼬드긴 여종과 함께 교수형을 당했다.

사실 어우동은 간통죄가 아니라 강상죄로 처형된 것인데, 강상죄는 조선에서 패륜이나 노비가 주인을 살해한 경우 정도에나 처벌받는 엄청나게 무거운 중벌이었다. 당시의 형벌인 대명률에 의하면 처녀총각의 간통은 장 80대, 유부녀의 간통은 그에 열대를 추가한 장 90대였다. 사실 조선 조정에서도 사건 자체는 그냥 간통이었기에 일반적인 간통 사건으로 처리하고자 했으나, 왕인 성종이 강상죄를 적용하라고 강하게 요구하고 신하들이 반대했으나 결국 왕의 뜻을 꺾지 못해서 사형에 처해졌던 것. 그나마 진짜 강상죄가 아니라서 교수형으로 끝났고, 가족들도 연좌되지 않고 넘어갔다. 양반 집안 출신의 여성이 양인을 비롯한 노비, 십여명과 정을 통한 희대의 간통 사건이라 사회의 파문이 컸다고 전해진다.

 

 

 

* 어우동 사건 그날의 기록  < 조선왕조실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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