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산 수덕사가 가고 싶다고 생각했던 건 수덕사 대웅전의 사진을 보고서 였다. 우연히 책에 올라와 있던 대웅전은 사진이 아닌 직접 두 눈에 담아 보고 싶은 끌림을 주었다. 아무 사전 정보가 없었지만 사진 한 장만으로도 수덕사는 가볼만한 충분한 이유가 되었던 것 같다.
예산 수덕사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순간 좀 놀랐다. 이름 좀 날렸다는 절들을 많이 가 보았지만 커다란 주차장에 많은 차들이 관광이라도 온 듯 색색의 옷을 입은 사람들을 내려놓고 있었다. ' 관광지 같은 곳인가? 이 절은?' 실망이었다. 물론 필자도 불심으로 찾은 절은 아니지만 그래도 놀러 가자는 마음으로 달려온 곳도 아니었다. 차에서 내려 둘러본모습은
여느 사찰들의 입구에 비해 번잡하고 시끄럽고 마음을 어수선하게 만들었다. 첫 느낌이 별로 좋을 수가 없었다.
그 거리를 지나 일주문을 들어섰다. 잘 깔아 놓은 아스팔트 길이 쭉 뻗어 있고 양옆의 길은 꽃과 나무로 잘 꾸며 놓았다.
그러나 그 길은 편안하였으나 평안하지 못했고 아름다웠으나 설레임이 없었다. 솔직히 이 모든 순간이 조금은 당황스러울 만큼 달려오던 순간의 기대가 식었던 것 같다. 수덕사의 금성문을 지나 보이는 계단은 도시의 어느 계단 못지않게 깨끗하고 세련되었다. 최근에 만들어졌음이 여실이 보였다. 계단을 올라 사천왕문을 지나 다시 만나게 된 돌계단은 필자가 기대하고 왔던 마음을 싹 식혀 주었다. 오래된 고찰의 모습을 기대하고 왔었는데 너무도 잘 닦여있는 길이며 잘 만들어 놓은 돌계단이며 새것 새것 하는 모습은 마치 화려하게 화장하고 있는 여인의 모습 같다는 생각을 했다.
무수한 계단을 열심히 올라 곧바로 대웅전으로 향했다. 큰 규모의 수덕사를 둘러보는 것도 좋을 듯하였으나 그러기에는 자꾸 무너지는 실망감을 감출 수 없었다. 계단의 끝 넓은 마당과 함께 오방색의 절집들 사이로 색을 입지 않은 절집이 보였다. 이때만큼은 마음이 조금 조급했던 것 같다. 빠른 걸음으로 다가가며 보게 된 수덕사의 대웅전에 갓 태어난 아기가 생각났다. 머리와 몸은 2등신인데 볼수록 눈을 뗄 수 없는 느낌?
<대웅전>의 지붕은 맞배지붕이었는데 지붕과 몸체의 비율이 2등분으로 되어 있는 듯했다. 작은 얼굴을 가진 여인이 커다란 가채를 머리에 올린 기분? 어쨌든 지붕이 무거워 보였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 그렇다고 건물이 부실하게 보이거나 불안정하게 보인다는 것이 아니다. 다른 절집에서 보았던 팔작지붕의 화려함이나 웅장함은 없지만 대웅전의 맞배지붕은 소박하지만 단아하여 자꾸 보게 되는 끌림을 가지고 있었다.
대웅전은 수덕사의 본전으로 시원스러운 주칸에 섬세한 빗살분합문이 조화를 이루고 있다. 높직한 돌기단 위에 남향하였고 기둥에는 강한 배흘림을 하고 있어 고려 시대 건축임을 직감할 수 있다. 평기둥 위에 굽받침이 있는 주두를 놓아 간결하게 공포를 상부로 전개시켜 처마를 받고 있다. 1937년 완전 해체수리 때 1308년의 건립 기록 묵서명이 발견되어 건립된 절대 년대가 가장 정확한 고려 시대의 건물로 유명하다. 고려 시대의 주심포식 건물이지만 공포에 헛첨차가 삽입되고 가구에는 우미량(牛尾樑)이 첨가되고 대공이 모두 타련조각으로 장식되고 있어 특이하다. 이러한 요소들의 출현은 건축기술의 토착화 내지 높은 수준급에 달하였던 당시의 기술 배경을 잘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공포와 가구부재에 나타난 세련된 곡선미와 질서 있는 구성미는 구속된 형식에서 탈피한 자유화 형식으로의 발돋음이며 이러한 것들이 이 건물이 보여주는 특성이라 할 수 있다.
수덕사 대웅전 측면은 동쪽에서 본 건물 서측면의 모습이다. 이 불전의 아름다움은 측면관에서 발견할 수 있다. 측면의 공간을 기둥 5개로 분할하여 4칸으로 하고 중앙에 사각의 측면 고주를 세워 이 기둥을 대들보 밑까지 올렸다. 대들보의 양 끝에는 강한 배흘림이 있는 원형기둥을 세우고 이 기둥 윗몸에는 퇴량을 끼워 귓기둥과 연결시켜 축부(軸部)를 구성하였다. 도리 받침재는 곡율이 강한 우미량을 사용하여 주심도리로부터 상중도리까지 겹겹이 짜였다. 주심포식의 대표적인 우미량 예를 이 건물에서 볼 수 있다. 공포 부재와 가구의 세부 장식재에서 의장성향 추구의 본질로 전환하려는 조형의식의 한 단면을 보는 것 같다. 고려 말기 건축 중 선의장, 후구조의 대표적 건물이다.
수덕사 대웅전 내부는 건물 내부 중앙에서 올려다본 가구와 연등천정의 모습이다. 2고주 9량가의 가구 짜임새는 직선재와 곡선재를 균형 있게 조화시켜 경쾌감을 준다. 대들보에서 종도리에 이르는 각 부재의 구성과 배치는 다른 건물이 따를 수 없는 최고미를 간직하고 있다. 같은 주심포식인 부석사 무량수전과 비교하면 전체적인 구성 원리는 동일하나 의장상의 기교가 비교적 많이 강조되어 다분히 후행(後行) 성격을 띠고 있다. 내부 공간에는 고주칸의 폭이 바닥면에서 대들보까지의 높이와 같아 입체적으로 정방형을 이루게 한 것은 내부 공간 구성에 주도면밀한 계획에 의해 마련된 결과라 생각된다.
이날 필자는 절의 여러 곳을 보지 못 했다. 아님 혹시 봤지만 기억을 못 하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보고자 했던 대웅전의 모습은 확실히 머릿속에 담겨 있다. 그 모습은 한껏 멋을 낸 여인들 속에 가려린듯 수줍은 듯한 여인 같았다. 솔직히 수덕사에 다시 가 보지는 못 했다. 아마도 그럴 마음이 없어서 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가끔 다른 절집들을 보고 올 때면 수덕사 대웅전 모습이 떠 오를 때가 있다. 가끔은 소박하게 앉은 모습이 보고 싶을 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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