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녹수는 조선 중기 연산군의 총희(寵姬)이다. 충청도 문의 현령(文義縣令)을 지낸 장한필(張漢弼)과 그의 첩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녀는 첩의 자녀였기 때문에 천민의 삶을 살아야 했다. 장녹수는 가난해서 시집을 여러 번 갔으며, 마지막에는 제안대군(齊安大君: 예종의 둘째 아들)의 노비로 들어가 그곳에서 대군의 노비와 혼인하여 아들을 하나 두었다.
이후에 그녀는 가무(歌舞)를 익혀 이름을 떨쳤다. “얼굴은 중인(中人) 정도를 넘지 못했다”는 표현으로 미루어 뛰어난 미색은 아니었던 것으로 보이나, 춤과 노래에 탁월한 능력을 겸비하여 소문이 자자했던 듯하다. 연산군은 그 소문을 듣고 그녀를 흥청(興淸)으로 뽑아 궁궐에 들였던 것으로 보인다.
흥청은 연산군 대에 뽑았던 일 등급 기녀였다. 연산군은 기녀 제도를 확대 개편하여, 창기로서 얼굴이 예쁜 자들을 대궐 안으로 뽑아들였다. 전국의 개인 몸종과 지방의 관비, 그리고 심지어 양갓집 여성들까지 강제로 뽑아 올려졌다. 이때, 기생의 칭호를 ‘운평(運平)’이라 했는데, 그 중에서도 왕을 가까이에서 모시는 특별한 기생을 승격시켜 맑은 기운을 일으킨다 하여 ‘흥청(興淸)’이라 불렀다. 흥청 중에서도 왕을 가까이 모신 자는 ‘지과흥청(地科興淸)’이라 하고, 왕과 동침한 자는 ‘천과흥청(天科興淸)’이라 구분하기도 했다
궁궐에 들어 온 장녹수는 본격적으로 연산군의 마음을 흔들었다. 장녹수는 연산군을 때로는 어린아이 같이 때로는 노예처럼 대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연산군은 장녹수에게 깊이 빠졌는데, 화내는 일이 있더라도 그녀를 보면 즉시 희색(喜色)을 띨 정도였다.
왕의 총애를 등에 업은 장녹수는 권력을 함부로 휘둘렀다. 그녀는 남의 재산을 함부로 빼앗았으며, 각종 뇌물과 인사 청탁을 받았다. 그녀 덕분에 장녹수의 주인이었던 제안대군의 장인 김수말(金守末)은 계속해서 벼슬이 올라갔는데, 이는 “왕이 이때 한창 장녹수를 사랑하여 그 말이라면 모두 따랐기 때문에 특별히 승서(陞敍)한 것이다”라는 실록의 기록에서 확인된다. 장녹수의 형부 김효손(金孝孫)도 함경도 전향 별감(傳香別監)에 제수되는 혜택을 받았다. 1502년(연산군 8)~1503년(연산군 9) 무렵에 이르러서는 연산군이 장녹수에게 빠져 날로 방탕이 심해지고 포악한 짓을 많이 하자, 왕실의 최고 어른인 할머니 인수대비(소혜왕후)는 크게 근심하였다.
1502년(연산군 8)에 종4품의 숙원(淑媛)으로 있었는데, 이듬해에는 종3품의 숙용(淑容)에까지 올랐다. 궁녀로 들어와 초고속으로 승진한 셈이었다. 품계가 올라간 장녹수는 더욱 권력을 남용하였다. 장녹수는 궁 밖의 사가(私家)를 재건하기 위해 민가를 헐어버리게 하였으며, 모습이 고운 두 여인을 시기하여 두 사람의 부자 형제(父子兄弟)를 하루아침에 다 죽이게도 했다. 옥지화(玉池花)라는 기녀는 장녹수의 치마를 한 번 잘못 밟았다가 참형을 당하기까지 했으니, 장녹수의 위세가 하늘을 찔렀음을 엿볼 수 있다.
1506년(연산군 12) 8월 23일. 연산군은 후원에서 나인들과 잔치를 하다 시 한 수를 읊었다. “인생은 풀에 맺힌 이슬 같아서 만날 때가 많지 않은 것” 읊기를 마치자 연산군은 갑자기 눈물을 두어 줄 흘렸다. 다른 여인들은 몰래 서로 비웃었으나, 장녹수와 전비(田非, 숙용전씨, ?~1506)는 슬피 흐느끼며 눈물을 머금었다. 연산군은 장녹수와 전비의 등을 어루만지며 “지금 태평한 지 오래이니 어찌 불의의 변이 있겠느냐마는, 만약 변고가 있게 되면 너희들은 반드시 면하지 못하리라”라고 하였다. 두 사람은 앞날을 예견하였던 것일까? 이날은 바로 1506년 9월 2일, 중종반정이 일어나기 열흘 전이었다. 장녹수는 연산군 폭정의 핵심이었던 만큼, 중종반정을 성공시킨 세력은 온갖 비난의 대상이었던 장녹수 체포에 나섰다. 반정군들에게 붙잡혀 군기시(軍器寺) 앞에 끌려온 장녹수는 참형(斬刑)에 처해졌다. 길 가는 수많은 사람들이 그녀의 시체에 기왓장과 돌멩이를 던지며 욕설을 퍼부었다. 그들은 “일국의 고혈이 여기에서 탕진됐다”고 하였는데, 잠깐 사이에 돌무더기를 이루었을 정도로 비참한 최후를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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