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종반정4 연산군 시대 관련 인물 1. 김수동 - 조선 초기의 문신이자 서예가이다. 자는 미수(眉叟), 호는 만보당(晩保堂), 시호는 문경(文敬), 본관은 안동(安東)이다. 상락부원군(上洛府院君) 김사형(金士衡)의 후손이며, 첨지중추부사 김적(金磧)의 아들이다. 1474년 생원시에 합격, 1477년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으며, 성종 때에 검열과 정자와 사인(舍人) 등을 역임하였다. 연산군 초에 전라 · 경상 · 경기도 관찰사를 거쳐 1499년 예조참판으로 성절사가 되어 명나라에 다녀왔다. 이조참판과 형조판서 등을 거쳐 1503년 지춘추관사 겸 홍문관제학이 되고, 1504년 47세 때에 이조판서에 이르렀다. 이 해 갑자사화 때 폐비윤씨의 회릉추숭(懷陵追崇)을 주장하여, 시행함으로써 연산군의 신임을 받아 정헌대부에 가자(加資)되었다. 1.. 2020. 9. 24. 중종반정의 정국공신 박원종 박원종은 조선 전기의 무신이며 선전내승(宣傳內乘), 동부승지, 중추부지사(中樞府知事) 등을 지냈다. 중종 옹립의 반정(反正)의 주도적 역할을 하여 정국공신(靖國功臣) 1등에 책록되었다. 본관은 순천(順天). 자는 백윤(伯胤). 할아버지는 부지돈녕부사(副知敦寧府事) 박거소(朴去踈)이고, 아버지는 적개좌리공신(敵愾佐理功臣) 박중선(朴仲善)이며, 어머니는 행호군(行護軍) 허균(許稛)의 딸이다. 무술에 뛰어나서 음보(蔭補)로 무관직에 기용되었다. 1486년(성종 17) 선전관으로 있을 때 무과에 급제하여 선전내승(宣傳內乘)으로 승진, 오랫동안 왕의 측근이 되었다. 1492년 승정원동부승지로 발탁되자 사헌부에서 나이도 어린데다가 무과 출신에게 동반의 3품직을 제수할 수 없다고 이의를 제기해 서경(署經)을 보류하자.. 2020. 4. 13. 연산군시대 문신, 유자광 유자광은 조선전기 병조정랑, 한성부판윤, 장악원제조 등을 역임한 문신이며 서얼 출신으로 세조의 총애를 받았으며 예종 때에는 ‘남이의 옥’을, 연산군 때에는 무오사화를 주도하며 공신의 지위에 올랐다. 본관은 영광(靈光)이고 자(字)는 우후(于後)이다. 부윤(府尹)을 지낸 유규(柳規)의 서자(庶子)로 전라도(全羅道) 남원부(南原府)에서 태어났으며 모친은 최씨(崔氏)이다. 대사헌(大司憲) 등을 지낸 오성군(筽城君) 유자환(柳子煥)의 서제(庶第)이다. 함양호장(咸陽戶長)을 지낸 박치인(朴致仁)의 딸과 결혼하여 유방(柳房)과 유진(柳軫) 등을 낳았다. 1467년(세조 13) 왕실의 호위병인 갑사(甲士)로 있다가 하번(下番)하여 고향인 남원에 머무르고 있다가 이시애(李施愛)의 난이 일어났다는 소식을 듣고는 세조(世.. 2020. 4. 7. 중종 , 반정을 일으키고 왕이 되다. 종종반정이란 조선 제10대왕 연산군을 몰아내고 진성대군 이역(晉城大君 李懌)을 왕으로 추대한 사건이다 중종반정이 일어난 배경으로는 1506년(연산군 12) 성희안(成希顔)·박원종(朴元宗) 등 이른바 훈구세력이 임사홍(任士洪)·신수근(愼守勤) 등의 궁금세력(宮禁勢力)과 결탁해 학정을 거듭하던 연산군을 폐위시킨 사건이다. 연산군은 당시 특권 관료층인 훈구세력과 성종 때부터 정계에 진출하기 시작한 신진 사림세력이 정치적으로 대립하는 가운데 왕위에 올랐다. 그는 1498년 훈구세력과 결탁해 성리학적인 입장에서 왕도정치를 추구하는 사림파를 무오사화로 한 차례 거세하였다. 이로써 정치적 우세를 더욱 확고히 한 훈구세력은 그 횡포가 더욱 심해지고 권귀화(權貴化)의 경향을 현저하게 보였다. 이러한 가운데 연산군은 궁금.. 2020. 3. 15. 이전 1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