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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사화3

연산군 시대 관련 인물 1. 정성근 - 조선전기 해주목사, 경기도경차관, 좌부승지 등을 역임한 문신이다. 본관은 진주(晋州). 자는 이신(而信)·겸부(兼夫). 정자순(鄭子淳)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정설(鄭舌)이고, 아버지는 대제학 정척(鄭陟)이다. 어머니는 이양몽(李養蒙)의 딸이다. 김종직(金宗直)의 문인이다. 1474년(성종 5) 식년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였다. 1479년 수찬으로 경연관(經筵官)을 겸하였다. 1481년 부교리로서 승지의 업무를 맡을만한 인물로 추천되었고, 경차관(敬差官)으로 경기도에 파견되어 교동현의 유민(流民)을 진휼하였다. 이듬해에는 홍문관부응교로서 구황적간(救荒摘奸)하기 위해 전라도에 파견되었으며, 1483년 황해도경차관이 되었다. 그 뒤 홍문관전한을 거쳐 대마도선위사(對馬島宣慰使)로 파견되었다. 14.. 2020. 10. 10.
연산군 시대 관련 인물 1. 김수동 - 조선 초기의 문신이자 서예가이다. 자는 미수(眉叟), 호는 만보당(晩保堂), 시호는 문경(文敬), 본관은 안동(安東)이다. 상락부원군(上洛府院君) 김사형(金士衡)의 후손이며, 첨지중추부사 김적(金磧)의 아들이다. 1474년 생원시에 합격, 1477년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으며, 성종 때에 검열과 정자와 사인(舍人) 등을 역임하였다. 연산군 초에 전라 · 경상 · 경기도 관찰사를 거쳐 1499년 예조참판으로 성절사가 되어 명나라에 다녀왔다. 이조참판과 형조판서 등을 거쳐 1503년 지춘추관사 겸 홍문관제학이 되고, 1504년 47세 때에 이조판서에 이르렀다. 이 해 갑자사화 때 폐비윤씨의 회릉추숭(懷陵追崇)을 주장하여, 시행함으로써 연산군의 신임을 받아 정헌대부에 가자(加資)되었다. 1.. 2020. 9. 24.
연산군, 어머니를 위한 복수를... 갑자사화 연산은 즉위 초기에 어머니 폐비 윤씨의 이야기를 들었을 때 그 자리에서 쇠망치를 들지 않았다. 연산군은 냉철한 왕이였다. 대신 신하들이 왕권에 도전할 때마다 이를 핑계 삼아 어머니의 죽음을 주관하고 방관한 신하들을 처단하였던 것이다. 그리고 그 날이 1504년 갑자년이었다. 이때 또 한 차례의 피바람이 불게 되는데 이것이 갑자사화이다. 갑자사화의 원인은 연산군의 사치와 낭비로 국고가 바닥이 나자 그는 공신들의 재산의 일부를 몰수하려 하였는데, 이때 임사홍(任士洪)은 연산군을 사주하여 공신배척의 음모를 꾸몄다. 이때 폐비윤씨의 생모 신씨(申氏)가 폐비의 폐출·사사의 경위를 임사홍에게 일러바쳤고, 임사홍은 이를 다시 연산군에게 밀고하면서 사건이 확대되었다. 연산군은 이 기회에 어머니 윤씨의 원한을 푸는 동시.. 2020. 3.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