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올레길 2코스를 걸어 볼까 한다. 2코스는 성산일출봉이 보이는 광치기해변에서 시작 된다. 거리는 16.5km이고 5~6시간정도 걸어야 한다. 걷는 길은 순하고 바다와 산, 그리고 저수지까지 볼 수 있는 잔잔한 길이기도 하다.
걷기에 시작은 광치기해변이다. 광치기해변에서 식산봉으로 가는 길은 바다를 끼고 산을 옆에 두고 걷는 길로 잘 만들어 놓은 길을 걷고 있으면 이만큼 평화로워도 되나 싶은 마음이 든다. 이길을 지나 걷다보면 족지물이라는 곳을 볼수 있다.
족지물은 제주올레2코스가 통과하는 식산봉 서쪽 새가름 마을 입구에 있는 물로 발가락처럼 길게 뻔어 있다고 하여 붙인 이름으로 논동네에서 수량이 제일 풍부하며 두군데로 나눠 한곳은 식수, 한곳은 우마 급수용으로 사용하였으나 지금은 여탕, 남탕으로 구분하여 정비된 물이다. 제주에서나 볼 수 있는 풍경이라 많은 사람들이 보러오는 곳이기도 하다.
족지물을 지나면 오조리마을로 들어선다. 마을로 들어서면 소박하고 오밀조밀한 집들이 길을 이룬다. 오조리마을에 있는 돌담쉼팡이 있는데 간단한 먹거리와 커피도 마실 수 있다. 제주 특유의 분위기를 가지고 있어 걷는 길 잠시 쉬어가도 좋을 듯하다. 잠시 시고 다시 마을길을 지나면 대수산봉은 서귀포시 성산읍 수산리에 위치한 측화산이다(고도:137m). 산사면이 완만한 기복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정상 부분에는 산마루가 길게 이어지면서 중간쯤에 얕게 패인 타원형의 분화구가 형성되어 있다. 과거 이곳 분화구에 물이 있어서 '물뫼/물메'라고 불렀다. 조선 시대에 이 오름 정상에 봉수대가 있어 북동쪽으로 성산봉수, 남서쪽으로 독자봉수와 교신했는데, 봉수대 흔적이 일부 남아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수산(水山)'으로 표기되어 있고, "읍치 동쪽으로 24리에 있다."고 했다. 『탐라지』에는 '수산(首山)'으로 기재되어 있다. '물'에 해당하는 훈차 표기가 '수(首)'로 되어 있다. 『탐라순력도』(한라장촉)에는 '수산망(首山望)', 『제주삼읍전도』에는 '수산봉(首山烽)'으로 기재했고 봉수 표시도 보인다. 이처럼 '수산'이라 부르던 오름의 이름은 후대에 동쪽에 이웃한 '작은물뫼[小水山峰]'와 구분하여 '큰물뫼[大水山峰]'로 불렀던 것으로 보인다. 분화구에 샘물이 나오는 못이 있었는데, 송나라의 호종단(胡宗旦)이 와서 섬의 산맥 수맥의 기운을 눌러 버리고 갔을 때 이 오름의 수맥도 끊겨 샘이 마르고 물도 없어졌다고 전해진다.
대수산봉으로 가는 길에서는 제주의 새로운 얼굴들이 숨어 있다. 바다와 함께하는 제주의 밭이라던가 대수산봉 밑으로는 공동묘지는 제주가 설레임의 여행지이기 전에 사람이 치열하게 살아가고 있는 터전임을 가슴으로 느끼게 해 주었다.
대수산봉 정상으로 오르는 길은 처음은 약간의 비탈길로 되어 있으나 생각보다 순하게 걸을 수 있으며 오르는 시간도 20분 정도면 오를 수 있다. 정상에 올라서면 멋들어진 경관이 기다리고 있다. 막힐 것 없이 넓은 시야 안으로 성산일추봉과 바다 그리고 오름들이 퍽찬 감동을 준다.
대수산봉에서 내려가는 길은 갈래 길로 되어 있으므로 꼭 올레길 표시를 보고 내려와야 한다. 산길을 내려오면 잘 닦아놓은 길이 기다리고 있다. 이 길을 걸어 혼인지 향한다. 혼인지는 서귀포시 성산읍 온평리 마을 서쪽 지경의 숲에 자연적으로 생성된 약 500평 정도의 큰 연못이다. 이 연못에는 제주특별자치도의 삼성신화에 등장하는 3신인(神人)과 3공주(公主)가 혼인하였다는 전설이 있다. 연못 남쪽에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기록된 현무암 비(碑)가 세워져 있다.
' 아득한 옛날 모흥(毛興)이라는 곳에서 고을나(高乙那)·양을나(梁乙那)·부을나(夫乙那)라는 3신인(神人)이 솟아 나왔다. 이들은 수렵과 어로를 하며 생활 하였다. 하루는 이들이 한라산에 올라가 멀리 바라보니 동쪽 바다 위에서 오색찬란한 나무상자가 떠내려와 해안에 머물러 있는 것이 보였다.
3신인이 내려가서 목함을 열어 보았더니. 그 안에는 알 모양으로 된 둥근 옥함(玉函)이 있고 관대(冠帶)를 하고 자의(紫衣)를 입은 사자(使者)가 있었다. 사자가 나와 옥함을 열었는데, 그 안에는 푸른 옷을 입은 15∼16세 가량의 3공주와 우마(牛馬) 및 오곡(五穀)의 종자가 있었다. 사자가 3신인에게 말하기를, “나는 동해 벽랑국(碧浪國)의 사자요. 우리 임금께서 이 세 분 공주를 두셨는데, 혼기가 차도록 배필을 구하지 못해 안타깝게 여기고 계셨소. 그러던 중 서해 높은 산에 3신인이 있어 장차 나라를 세우고자 하나 마땅한 배필이 없다는 걸 아시고, 신(臣)에게 명하여 3공주를 모시고 오게 하였으니, 마땅히 배필로 삼아 대업을 이루소서.” 하고는 홀연히 구름을 타고 사라져버렸다.
3신인은 나이 순에 따라 3공주를 각각 배필로 정하고, 이들을 맞아 이 연못에서 혼례를 올리고, 그 함 속에서 나온 송아지·망아지를 기르고 오곡의 씨앗을 뿌려 태평한 생활을 누렸다. 이로부터 제주특별자치도에 농경과 목축 생활이 시작되었다고 한다. 당시 3공주가 들어 있던 목함이 발견된 곳은 속칭 '쾌성개'라고 불리는 곳이며, 이것이 도착한 해안은 '황루알'이라고 불린다. 지금도 여기에는 3신인이 바닷가에서 처음 디딘 발자국이 암반에 남아 있다고 한다. '
혼인지는 수국이 만개하는 6월에는 관광객으로 가득하다. 그만큼 혼인지 자체만으로 볼거리가 많은 곳이여서 잠시 둘러보는 여유를 누려보는 것도 좋다. 특히 6월의 모습이 아름다운 마지막 종착지로 향하기에 발길이 떨어지지 않게 만드는 곳이다.
하지만 걷기를 멈추기에는 아름다운 돌담길이 기다리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혼인지를 지나 종착지인 온평포구로 향하는 길에는 환해장성이 있다. 환해장성은 바다로부터 침입해 오는 적을 방비하기 위하여 고려시대부터 조선시대에 걸쳐 쌓은 것이다.
제주도는 바다로부터 침입하는 적들이 상륙하기 좋은 곳이 많다. 그러므로 이들에 대한 방비로 해안선의 접안할 수 있는 곳을 돌아가면서 돌로 성(城)을 쌓아 놓았다. 이것을 환해장성이라고 한다.
1653년 제주목사 이원진(李元鎭)이 편찬한 《탐라지》 〈고장성(古長城)〉조에 의하면 “연해 환축(環築)하여 둘레가 300여 리라. 고려 원종 때 삼별초가 진도에서 반하니 왕은 시랑(侍郞) 고여림 등을 탐라에 파견하여 영병 1,000으로 이를 대비하여 장성을 구축하였다.”고 하였다. 이 사실을 《탐라기년》에는 “6월에 영국 선박이 우도(牛島)에 정박하여 섬에 작은 흰 기를 세우고 섬 연안 수심을 1개월 동안이나 측량하면서 돌을 모아 회(灰)를 칠하여 방위를 표시하였다. 이때 권직(權稷) 목사는 크게 놀라 마병(馬兵)과 총수(銃手)를 총동원하여 만일의 변에 대비하였고, 그해 겨울 도민을 총동원하여 환해장성을 수축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환해장성길을 지나서 온평포구에 도착하면 올레2코스의 종착지이다. 올레길은 날씨에 따라 걷는 길의 매력을 달리 볼 수 있다. 봄비가 내리는 날에 길과 바람 좋은 가을의 길은 설레임의 낭만을 얹어 걷는 모든 시간을 감동적이게 만들어 주기도 한다. 그러나 어느 날 어느 시간을 따지지 않아도 올레길은 늘 설레임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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