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시대에는 재상이나 유명한 유학자들이 죽으면 공덕을 칭송하여 임금이 시호를 내려 주었다. 시호는 한 인물에 대한 후대의 평가가 내포된 명칭이라고 할 수 있다. 조선 초기에는 정2품 이상의 문무관과 공신에게만 주었으나, 점차 대상이 확대되어 고명한 유학자들에게도 시호를 내렸다.
대체로 문신이나 학자는 문文, 무신은 무武, 전쟁 등에서 공을 세운 무방은 충忠자가 앞에 붙여졌다. 조선 초기에는 대개 봉상시에서 주관하여 시호를 정한 다음 임금에게 올려 재가를 받도록 했다. 시호를 결정하는 일은 매우 민감한 사안이어서 여러 가지 문제를 야기하기도 했다. 조선 건국 직후에 시호를 잘못 정했다가 봉상시의 관원이 교수형을 당할 뻔한 적이 있었다. 태조 5년 7월에 개국 공신 정희계가 죽자 시호를 정하는 문제로 임금이 격노하여 봉상시 관원들이 곤욕을 치러야 했다.
정희계는 이성계를 도와 조선 건국에 참여하여 개국 공신 1등에 책록 되고, 계림군에 봉해졌다. 나중에 좌참찬과 판한성부사를 지냈다. 건국 당시 정도전, 정총, 정희계 등 세 정씨가 삼한을 멸한다는 도참설이 널리 퍼져 있었다. 정희계의 부인은 태조의 계비인 신덕왕후 강씨의 조카딸이었다. 그야말로 그는 태조가 아끼고 총애하는 측근 중의 측근이었다.
정희계가 죽고 한 달이 지나 봉상시에서 시호를 안양, 안황, 안혹 등으로 정하여 임금의 재가를 청하였다. 임금이 시호를 정한 봉상시 박사 최견을 불러서 물었다.
"희계는 나라에 큰 공을 세운 신하인데, 시로를 왜 이다지도 심하게 지었느냐? 그의 허물만을 논하고 공은 말하지 않은 까닭은 무엇인가?"
시호란 한 사람에 대한 역사적 평가여서 공로와 과실이 균형 있게 반영된 시호를 정해야만 한다. 볕에 바래다는 뜻의 '양', 거칠다 또는 어리석다는 뜻의 '황", 미혹하다는 뜻의 '혹' 등의 부정적인 단어들이 들어가 너무 과오만 강조한 시호라는 지적이었다. 태조는 불만을 표출한 다음 즉시 최견을 순군옥에 가두어 국문하게 하고 봉상시 소경 안성, 승 김분, 대축 민심언 등과 녹사 이사징 등을 하옥하였다. 이어서, 형조에서 산기상시 전백영과 이황 등을 탄핵하고, 봉사시에서 잘못 마련한 시호를 반박하지 않은 죄로 예조 이랑 맹사성과 좌랑 조사수 등을 탄핵하였다. 형조는 그들의 형량을 정하여 올렸는데, 최견은 교수형, 안성과 김분 등은 곤장 100대에 도형 3년이었다.
좌정승 조준이 최견을 불쌍히 여겼다.
"견의 죄가 이에까지 이르겠는가?"
조준은 판삼사사 설장ㅅ, 전서 당성과 함께 상의하여 다시 형량을 조정했다. 그런 다음 조준이 법전을 가지고 들어가서 임금에게 아뢰자 그대로 따랐다 조견은 곤장 100대를 쳐서 기해로 유배하고, 그 밖의 관리들은 차등 있게 곤장을 때린 후 안성은 경상도 축산으로, 김분은 경상도 각산으로, 민심언은 전라도 순천으로, 이사징은 경상도 강주로 유배하였다.
전백영, 이황, 맹사성, 조사수 등은 모두 파직하였다. 정희계의 시호는 다시 논의하여 양경이라고 지었다.
정희계의 시호에 태조가 불만을 가진 이유는 총애를 내린 측근이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를 너무 부정적으로만 보려고 한 봉상시의 관리들에게도 문제가 있었다. 혹시 학식이 부족하여 사람됨이 가벼웠다는 세상 사람들의 비판을 지나치게 믿지 않았을까.
그 후에도 같은 일이 있었다. 태종 8년 4월 이조에서 한 달 전에 죽은 완평군 이조의 시호를 정하여 올렸는데, 모두 악명인 데다 장례가 임박하여 임금이 재가를 하지 않았다.
임금은 사헌부로 하여금 시호 결정을 지체한 죄를 탄핵하게 하여 이조 정랑 박관과 좌랑 유미를 파면시켰다. 이조는 태조의 이복형인 이원계의 아들로 태조의 조카였다. 태조 때 상장군 등을 지냈는데, 종친의 위세를 내세워 횡포한 짓을 많이 저지르는 바람에 대간에게 탄핵받고 귀양을 가기도 하였다.
시호 문제는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던져 준다. 요즈음에는 과거의 인물을 평가하면서 잘못한 부분만 집중적으로 부각시켜 역사적으로 매장시켜 버리려는 경향이 있다. 시정되어야 하리라 생각한다. 이념이나 정치적 계산을 떠나 공정하고 객관적인 평가가 이루어져야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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