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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님의 여행 이야기

나는 지금 제주다...2일차

by 무님 2020. 10.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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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4시에 일어났다. 나는 지금 제주여행 중이다. 여행을 와서 새벽 기상이라니 웬 부지런인가 하겠지만 오늘은 내 생애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한라산 백록담 등반이다. 한라산 백록담에 오르려면 백록담 밑 진달래 대피소까지 12시 30분까지 등반이 되어야 백록담 입산을 시킨다고 한다. 그만큼 오래 걸리기도 하지만 늦어지면 위험해진다는 소리다.

한라산 성판악 코스로 산행하려 하는데 숙소에서 성판악 입구까지는 40분정 찍힌다. 5시 출발을 목표로 내가 제일 먼저 일어나 씻고 준비하고 가족이 차례로 준비했다. 

 

성판악입구에서 백록담 정상까지 가는 시간은 4시가 30분 소요라고 쓰여 있다. 일반인 그렇다고 하는데 무릎이 안 좋은 큰아이와 계단이라면 질색하는 작은 아이와 체력이 엉망인 내가 오르기에 좀 더 긴 시간을 잡아야 할 것 같았다. 5시 출발... 성판악 입구에 도착하니 차들이 꽤 많다. 아직 어둠이 다 가시지도 않은 시간인데 부지런히들 입산을 시작했다.

우리도 서둘러 준비를 마치고 입구에 있는 매점에서 김밥과 부족한 물을 챙겨 산을 올랐다. 산행을 해 본지가 오래고 오기 전부터 알아보니 왕복 10시간이라는 소리에 오르기 전부터 걱정이 많다.

 

 

한라산 성판악 코스 입구

 

결혼 20주년 기념으로 해외도 못 나가고 그럼 추석연휴 꽉 채운 4박 5일의 제주 여행을 가자고 했다. 그러면서 모두 가고 싶은 곳 1가지만 말하라고 했다. 이번 여행은 휴식이므로 관광은 될수록 지향한다고 말해 주었다. 그런데 신랑이 그런다. " 추석날 당일 아침 한라산에 올라 백록담 보고 오자. "

 

 

한라산 솔밭대피소

 

 

새벽.... 시작은 좋았다. 아직 어두운 시간 제주 여행 2일차 파이팅이 넘치고 있었고 시작하는 마음은 제법 가벼웠다.

하지만 이건 금새 악몽의 시작임을 알게 되었다. 초입부터 솔밭 휴게소까지는 쉬운 코스라는 말이 무색하게 온통 바위다.

간간히 나무데크가 있지만 바위다 현무암의 올망졸망한 바위다.

그래도 아침인지라 주변도 들러보면 솔밭대피소까지 겨우 도착했다. 문제는 지금부터였다. 솔밭 대피소에서 진달래 대피소를 향하는 길 힘들어도 너무 힘들다. 오죽 힘들면 손목시계가 무겁게 느껴져 벗었을까?

아이들도 지쳐가고 나는 더 지치는 것 같았다. 이놈을 몸쓸 몸뚱이는 안 아픈 곳이 없다. 그럭저럭 진달래 대피소에 도착하니 9시가 좀 못 되었다.

 

 

 

진달래 대피소

 

 

숨은 차오르고 무릎은 아작이 나 있는거 같다. 아이들도 너무 많이 지쳤다. 신랑이 파이팅하자고 하는데 욕이 나오려는 것을 간신이 참았다. 그래도 여기까지 왔으니 도전을 해야 하지 않을까?

김밥도 꺼내 먹고 다리도 쉬어 주고~~~ 작은 아이는 어떻게 내려가냐며 벌써 걱정이다. 돌들이 너무 많고 크기도 들쭉날쭉하니 무릎과 발목이 견디지를 못 한다. 다 쉬고 일어나 올라가는 길...

백록담으로 오르는 입구에는 지하철 개출구처럼 한 사람씩 들어가게 되어있다. 산 위에 이것이 웬일일까 웃기기도 하고

그곳을 지나면서 그랬다.  " 여기 정말 위험한가 보내~~~ 혹시 못 내려오는 사람 있을까봐 숫자 세는 거 아니야? "

입구를 지나 좀 오르는데 아차 싶다 그 동안 올라 길이 죽음에 길인 줄 알았더니 진짜 죽음의 길은 이곳였다.

가파른 돌길과 가파른 테크길과 올라도 올라도 끝이 없는 길..... 어느 정도 올랐다 싶으니 숨이 차고 나무는 점점 없어지고 고사목만 남아 있고 백록담에 가까이 오니 경사진 나무데크길 주변에는 아무것도 없이 풀만 있다.

무섭다.... 무서워서 옆도 뒤도 돌아볼 수가 없다. 쉬어가고 싶어 계단에 앉고 싶지만 그러면 보게 될 그 풍경이 더 무서워 땅만 보고 서서 쉰다. 신랑과 큰 아이는 먼저 올라가고 나처럼 겁 많은 둘째 아이와 나란히 겁먹고 있다.

작은 아이가 그런다.  " 엄마 말이 정말 인가 봐~~ 아까 그거 정말 사람 숫자 세는 건가 봐~~ "

웃긴데 웃을 수가 없다. 나는 지금 도망치고 싶다. 아님 내가 죽을 거 같다. 힘들어 죽기 전에 무서워 죽겠다.

 

 

 

한라산 백록담 오르는 길

 

그래도 돌아설 수 없으니 걷는다.  쿵쿵 뛰는 심장소리를 들으면 후들거리는 다리를 붙잡으며 계단만 보며 걷는다

작은 아이도 어쩔 줄 몰라하면서도 걷는다. 우리는 서로를 의지하며 무서움을 견디고 있는 중이다. 괜스레 딴소리를 하며 걷다가 작은 아이가 또 그런다. " 엄마~~ 여기 까마귀가 너무 많아. 좀 무서워.. 꼭 기다리고 있는 거 같잖아~~ "

그 말이 너무 웃겨 " 그러니까 조심해야지. 저것들 쓰러지는 사람 있는 기다리고 있는 거야~~ 침 흘리면서 ~~~ "

아이는 너무 힘든지 진짜 그럴 거 같다고 그런다. 그래 우리는 너무 힘들구나... 꼭 죽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 만큼

 

 

겨우 정상이 보인다.  그곳에는 먼저 올라간 신랑과 큰 아이가 너무도 지친 모습으로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전부 올라왔네~~ " 신랑이 많이 걱정했나 보다.

 

 

한라산 백록담

 

그래도 올라 오니 좋다. 살아생전 볼일이 없을 것 같은 백록담을 두 눈에 담을 수가 있다는 것도 감격스럽고 죽을 거 같은 힘든 시간에도 포기하지 않았다는 것도 기특하고 우리 가족이 모두 함께 해 내었다는 것도 좋았다.

사진도 찍고 지친 몸도 쉬고 잠시 쉼을 갖는다. 다시 내려갈 일이 너무 걱정인데 그래도 지금은 마음이 몽글거리고 있다.

 

 

 

오르막 길이 있으면 내리막 길이 있다. 우린 내려가야 한다. 다시 시작을 해야 하는데 다리의 근육들이 난리가 났다. 그래도 다른 길이 없다. 내려가는 길밖에 그리고 그 내려오는 길은 올라가는 길의 4배는 더 힘들었다. 

작은 아이를 신랑에게 맡기고 큰 아이를 따라 먼저 내려갔다. 정신을 어디다 두었는지도 모르겠다. 지긋지긋한 돌들 소리는 얼마나 했는지도 모르겠다. 마음속으로는 얼마나 많은 욕들이 생겼다 사라졌는지도 말로 할 수가 없다.

그래도 꾸역꾸역 큰 아이와 내려왔는데 내려오니 작은 아이가 걱정이다. 울먹울먹 한 얼굴로 내려오는 모습이 생각나 짐을 차에 실어 놓고 입구에서 기다렸다.

 

 

 

 

 

 

30~40분 지나니 신랑과 작은 아이가 보인다. 멀리서부터 손도 흔들어 주고 애썼다고 말하는데 작은 아이가 힘든 다리를 재촉해 내게 와 안기더니 운다. 엉엉~~~ 애썼다고 꽉 안아주니 신랑이 그런다.

" 작은 아이가 중간에 코피가 많이 났어~~ 놀랐나 봐~~ " 그래 많이 힘들었구나.....  큰 아이는 그런 동생이 안쓰러웠는 지자기도 무릎이 나갔나 보다 그랬으면서도 ' 잘했어~~ 기특하네~~' 위로해 준다.

 

우리는 힘든 시간을 함께 겪어 낸 가족이자 동지가 되었다. 훌쩍 큰 두 아이들도 서로를 위할 수 있을 만큼 잘 자라 주었고 힘들어 죽을 것 같다고 하면서도 묵묵히 끝까지 견디어 준 것도 고맙고~~ 신랑도 너무 힘들었겠지만 그래도 새끼 아프다는 소리에 묵묵히 손잡고 내려와 고맙고 그리고 늙어간다며 서럽다고 노래를 하지만 힘들 때 잘 견디고 사는 나도 나는 기특했다.

 

너무 힘든 하루인데 마음만은 차고 넘치는 하루였다. 2일 차 여행도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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