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대산 높이 1,565.3m이다. 태백산맥 중심부에서 차령산맥이 서쪽으로 길게 뻗어나가는 지점의 첫머리에 우뚝 솟아 있다. 주봉우리인 비로봉 외에 호령봉(虎嶺峰:1,531m)·상왕봉(上王峰:1,491m)·두로봉(頭老峰:1,422m)·동대산(東臺山:1,434m) 등 고봉이 많다. 크게 위의 다섯 봉우리 및 그 일대의 사찰들로 구성된 평창 오대산지구와 노인봉(老人峰:1,338m) 일대의 강릉 소금강지구로 나뉜다.
전형적인 토산(土山)이며 토양이 비옥해 산림자원이 풍부하고 겨울철에는 강설량이 많다. 특히 월정사 입구에서 시작되는 빽빽한 젓나무 숲과 중턱의 사스래나무, 정상 부근의 눈측백나무와 주목 군락, 호령계곡의 난티나무 군락이 장관이다.
겨울 눈이 많이 내리는 오대산의 설경은 산에 좀 다닌다는 사람들 사이에서 유명하다. 오대산 트레킹 코스는 크게 비로봉 정상으로 가는 코스와 오대천 계곡을 걷는 코스로 나뉘는데 눈 내린 겨울 풍경을 보기에는 오대천 계곡 코스를 추천한다.
걷기의 시작은 월정사 매표소부터이다. 매표소를 지나 200m쯤 도로를 따라 걸으면 월정사 일주문이 나온다. 월정사 일주문에서 월정사로 가는 전나무 숲은 유명한 곳이다. 어느 계절을 막론하고 사람들이 끈이질 않는 곳으로 겨울의 설경은 눈이 내리는 날이면 설렘의 끝을 느낄 수 있다. 이 길을 셀레는 마음으로 걷다 보면 금세 월정사에 도착한다.
월정사는 월정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4교구의 본사이다. 643년(선덕여왕 12)에 자장율사(慈藏律師)가 창건하였다. 창건 당시 자장율사는 임시로 초암(草庵)을 얽어 머물면서 문수보살의 진신(眞身)을 친견하고자 하였으나, 그가 머물던 3일 동안 음산한 날씨가 계속되어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그 뒤 유동보살(幼童菩薩)의 화신이라고 전하는 신효거사(信孝居士)가 이곳에 머물렀고, 범일(梵日)의 제자였던 두타승(頭陀僧) 신의(信義)가 자장율사가 휴식하던 곳을 찾아와서 암자를 짓고 살았다. 신의가 죽은 뒤 이 암자는 오랫동안 황폐해 있었는데, 수다사(水多寺)의 장로 유연(有緣)이 암자를 다시 짓고 살면서 월정사의 사격(寺格)을 갖추었다.
그 뒤 1307년(충렬왕 33) 화재로 전소된 것을 이일(而一)이 중창하였고, 1833년(순조 33)에 다시 화재로 전소된 것을 1844년(헌종 10)에 영담(瀛潭)·정암(淨庵) 등이 중건하여 내려오다가 1·4 후퇴 당시 작전상의 이유로 아군에 의하여 칠불보전(七佛寶殿)을 비롯한 10여 동의 건물이 전소되었다.
1964년 탄허(呑虛)가 법당인 적광전(寂光殿)을 중창한 뒤 만화(萬和)가 꾸준히 중건하여, 현재 삼성각(三聖閣)·대강당·심검당(尋劍堂)·승가학원(僧伽學院)·범종각·용금루(湧金樓)·일주문·요사채·창고 등이 있다.
월정사를 둘러보고 도로를 따라 걸으면 부도들이 자리하고 있는 것이 보인다. 이곳을 지나면 이정표가 있는데 이곳에서부터 선재길이 시작된다. 선재길은 오대천 계곡의 오솔길을 따라 상원사까지 이어지는 길이다. 선재길은 전 구간이 아름드리나무로 덮여있어 삼림욕을 즐기며 걷기에는 가장 좋은 코스다. 대부분이 평지로 되어 있고 가을이면 계곡을 따라 물드는 단풍이 아름답기로 유명한 코스 선재길은 월정사부터 상원사까지 9km 숲길로 60년대 말 도로가 나기 전부터 스님과 불교신도들이 다니던 길이다. 선재길을 천천히 걸으면서 옛사람들의 흔적을 통해 과거의 문화를 만날 수 있고, 오대천을 품은 숲 터널을 지나면서 다양한 동, 식물 친구들도 볼 수 있다.
오솔길을 따라 상원사까지 이어진 길인 선재길은 <화엄경>의 선재동자에서 이름을 따왔다고 한다. 선재길에서 오대산장까지는 서너 번 계곡을 건너고 섶다리도 지나게 된다.
오대산장은 예전에는 산장이었으나 지금은 찻집으로 운영되고 있다. 걷는 길 잠시 쉬어가기에 좋은 곳이다. 오대산장을 나와 다시 계곡길을 따라 걸으면 다리가 나오는데 이곳을 지나 다시 계곡길을 잠시 따라 오르면 상원사 입구까지 이어진다. 상원사는 대한불교 조계종 제4교구 본사인 월정사(月精寺)의 말사로, 월정사와는 이웃하고 있다. 원래의 절은 724년(신라 성덕왕 23) 신라의 대국통(大國統)이었고 통도사(通度寺) 등을 창건한 자장(慈藏)이 지었다고 한다. 지금은 종각(鐘閣)만 남고 건물은 8·15 광복 후에 재건한 것이다. 현존 유물 중 가장 오래된 동종(국보 36)이 있다.
상원사에 ‘단종애사’의 악역 세조에 얽힌 일화가 있다. 조카인 단종을 몰아내고 임금의 자리에 오른 세조는 얼마 못 가 괴질에 걸리게 된다. 병을 고치기 위해 이곳을 찾은 세조가 월정사에 들러 참배하고 상원사로 올라가던 길이었다. 물이 맑은 계곡에 이른 세조는 몸에 난 종기를 다른 이들에게 보이지 않으려고 혼자 멀찌감치 떨어져 몸을 씻고 있었는데, 동자승 하나가 가까운 숲에서 놀고 있었다. 세조는 그 아이를 불러 등을 씻어달라고 부탁하며 “어디 가서 임금의 몸을 씻어주었다는 말은 하지 마라” 하고 말했다. 그러자 그 아이가 “임금께서도 어디 가서 문수보살을 직접 보았다는 말은 하지 마세요”라고 대답하고는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깜짝 놀란 세조가 두리번거렸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그토록 오랫동안 자신의 몸을 괴롭히던 종기가 씻은 듯이 나은 것이다. 감격에 겨운 세조는 화공을 불러 기억을 더듬어 동자로 나타난 문수보살의 모습을 그리게 하였고, 그 그림을 표본으로 하여 나무를 조각하였다. 이 목조문수동자좌상(국보 제221호)을 상원사의 법당인 청량선원에 모셨다. 다음 해에 상원사를 다시 찾은 세조는 또 한 번 이적을 경험했다. 상원사 불전으로 올라가 예불을 드리려는 세조의 옷소매를 고양이가 나타나 물고 못 들어가게 했다. 이상하게 여긴 세조가 밖으로 나와 법당 안을 샅샅이 뒤지게 하자, 탁자 밑에 그의 목숨을 노리는 자객이 숨어 있었다. 고양이 덕에 목숨을 건진 세조는 상원사에 ‘고양이의 밭’이라는 뜻의 묘전을 내렸다. 세조는 서울 가까이에도 여러 곳에 묘전을 마련하여 고양이를 키웠는데, 서울 강남구에 있는 봉은사에 묘전 50경을 내려 고양이를 키우는 비용에 쓰게 했다고 한다.
이런 일들을 겪은 세조는 그 뒤에 상원사를 다시 일으키고 소원을 비는 원찰로 삼았다. 오늘날 건물은 1947년에 금강산에 있는 마하연 건물을 본떠 지은 것이지만, 이름 높은 범종이나 석등은 이미 그때 마련된 것들이다.
상원사에서 주차장이 트레킹의 종점이 된다. 월정사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산행을 하게 된다면 이 길을 다시 내려가면 된다. 산행이 길어진다면 월정사에서 상원사까지 오르지 않고 선재길을 지나 오대산장에서 차를 마시고 하산하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겨울 트레킹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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