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경빈박씨 - ?∼1533(중종 28). 조선 제11대 왕 중종의 후비이다. 아버지는 박수림(朴秀林)이다.
1509년(중종 4)에 왕자 복성군(福城君) 이미(李嵋)를 낳았고, 그뒤 혜순옹주(惠順翁主)와 혜정옹주(惠靜翁主)를 낳아 왕의 총애를 받았다. 1527년에 효혜공주(孝惠公主)의 남편인 연성위(延城尉) 김희(金禧)가 아버지 김안로의 사주를 받아, 왕세자(후의 인종)를 저주하기 위하여 꾸민 작서(灼鼠)의 변에 연루되어, 1528년(중종 23) 복성군과 함께 폐출되어 곧 사사되었다가 뒤에 신원되었다.
2. 복성군 - 조선전기 제11대 중종의 첫째 아들이다.
이름은 이미(李嵋). 아버지는 중종이며, 어머니는 경빈박씨(敬嬪朴氏)이다. 부인은 현감 윤인범(尹仁範)의 딸이다.
윤비가 세자(世子: 仁宗)를 낳고 죽은 뒤 경빈박씨는 아들을 세자로 책봉시키려는 야망을 가졌다. 마침 1527년(중종 22) 세자의 생일에 쥐를 잡아 사지와 꼬리를 자르고 입·귀·눈을 불로 지져서 동궁(東宮)의 북정(北庭) 은행나무에 걸어 세자를 저주한 사건이 일어났다. 이때 경빈박씨가 혐의를 받아 작호(爵號)를 빼앗기고 서인(庶人)으로 되어 귀양갔다가 1533년 모자가 함께 사사(賜死)되었다. 1541년(중종 36) 김안로(金安老)의 아들 김희(金禧)가 사건을 조작한 진범으로 밝혀져 신원(伸寃: 억울하게 입은 죄를 풀어줌)되었다.
3. 구수영 - 조선전기 오위도총관, 장악원제조 등을 역임한 무신이다.
본관은 능성(綾城). 자는 미숙(眉叔). 강원도부원수 구성로(具成老)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목사 구양(具揚)이고, 아버지는 지중추부사 구치홍(具致洪)이며, 어머니는 진천송씨(鎭川宋氏)로 좌랑 송계후(宋啓後)의 딸이다. 큰아버지는 영의정 구치관(具致寬)이다.
12세에 영응대군(永膺大君: 세종의 여덟째 아들)의 사위로 뽑혀 세조로부터 특별히 선략장군부호군(宣略將軍副護軍)을 제수받았다. 예종이 즉위한 뒤에는 은총을 입어 절충장군(折衝將軍)에 오르고, 성종이 즉위하자 원종공신(原從功臣)이 되었으며, 동지중추부사를 거쳐 곧 지중추부사에 올랐다.
1493년(성종 24) 오위도총부도총관(五衛都摠府都摠管)이 되어 군대 통솔의 책임을 맡았고, 이어 상의원제조(尙衣院提調)를 지냈다. 연산군이 즉위하자 다시 도총관을 역임하고, 1501년(연산군 7) 지돈녕부사(知敦寧府事)에 올랐다.
이 때 대간들이 부적당하다고 탄핵했으나 오히려 판돈녕부사로 승진되고, 이듬 해에는 판의금부사가 되었다.
1504년 소혜왕후(昭惠王后)가 죽자 산릉도감제조(山陵都監提調)로서 상례를 잘 처리하였다. 이듬해에는 장악원제조(掌樂院提調)가 되어, 흥청(興淸) 200인, 운평(運平) 1,000인, 광희(光熙) 1,000인을 모아 악률을 교육하면서 연산군의 유락(遊樂)을 도왔으며, 그 공로로 1506년에는 한성부판윤에 올랐다.
이어 경기순무사(京畿巡撫使)로 나갔다가 중앙으로 돌아와 박원종(朴元宗) 등이 중종반정을 도모하자, 이에 가담해 정국공신(靖國功臣) 2등에 책록되고 능천부원군(綾川府院君)에 봉해졌다. 그 뒤 영경연사(領經筵事)를 겸했으나 사직하여 체직되었으며, 이후 연산군의 충복이었다는 이유로 탄핵을 받았다. 효성이 지극하고 성품이 자상했으며 음률과 악기에 재주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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