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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인물 사전

중종시대 관련 인물

by 무님 2020. 10.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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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김정 - 조선전기 이조정랑, 순창군수, 형조판서 등을 역임한 문신. 학자이다. 

본관은 경주(). 자는 원충(), 호는 충암()·고봉(). 보은 출신. 김호()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김처용()이고, 아버지는 호조정랑 김효정()이며, 어머니는 김해허씨()로 판관() 허윤공()의 딸이다.

1507년 증광 문과에 장원으로 급제해 성균관전적()에 보임되고, 수찬()·병조좌랑을 거쳐 정언()으로 옮겨졌다. 이어 병조정랑·부교리()·헌납()·교리·이조정랑 등을 거쳐 1514년에 순창군수가 되었다.

이 때 왕의 구언(: 정치에 도움이 되는 말이나 글)에 응해 담양부사 박상()과 함께 중종 때 억울하게 폐출된 왕후 신씨()의 복위를 주장하고, 아울러 신씨 폐위의 주모자인 박원종() 등을 추죄()할 것을 상소했다가 왕의 노여움을 사서 보은에 유배되었다. 이 때 권민수()·이행() 등은 이들을 엄중히 다스릴 것을 주장한 반면, 영의정 유순() 등은 이에 반대했고, 조광조()도 치죄를 주장한 대간의 파직을 주청하였다. 이 문제를 둘러싸고 대간 사이에도 대립이 생겼고, 둘 다 옳다는 설까지 제기되었다.

1516년 석방되어 박상과 함께 다시 홍문관에 들고, 권민수와 이행의 파직으로 마무리되었다. 그것은 곧 중앙 정계에서의 사림파의 승리를 뜻하는 것이었다. 그 뒤 응교()·전한() 등에 임명되었으나 부임하지 않았고, 뒤에 사예()·부제학·동부승지·좌승지·이조참판·도승지·대사헌 등을 거쳐 형조판서에 임명되었다. 이러한 정치적 성장은 괄목할 정도였는데, 그것은 당시 사림파의 급속한 성장과 긴밀한 관계를 지닌 것이었다.

그 뒤 기묘사화 때 극형에 처해지게 되었으나, 영의정 정광필() 등의 옹호로 금산()에 유배되었다가, 진도를 거쳐 다시 제주도로 옮겨졌다. 그 뒤 신사무옥에 연루되어 사림파의 주축인 생존자 6인과 함께 다시 중죄에 처해져 사사되었다. 1545년(인종 1) 복관되었고, 1646년(인조 24) 영의정에 추증되었다.

3세에 할머니 황씨에게 수학하기 시작했고 20세 이후에는 최수성()·구수복() 등과 성리학의 연구에 몰두하였다. 그리하여 관료 생활을 하면서도 성리학에 대한 학문 정진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또한, 시문에도 능했으며 새·짐승 등의 그림도 잘 그렸다. 일찍이 사림 세력을 중앙 정계에 추천했고, 조광조의 정치적 성장을 뒤에서 도왔다. 그 뒤 조광조와 함께 사림파의 대표적인 존재로서, 그들의 세력 기반을 굳히기 위해 현량과()의 설치를 적극 주장하기도 하였다. 또한, 왕도정치의 실현을 위한 개혁 정치를 폈는데, 그 일환으로 미신 타파와 향약의 실시, 정국공신의 위훈삭제() 등을 추진하였다.

제자로는 김봉상()·김고()·최여주() 외에 조카인 김천부()·김천우() 등이 있다. 보은의 상현서원(), 청주의 신항서원(), 제주의 귤림서원(), 금산의 성곡서원() 등에 제향되었다.

저서로는 『충암집()』이 있는데, 여기에 실린 「제주풍토록(] )」은 기묘사화로 제주도에서 유배 생활을 하면서 견문한 제주도의 풍토기이다. 시호는 처음에는 문정()이고, 나중에 문간()으로 고쳐졌다.

 

 

화담 서경덕

 

 

 

 

2. 서경덕 - 조선전기 『화담집』을 저술한 학자이다.

개성 출신. 본관은 당성(). 자는 가구(), 호는 복재()·화담(). 아버지는 부위() 서호번()이며, 어머니는 한씨()이다. 이()보다 기()를 중시하는 독자적인 기일원론()을 완성하여 주기론()의 선구자가 되었다.

1502년(연산군 8) 『서경』을 배우다가 태음력의 수학적 계산인 일()·월() 운행의 도수()에 의문이 생기자 보름 동안 궁리하여 스스로 해득하였다. 1506년 『대학』의 치지재격물()조를 읽다가 “학문을 하면서 먼저 격물을 하지 않으면 글을 읽어서 어디에 쓰리오!”라고 탄식하고, 천지만물의 이름을 벽에다 써 붙여 두고는 날마다 힘써 궁구()하였다. 1507년(중종 2) 선교랑() 이계종()의 딸과 결혼하였다.

1519년 조광조()에 의해 채택된 현량과()에 수석으로 추천을 받았으나 사양하고, 개성 화담()에 서재를 세우고 연구와 교육에 힘썼다. 1531년 어머니의 요청으로 생원시에 응시하여 장원으로 급제하였으나 벼슬을 단념하고 성리학 연구에 힘썼다.

1544년 김안국() 등이 후릉참봉()에 추천하여 임명되었으나 사양하고, 계속 화담에 머물러 연구와 교육에 몰두하였다. 특히 예학에 밝았으며, 중종과 인종이 죽자 “임금의 상()에 어찌 복()이 없을 수 있겠는가?”라고 하여 자최삼월()의 상복을 입었다. 황진이()의 유혹을 물리친 일화가 전해지며, 박연폭포()·황진이와 함께 송도삼절()로 불린다.

서경덕은 송대의 주돈이()·소옹() 및 장재()의 철학사상을 조화시켜 독자적인 기일원론()의 학설을 제창하였다. 서경덕은 「태허설()」에서 우주공간에 충만하여 있는 원기()를 형이상학적인 대상으로 삼고, 그 기()의 본질을 태허라 하였다. 그에 따르면 기의 본질인 태허는 맑고 형체가 없는 것으로 선천()이라 한다. 그 크기는 한정이 없고 그에 앞서서 아무런 시초도 없으며, 그 유래는 추궁할 수도 없다. 맑게 비어 있고 고요하여 움직임이 없는 것이 기의 근원이다.

또한 널리 가득 차 한계의 멀고 가까움이 없으며, 꽉 차 있어 비거나 빠진 데가 없으니 한 털끝만큼의 용납될 틈이 없다. 그렇지만 오히려 실재()하니, 이것을 ‘무()’라 할 수는 없는 것이다. 생성과 소멸하는 모든 것은 무한히 변화하는 기의 율동()이다. 그리고 바람처럼 파도처럼 또 소나기처럼 밀리고 맥박 치는 생()과 구름처럼 물방울처럼 사라지는 멸()의 본체는 부침하고 율동()하는 태허기()의 고탕()이다.

따라서 서경덕의 기는 우주를 포함하고도 남는 무한량()한 것이며, 가득 차 있어 빈틈이 없으며 시작도 없고 끝도 없는 영원한 존재이다. 또한 스스로의 힘에 의해서 만물을 생성할 수 있으므로, 그 것 이외에 어떤 원인()이나 그 무엇에 의존하지 않는 것이다. 이러한 기()는 모였다가 흩어지는 운동은 하지만 기 그 자체는 소멸하지 않는다. 기가 한데로 모이면 하나의 물건이 이루어지고, 흩어지면 물건이 소멸한다. 이는 물이 얼면 얼음이 되고, 얼음이 녹으면 다시 물로 환원되는 것과 같은 것이다.

서경덕은 “일편향촉()의 기라도 그것이 눈앞에 흩어지는 것을 보지만, 그 남은 기운은 마침내 흩어지지 않는다.”라고 하여 일기장존설()을 주장하였다. 이는 물리학에서 밝히고 있는 에너지 항존율()과 같은 것이다. 이기설의 입장을 밝힘에 있어서 그는 “기 밖에 이가 없다. 이란 기의 주재()이다. 주재란 것은 밖에서 기를 주재하는 것이 아니요, 기의 움직임이 그러한 까닭에 정당성을 가리켜 이것을 주재라 한다. 이는 기보다 선행할 수 없다. 기는 본래 시작이 없는 것이니, 이도 본래 시작이 없는 것이다. 만일, 이가 기보다 선행한다고 하면 이것은 기에 시작이 있는 것이다.”라고 하여 이를 기 속에 포함시켜 둘로 보지 않는 기일원론을 주장하였다.

한편 서경덕은 인간의 죽음도 우주의 기에 환원된다는 사생일여()를 주장함으로써 “만물은 모두가 잠시 기탁한 것 같으니, 떴다 가라앉았다 함도 일기() 가운데요, 구름 생길 때 그 자취를 보거니, 얼음 풀린 뒤 그 자취 찾아도 없더라. 낮과 밤은 밝았다 어두웠다 하지만, 원()과 정()도 시작했다 또 끝났다 한다. 진실로 이러한 이를 밝게 안다면 장구치면서 우리 님을 보내오리다.”라고 하여 불교의 인간생명이 적멸()한다는 주장을 배격하였다.

서경덕의 학문과 사상은 이황()과 이이 같은 학자들에 의해서 그 독창성이 높이 평가되었으며, 한국 기철학()의 학맥()을 형성하게 되었다. 저서로는 『화담집()』이 있으며, 그의 사상적인 면모를 밝혀 주는 「원이기()」·「이기설()」·「태허설」·「귀신사생론()」 등의 대표적인 글을 수록하고 있다.

1575년(선조 8) 우의정에 추증되었으며, 1585년 신도비가 세워졌다. 개성의 숭양서원()·화곡서원()에 제향되었다. 시호는 문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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