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종은 조선 제24대 국왕이자 대한제국의 추존 황제이며, 묘호는 헌종(憲宗), 시호는 성황제(成皇帝), 휘는 환(烉), 자는 문응(文應)이다. 순조의 손자이자 효명세자의 하나뿐인 외아들이다. 아버지인 효명세자가 갑작스럽게 요절하고 할아버지 순조마저 건강 악화로 일찍 세상을 떠나자 왕세손의 신분으로 8살 나이에 왕이 되었다. 조선 왕으로서는 최연소로 단종보다도 어린 나이에 즉위했다.
어머니 신정왕후 조씨는 안동 김씨 세도가에 이어 힘은 세지만 발톱을 숨기고 권력을 움켜쥐려는 풍양 조씨 집안 출신이다. 첫 왕비는 안동 김씨로 김조근의 딸인 효현왕후 김씨였으나 결혼 2년만에 16세의 나이로 일찍 사망했고 이후 효정왕후 홍씨를 계비로 맞았다. 외가와 처가에서 알 수 있듯이 헌종의 치세는 실로 풍양 조씨와 안동 김씨의 세도정치(삼정의 문란이 극심)로 조선이 파탄 직전까지 가고 있던 시절이었다. 어린 나이에 즉위했기 때문에 순조의 정비이자 할머니인 순원왕후 김씨가 수렴청정을 실시했다.
순원왕후의 수렴청정 시기에는 '척사윤음'(斥私倫音)이 반포되었고 천주교(가톨릭) 신자에 대한 대대적인 박해가 발생해 정하상(1839년 기해박해)과 한국 최초의 가톨릭 신부인 김대건이 순교했다.(1846년 병오박해)
더욱이 극심한 삼정의 문란으로 백성들의 민생은 파탄의 직전까지 내몰리고 있었지만 이에 대한 대책은 딱히 세우지도 못했고 외부에서는 서양 선박들이 나타나 통상을 요구하는 이양선 출몰 사건이 잇달아 일어나 민심은 동요했다.
안동 김씨의 세력이 큰 견제가 없이 커가는 시기였고 헌종은 친정이 시작된 이후 20세가 될 무렵부터 척신들을 견제하기 시작했다. 수렴청정이 15세 때에 끝나고 첫 왕비인 효현왕후가 죽으면서 할머니 순원왕후의 의중에 따라 홍재룡(洪在龍)의 딸인 효정왕후 홍씨(1903년 졸)를 계비로 맞은 것. 이 때 주부(主簿) 김재청(金在淸)의 딸을 후궁(경빈 김씨)으로 삼기도 했다. 그래서 안동 김씨의 세도는 다시 조금이나마 흔들리기 시작했다.
헌종은 대사간 서상교를 통해 안동 김씨의 실세 중의 실세인 김흥근을 탐오하고 대왕대비의 비위를 맞추어('궁위를 엿보아') 정치를 했다고 탄핵하고 귀양보내기도 했다. 또한 안동 김씨의 수장인 김좌근 등을 압박하여 유배를 보내는 등 反 안동 김씨 행보를 밟았다. 대구 서씨 서희순을 이조판서 겸 총위대장으로 내세우기도 했고 안동 김씨에게 밉보인 김정희, 조병헌은 헌종 14년에 유배에서 풀렸으며 박규수를 조정으로 불러 중용할 뜻을 내비췄다. 반면 영의정 정원용은 안동 김씨에게 아부하다가 파직당한다. 5군영의 훈련대장을 외척이 아닌 사람들로 채워넣고 병조판서를 독자적으로 임명한건 대표적. 이렇게 군권을 장악하고 정조의 장용영처럼 친위대인 총위영(총융청)까지 구성하는 등 아주 활발한 왕권 강화 정책을 펼쳤다. 아편전쟁의 전말을 보고 들으면서 국방력 강화와 척신 척결이 중요한 과제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수령의 장죄(뇌물) 문제를 전면으로 들고 나와서 법 개정을 주도한 적도 있었는데 수령의 뇌물이 어디로 가는가를 생각해보면 세도 가문들을 타깃으로 노린 것이 확실하다. 하지만 비변사의 비협조로 법 개정은 무산되었다. 그런가하면 암행어사도 활발하게 전국으로 파견했고 안동 김씨의 조병헌 사사 요구를 매우 강력하게 거부하면서 역으로 안동 김씨의 조종을 받던 삼사를 모조리 파직하기도 했다. 조병헌은 결국 귀양을 갔다가 헌종 말에 풀려나지만 철종 초에 사사된다.
세도가 안동 김씨를 열심히 조져가며 왕권을 힘겹게 다잡아가던 헌종은 1849년 7월 25일(음력 6월 6일) 향년 23세의 이른 나이에 사망한다. 보통 헌종의 죽음은 잦은 성관계로 인해 폐결핵으로 사망했다고 알려져 있지만 이는 정확한 사인이 아니다. 헌종은 어느 순간부터 피를 토하며 소화 불량 증세를 자주 보였고 설사가 심해지고 얼굴에 갈수록 심한 부종 증상이 나타나 의원을 통해 약을 조제하고 치료하면서 상태가 좋아졌다 나빠졌다를 매번 반복하다가 사망하였다고 하며,이는 현대 의학적 관점으로 보았을 때 평소 녹용 등 한약재와 정력에 좋다는 음식을 많이 복용하였단 일화로 미루어 급성간염이나 간경변의 합병증으로 사망했을 가능성이 높다. 죽기 직전 다급히 의원을 불렀으나 결국 병을 다스리지 못하고 젊은 나이에 후사를 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 조선왕조실록 < 헌종사망 그날의 기록 >
헌종실록16권, 헌종 15년 6월
- 약원에 명하여 번갈아 입직하게 하다
- 약원에서 입진을 청하자 비답하다
- 약원에서 모두 입직하다
- 대신과 각신을 입시하게 하다
- 약원을 시약청으로 옮기다
- 대보를 대왕 대비전에 바치라고 명하다
- 종묘·사직·각궁·산천에서 기도를 행하다
- 대점하다
- 궁성을 호위하다
- 오시에 창덕궁의 중희당에서 승하하다
- 복하다
- 역복하다
- 대왕 대비가 원상을 권돈인으로 삼게 하다
- 대왕 대비가 대신들을 소견하다
- 대왕 대비가 이원범을 종사의 부탁으로 삼는다고 하교하다
- 대왕 대비가 봉영하는 의절을 전례에 따라 거행하게 하다
- 대왕 대비가 봉영하는 군교·대신·승지를 각각 정해주다
- 목욕하고 습하다
- 소렴하다
- 대왕 대비가 봉영하는 행차에 대해 하교하다
- 대왕 대비가 덕완군의 봉작 교지를 남성교에게 전하라고 명하다
- 대왕 대비가 사위 고유제의 축문을 김도희의 이름으로 하게 하다
- 영상을 환경전에 옮겨 봉안하다
- 덕완군이 빈전에서 거애하다
- 덕완군이 희정당에서 관례를 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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